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에게서 이인제가, 이재명에게서 노무현이 보인다
안희정에게서 이인제가, 이재명에게서 노무현이 보인다
  • 김기대
  • 승인 2017.02.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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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노무현

[뉴스M=김기대 편집장] 2002년 새천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을 통과한 노무현은 김영삼 전대통령을 방문한다. 그는 김영삼에게 시계를 보여주며 노무현을 정치에 데뷔시킨 김영삼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분명 참모들의 조언이 있었을 터, 하지만 다음날부터 보수 언론은 노무현에게 융단폭격을 가했다. 김영삼의 별세 후 그에게 쏟아졌던 찬사를 생각한다면 노무현의 김영삼 방문은 외연확장의 차원에서 그리 나쁜 결정은 아니었다. 보수언론은 정말 외연이 확장될까 이 결정을 비판했고 진보진영은 노무현의 '변절'을 불쾌해 했다.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그날 이후 급락하던 지지율 때문에 당내 후보단일화 협의회(후단협)의 공격을 견뎌내야 했고 정몽준과의 단일화 과정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을 향한 여론의 향배를 잘 보면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하나는 비주류 후보의 외연확장 전략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이다. 그것은 보수세력에게도 진보세력에게도 독이 된다. 여론은 비주류에게 주류 흉내를 내지 말 것을 경고한다.  

다른 하나는 비주류는 약자 이미지를 적절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무현의 떨어지던 지지율을 막아 준 것은  후단협의 공격이었다. 당의 공식적인 경선과정을 통과한 후보에게 쏟아지던 당내 비난은 대중들의 시선을 약자 노무현에게 쏠리게 했다.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없을 정도의 사건인  선거 바로 전날 정몽준의 지지 철회는 노무현 표 응집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 과정이 없었다면 노무현은 좋지만 뭔가 미덥지는 않다고 여기는 유권자들의 기권으로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상승세를 타던 이재명의 인기가 주춤하던 단계를 넘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촛불집회의 열기가 약간 식음에 따라 촛불로 인한 그의 인기가 떨어졌다고 분석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중앙일보의 인터뷰(2016년 12월 20일)였다. 이재명은 이 인터뷰에서 자신은 북한보다 미국을 먼저 방문하겠다면서 문재인을 겨냥하면서 미국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사드 배치에 있어서 조약 운운하며 발을 뺐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야 말로 진정한 '보수'라며 그의 정체성을 버렸다.  중앙일보 같은 노회한 언론에 속은 것이다. 당장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의 프레시안 칼럼이 이재명을 공격했다. 그에 대한 비주류들의 애정이 실망으로 변하는 사건이었다.  

정치적 수사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비주류 이재명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김영삼 방문 이후의 노무현의 지지율 급락같은 여론 반응이 안 나온 것만으로 이재명은 감사해야 한다.   '진보적 보수'라는 반기문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비판을 이재명이 비켜 간 것도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이재명은 비주류와 약자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 친일파 청산, 박근혜 구속 따위의 강성 발언은 충분히 전달되었으므로 이제는 남북 문제, 대미 문제 등에서 비주류만이 할 수 있는 수사를 개발해야 한다.  "남북관계만 잘 되면 다른 건 깽판쳐도 좋다", "미국에 단순히  악수하러 가지 않겠다"는 노무현을  기억해야 한다.  

안희정과 이인제

이재명의 이런 발언이 그의 인기하락을 가져온 것과 달리 안희정은 더한  보수성 발언을 하고 있는데도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대연정, 반값등록금, 복지제도, 사드배치, 박근혜 정부의 공과 발언, 미북 관계(북미관계가 아닌)라는 용어 등은 그가 여권후보인지 야권후보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그럼에도 안정된 이미지라며 보수 언론이 연일 추켜 세우고 있다.

왜 이재명은 안 되고 안희정은 되는가?  적어도 안희정은 야권 내에서는 노무현의 적자다.  친노 세력에게 문재인이 삼촌이라면 안희정은 호적을 승계할 적자, 즉 주류다. 주류는 운신과 발언의 폭이 넓고 여론이 관대하다.  

그는  너무 넓고 멀리 갔다. 안희정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하는 종편의 입장에서는  보수층의 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가  좌편향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한 듯 하다. 이렇게 안희정을  밀어 줌으로써 정말 더불어 민주당의 후보가 된다면  대선에서 공약은 좌우 구분이 없게 된다. 그때  지금은 떠오르지 않던 보수 후보가 나와서 오히려 진보적인 공약을 내건다면 표는 쉽게 이동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일부 공약에서는 박근혜의 공약이 더 진보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보수언론이 열심히 안희정을 밀고 있는 이유다.

이게 안희정에게서 이인제가 보이는 이유다. 이인제처럼 이 당 저 당 옮겨 다닐  안희정의 품성과 인격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런데 차차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여유가 없이 조급하게  처신하고 있는 점이 닮았다.  김영삼의 총애를 받던 이인제가 그랬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지만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의 대결에서 이인제는  이회창의 표를 잠식함으로써 보수층의 원한을 샀다. 결국 김대중의 품 안으로 들어간 '주류'이인제는 노무현과의 경선에서 패배하자 흠집내기를 시도했다.

안희정은 생각 없이 너무 급하게 처신하고 있다. 그는 이번 경선에서 아무리 돋보인들 그것이 차차기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서두른다.  만약 문재인이 당내 경선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해 안희정(이재명에 밀려 3위라고 가정할 때)이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해서 차차기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그는 이기던 지던 더불어 민주당의 정체성을 버리지 말아야 했다.

비록 과반수가 넘지 못했어도 더불어 민주당은 원내 제 1당인데 대연정을 말하는 것은 당내 세력의 밥그릇을 앗아 가겠다는 말과 같다. 당내에서 그를 차차기로 밀 이유가 없다.  집권 후 힘이 달려서  제안하는 연정이라면 몰라도 현재의 연정 제안은 죽어가던 흉악범에게 영양제를 주사하는 행동과 같다. 인권 차원에서의 영양제 공급이 아니라 공모차원에서 영양제 공급이라는 말이다. 제 식구를 내치고 강도를  집안에 들이겠다는 걸 반대하는 사람을 편협한 사람이라고 비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지하는 사람이야 말로 강도로부터 이득을 얻을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3위(2위라도 마찬가지다)를 했을 때 그는 자기의 공약을  받아 들일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그를 지지한 투표인단에게 모두 훌륭한 후보이니 자유 투표하라고  권하면서 자신은 빠져야 한다. 독자 노선으로 가는 게  그가 사는 길이다.

문재인의 대세론이 변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차차기는? 지금으로서는 이재명이 훨씬 유리하다. 그가 노무현의 길을 잘 벤치마킹하면 차기의 가능성도 아직 비관적으로 보기에는 이르다.  그런 점에서 안희정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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