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신기루
안희정의 신기루
  • 지성수
  • 승인 2017.02.1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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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선 후보로 요즘 한창 인기 상승중인 안희정은 전형적인 충정도산이다. 주지하다시피 충청도의 캐릭터는 극단에 치우치는 것을 싫어하고 양쪽을 적당히 중개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양쪽 가운데에서 명분을 살리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도 타지방에 비하여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안희정이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말을 할 때 번번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 듣기가 힘이 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도올 김용옥이 “철학 하는 나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했을까?

물론 즉각적,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말하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충청도 스타일이다.

그래서 생각난 일이다. 25년 전쯤 많지 않은 생활 교회 식구들과 덕산으로 수련회를 갔다. 하루는 안면도를 가기 위해서 친구인 덕산교회 전 목사가 운전하는 교회 승합차에 타고서 가다가 점심을 해 먹어야 하는데 일행 중 아무도 성냥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회계 보는 사람이 성냥을 사러 들어 갔는데 한참 걸려서 나왔다. 차 문을 닫으면서 하는 말이 “시골 사람들이 친절한 줄 알았더니 되게 불친절 하네…” 하면서 투덜거렸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전 목사가 “뭐라고 했간?”

“천원 짜리를 냈으니까 거스름돈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딴 손님하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잔돈 주세요. 그랬죠. 그랬더니 아래 위를 흝어 보면서 기분 나쁘게 돈을 주잖아요?”

“싸가지 없게 했구만!”

우리는 전 목사의 말에 모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잔돈 달라고 했는데 싸가지가 없다니?

모두들 의아했는데 전 목사의 다음 말에 모두 뒤로 넘어갔다.

“더 드려야 되남유? 이렇게 물어야지. 워딜 잔돈을 달라구혀. 누가 안줄가봐? 이 동네에선 그렇게하믄 욕 먹어. ”

그러면서 하는 말이 신문을 본지 1년이 지나도 신문값을 받으러 오지 않아서 돈을 내러 갔단다. 왜 신문 값을 받으러 오지 않았느냐고 하니까 "어떻게 받으러 간데유?" 하더란다. 그러면서 장부를 보여주는데 장부에는 정확히 미수로 적혀있었다고 한다.

'은근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 그것이 바로 충청도 정서이다. 충청도 정서를 이해하려면 '됐시유, 알았시유, 그러쥬, 냅둬유. 그렇구만유' 등등의 긍정의 언어 속에서 부정의 의미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

안희정은 대통령을 하려면 충청도 사람들만 잘 알아 들 수 있는 뉘앙스가 아니라 경상도 사람도 전라도 사람들도 명확히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운동경기에서 역전처럼 재미 있는 일은 없다. 옛날에 교교 야구 대회에서 ‘군상상고’라는 야구팀이 있었는데 팀 이름 앞에 ‘역전의 명수’라는 수식어가 붙었었다. 늘 처음에는 지다가 끝에 가서 승부를 뒤집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요즘 안희정이 뜨는 것을 보고 ‘이러다가 역전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전망을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게임은 결과를 놓고 내기를 하는 도박사들의 바람이나 옆에서 참견하는 꾼들 때문에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종편과 보수언론에서 안희정을 열심히 띄어 주는 것은 안희정이 이기기를 바래서가 아니다. 야권에서 강한 후보 보다는 약한 후보가 나서게 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라고 짐작된다

나는 안희정의 미래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잘 안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치공학적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이다. 왜냐하면 안희정은 옮은 소리만 골라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바른 의견대로 가지 않고 틀린 짓을 하고 난 다음에 바로 잡으면서 발전해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바른 것을 좋아하는 것 보다는 바르지 않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난 다음에야 ‘안 되는구나’하는 바로 잡기로 걸어왔다. 노무현의 실패는 역시 옳은 생각만 골라서 했던 부분이 크다. 단적인 예로 검찰 하나만 들어도 충분할 것이다. 원래 ‘권력의 개’의 속성을 가진 검찰조직을 단번에 민주적 검찰로 만들어 보려다가 실패한 예인 것이다.

옳은 생각은 보기에는 좋지만 항상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비현실적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사에서 이상적인 실험은 노무현으로 충분하다. 정치는 예수의 세계가 아니라 빌라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안희정은 민주당내 경선 보다 본선을 겨냥해서 자신의 확장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어중간한 회색전략을 선택했고 전략대로 이 색깔이 무척 마음에 든 보수 언론들이 흡족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한다. 왜냐하면 안희정이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밖의 사람들이 민주당 후보 경선투표에 많이 참여해 주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이다. 대중들은 대선 후보자들에 대하여 입방아는 찧어대도 굳이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사소한 절차라도 거쳐서 민주당 경선에 참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갑작스런 사회주의권 몰락의 원인을 가지고 논란이 분분했을 때 “마르크스는 인간에 대하여 너무 기대를 높게 잡았던 것 같다.”고 하며 허탈해 하시던 고 이영희 선생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여간해서는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없는 일에 대하여 나서지 않는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 동안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본 일이 없는 어중간한 사람들은 그냥 끝까지 어중간하게 지내다 간다. 그러므로 안희정이 이들을 조직화하지 못한다면 승산이 없을 터인데 무슨 수로 짧은 시간에 조직화를 한단 말인가?

그런 사람들의 역할은 구경을 하다가 “안희정이 그 사람 쓸만하던데 안됐구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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