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 차별받는 이민자의 투쟁적 삶 기록
파친코 - 차별받는 이민자의 투쟁적 삶 기록
  • 서상희
  • 승인 2017.02.08 2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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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 작가 두 번째 저서 출간
이민자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인종, 문화, 언어, 종교, 계층 등 갈등의 종합 백화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민진 작가의 두 번째 소설 ‘파친코(Pachinko)’가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National Public Radio 이하 NPR)에 소개됐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에 오사카에 이민 간 어느 재일동포 가족의 삶을 다루고 있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미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이 시기에 신분의 합법 여부와 상관없이 이민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이다. 작가와  NPR의 인터뷰 및 그녀의 신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민진 작가의 신작 '파친고' 표지

 

[뉴스M(뉴욕)=서상희 기자] ‘파친코’는 단순한 게임 이야기가 아니다. 멸시받는 한 가족이 이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투쟁적인 삶의 기록이며 유배와 차별에 관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인내했다.

1989년 대학생이던 작가는 미국인 선교사의 강연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선교사는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13세 소년에 대해 말했다. 소년의 가족은 그가 죽은 후, 소년이 남긴 학교 앨범을 보았다.

“앨범에는 소년의 급우 중 몇 명이 써 놓은 글이 있었다.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소년의 부모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아이도 일본 출신이다. 이 이야기가 내 두뇌에 뿌리박혀 있었다.”

재미동포인 작가는 재일 한국인의 역사에 관해 쓰자고 결심했다. 작가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재일동포의 삶이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한국계 일본인들과 다양하게 인터뷰했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매우 크지만, 역사는 내 생각만큼 흥미롭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가 약간의 치유 효과를 제공했다. 보통 사람이 모순, 배신, 죽음, 결혼 등 삶에 대해 느끼는 동일한 방식으로 재일동포들에게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이 소설은 한국이 일본의 강점하에 있던 20세기 초반이 시간적 배경이다. 주인공 순자는 부산 영도에 사는 소녀이다. 작은 섬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성장하던 순자는 본토에서 온 잘생긴 외모의 나이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그에게 알리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라고 밝힌다. 순자와 가족의 불명예는 한 목사의 제안으로 회복된다. 순자는 그와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일본에 간다.

“순자는 열여섯 살짜리 아이였다. 그녀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 무엇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일본에 온 대다수 한국인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들은 역사가 이런 식으로 결정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일제에 점령당한 조국을 떠나온 가난한 한국인들은 일본에서도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순자 부부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고 남편은 가족 전체를 돌봐야 했다. 남편이 복음을 전파하다 체포되자 그들의 삶은 훨씬 더 곤궁해졌다. 그녀와 두 아이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았지만 곧 이어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순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전쟁 이후, 파친코 업소는 일본 전역에서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파친코로 알려진 일본식 핀볼은 거대 산업이다. 수십 억 달러에 이르는 이 산업은 여러 세대에 걸쳐 환영받지 못하고 냉대 받아온 한국계 일본인들에 의해 운영된다.

순자의 두 아들도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소란스러운 핀볼 소굴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한국계 일본인들은 7~80년 동안 합법적인 고용으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특정 분야에서는 현재도 취업하기가 엄청 어렵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파친코에서 직업을 구할 수밖에 없다.”

재일동포들이 취업을 하고 경제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존경을 받는 것은 물론 아니다. 파친코의 대중적인 유행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파친코를 범죄와 연관된 도박 소굴이라는 이유로 우습게 여긴다. 순자의 둘째 아들은 사업에 성공했으나 첫 아들 노아는 삶의 환경을 개선시키지 못했다.

“노아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노아는 필사적으로 어딘 가에 소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아주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존경받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채널 안에서 가능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작가는 “여러 세대를 일본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이 일본에 완전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터뷰했던 재일동포의 대다수는 비록 완벽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도 일본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있다”고 마무리 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이민자로서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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