리뷰] [너의 이름은]에 담긴 치유의 힘
리뷰] [너의 이름은]에 담긴 치유의 힘
  • 지유석
  • 승인 2017.01.24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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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대지진·세월호 떠올리게 하는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포스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개봉 19일째인 22일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사실 <너의 이름은>의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개봉 5일째 100만을, 그리고 11일째엔 200만을 넘어섰으니 말이다. <너의 이름은>은 또 다른 기록을 갈아치웠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역대 일본영화 흥행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처음 볼 때 만 해도 <너의 이름은>이 한국시장에서 이렇게 흥행가도를 질주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영화는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의 아픔마저 건드리는 요소를 지녔다고 본다. 일본은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을, 그리고 한국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 타키와 미츠하는 3년의 시간을 두고 서로의 몸이 바뀌는 꿈을 꾼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이 겪은 아픔의 시간차도 3년이었다. 이를 두고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참사 발생, 그리고 이후 전개과정 역시 도호쿠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타키는 일본 수도 도쿄에, 미츠하는 이토모리라고 하는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간다. 어느 날,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가 뒤바뀌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서로의 스마트폰에 기억을 남겨 놓는다. 그런데 타키는 어느 순간 미츠하의 기억이 끊어졌다는 걸 발견한다. 스마트폰을 뒤져보지만 메모도 사라져 버리고 없다. 결국 타키는 이토모리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마을은 3년 전 혜성과 충돌해 초토화됐다. 그리고 미츠하는 이 사고로 사망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타키는 미츠하와 얽힌 기억의 끈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타키는 미츠하를 불러내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되살아난 미츠하는 반 친구인 텟시, 나토리와 힘을 합쳐 혜성 충돌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지키고자 온 힘을 기울인다. 

<너의 이름은>은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위로 올라섰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들이 쓴 방법은 아주 어른스럽다. 미츠하는 이장인 아빠를 설득하는데 나서고, 그 사이 텟시는 건설업자 아버지로부터 배운 폭파공법으로 마을 전력발전소를 폭파시킨다. 방송반인 나토리는 폭발이 나기 무섭게 해적방송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대피할 것을 전한다. [텟시는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의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텟시처럼 신카이 역시 아버지는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고, 가업을 물려받기 보다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로 나섰다]

세월호처럼 ‘가만히 있으라’

반면 어른들은 요지부동이다. 미츠하의 아버지는 딸을 정신병자 취급한다. 또 해적방송 주동자 색출에 나서 사야카를 잡아들인다. 이런 전개과정은 세월호 참사 당일 단원고 학생을 콕 찝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는가 하면, 세월호를 입에 올리는 걸 금기시 했던 우리사회 분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신카이 감독은 지난 18일 <중앙 매거진M>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너의 이름은>의 시나리오를 썼을 때가 2014년이다. 그때 일본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소식을 연일 접했다. 그중 가장 놀랐던 건, 배가 가라앉는 순간에도 그 안에 있는 학생들에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안내 방송한 사실이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때 느낀 것들도 이 작품에 어느 정도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지 한일 양국 국민들이 겪었던 아픔을 건드린데 그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타키는 미츠하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감에 빠진다. 그럼에도 타키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끝내 이토모리를 찾아냈고, 미츠하를 다시금 불러내고야 만다. 그리고 미츠하는 혜성 충돌에서 자신과 마을 사람들을 지켜낸다. 

현실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도, 그래서 도호쿠 대지진이나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가 비극을 막을 수도 없다. 어느 사회든 큰 슬픔을 겪으면 사회 구성원들은 집단적으로 무력감에 빠진다. 그 슬픔과 함께 하고자 함에도 어떻게 해야 직접 슬픔을 당한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을지 모르는데다, 자신의 힘만으로 큰 슬픔을 달래주기엔 역부족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로 이럴 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일기 마련이다. <너의 이름은>은 이 같은 바람을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표현해 낸다. 한국에서 이 영화가 흥행몰이에 성공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본다. 

영화 속 이야기를 너무 도호쿠 대지진과 세월호에만 연결지어 본 것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한일 양국이 3년의 시차를 두고 겪은 비극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와 마주하게 된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기에 그들의 만남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혹시라도 큰 아픔을 당한 이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치유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너의 이름은>은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위로 올라섰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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