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땅 밟기, 땅만 밟기?
선교지에서 땅 밟기, 땅만 밟기?
  • 김동문
  • 승인 2007.02.04 08:1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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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현지인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종교 생활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종교 이슬람에 집착하고 있다. (사진 제공 김동문)

‘백 투 예루살렘’, ‘복음의 서진’,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 자손 간의 갈등’ 등 다양한 신조어들이 한국 사회에 넘쳐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땅 밟기’와 ‘선포하는 선교’운동이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현지 이해 없는 땅 밟기와 선포

카이로 시내 중심지의 한 피자헛, 지난겨울 한 무리의 한국 젊은이들이 피자를 시켜놓고 열심히 통성으로 방언 기도를 한다. 이 땅의 백성들을 축복하고, 악한 영들을 대적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현지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수천 수만 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한 도시를 집중적으로 기도하면서 행진했다. 기독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을 돌면서 선포하고 찬양하고 행진한다. "이 캠퍼스를 내게 주소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땅을 내게 주소서."

매년 여름이나 겨울방학 기간은 물론이고 연중 다양한 모양으로 단기간에 선교지를 찾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 지역의 악한 영들을 결박하고 영적인 싸움을 펴고 주님의 주되심을 선포하기 위해 선교 현장을 많이 찾고 있다. 이런 모습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갖는 기쁨도 있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긍정적인 얘기들은 이미 많은 이들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 땅 밟기? 땅만 밟기?

삶의 자리가 아닌 땅만 밟고 지나가는 땅 밟기는 아닌지. "네가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 너로 인하여 그 땅의 족속들이 복을 얻을 것이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세우는 성경에서 말하는 '땅 밟기'의 근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교지에서 종종 '땅만 밟는' 이들의 일과성(一過性) 있는 움직임도 보게 된다. 다 잘 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하고 스스로 위안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유행이나 흐름으로 이어진다면 아쉬움만 토로할 일은 아니다.

땅 밟기는 땅만 밟는 것이 아니라 '삶'이다. 땅 밟기, 성경에서 말하는 땅 밟기는 땅만 밟고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모양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런 식의 행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땅 밟기는 '생활'을 뜻한다.

'땅 밟기' 운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을 따라가보자. 이라크 남부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그가 밟는 땅을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약속을 듣고 '땅 밟기'를 시작한다. 하란에서, 다메섹에서, 브엘세바에서,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그 땅의 족속들과 더불어 살았다. 그로 인해 애굽 왕 바로나 가나안 왕 아비멜렉 같은 이들에게 복을 얻기도 했고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땅 밟기의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본보기다. 롯으로 인해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평지 성읍 백성들이 누리거나 얻은 것은 없었다. 롯은 그들의 멸망에 직면해 제 몸 하나 겨우 추스르고 천사들 덕분에 그 땅을 등지고 나와야 했을 뿐이다.

다니엘이나 에스더, 요셉 같은 인물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그 땅의 백성들이 복을 받은 예는 부지기수다. 아울러 이집트 체류 중인 야곱의 후손들도 출애굽을 할 때 허다한 잡족들과 더불어 그 땅을 나올 수 있었다. 복의 통로가 제대로 역할을 다하면 그 땅의 족속들은 평화를 누릴 수 있지만, 복의 근원으로 보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제 구실을 못하면 그 땅의 사람들은 안타까운 경험을 해야 했다.

땅 밟기의 바른 의미는 그 땅 자체가 아니라 그 땅의 사람들을 품는 과정이고, 품고 사는 삶 그 자체라고 본다. 더불어 살아가는 그 삶이 없는 이벤트성 움직임들은 그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큰 감동과 깨달음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확신과 무관하게 또 다른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경우가 많다.

짧은 기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만나게 될 경우도 그 땅의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발로 밟고 돌아다니게 된다면, 그것은 땅만 밟지 않는 삶의 나누는 기간이 짧다고 해도 더불어 사는 성경적인 땅 밟기일 것이다. 땅 밟기의 중심은 하나님의 그 땅의 백성들을 향한 관심을 품고, 그 땅의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 함께 서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선포? 그러나 일방적인 외침…축복이 저주가 될 수 있어

또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포의 신학(?)이다. '선포' 운동은 '땅 밟기' 운동의 또 다른 면이다. 소위 '지역 영'들에 대한 선교 현장에서 입장 정리가 완전한 것 같지는 않다. 영적인 싸움이 엄연히 선교 현장은 물론 우리가 사는 삶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선포'를 주장하는 이들을 만나면 의아한 면이 있다.

좀 이상한 모양으로 땅 밟기를 주장하고 선포의 신학을 외치는 이들에게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흔히들 여호수아의 여리고 작전을 언급한다. 그러나 과연 선포 운동은 여리고성 돌기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고백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여리고성 돌기 작전은 여러 면에서 인상적이다. 얼핏 보면 여리고성을 보면서 전의를 다지고 승리를 미리 맛보는 그런 행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기대와 다른 마음을 담고 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침묵하도록 요구하신다. 첫째 날, 둘째 날은 물론이고 7일 동안 여리고성을 도는 과정에 도무지 혀도 놀리지 말라고 하신다.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수 6:10)

성을 돌면서 긴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 속에 성 돌기를 마치고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가 울리자 일제히 외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떤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쳤는지는 모를 일이다.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이 외쳤던 식으로 '여호와의 칼이여'를 외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신 침묵의 의미가 무엇인가다. 힘껏 견고한 여리고성을 지키는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그들을 결박하기 위한 '선포'를 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지시하신 하나님의 침묵 명령!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땅 밟기와 선포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우리의 혈과 육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심으로 땅을 차지하는 일이 이뤄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들을 대적하는 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목소리의 크고 작음에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 땅을 힘 있게 밟느냐 살짝 밟느냐 하는 그 몸짓에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여리고성을 돌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성을 빼앗고 땅을 회복하는 그 일이 다른 여타 민족과 족속과 나라들이 하던 것처럼 무기의 많고 적음이나 군사들의 강하고 약함에 좌지우지되는 혈과 육에 의존되는 싸움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 같다. 여리고성을 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쳐대기 시작했다면 어떤 말들이 터져 나왔을까? '각오하라! 끝장이다! 우리가 승리한다!' 이런 식은 아니었을까. 성안에 있던 여리고 백성들을 향한 분노와 적개심을 노출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그 성안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즐거이 고백했을까? 아마도 앞의 모습이 더 드러났을 것 같다.

3) 선교 현장에서 지혜와 배려 필요

땅 밟기에 대한 묵상을 하면서 느헤미야가 떠오른다. 느헤미야,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었다. 무너진 성을 재건하고 성전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는 왕을 설득하고 마침내 예루살렘 지역의 총독이 되어 금의환향하게 된다. 느헤미야에게는 비전이 있고, 권력이 있고, 왕이 은총도 입고, 필요한 물품도 공급받을 루트도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느헤미야는 이 모든 일을 도무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깊은 밤중에 그의 비서관 2∼3 명을 데리고 성을 돌았다. 샅샅이,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런 뒤에야 예루살렘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를 나누었다. 예루살렘성을 이같이 파괴한 악한 영들에 대하여 대적하고 거룩한 영적 전투를 선포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예루살렘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먹고 마시는 것을 끊을 만큼 안타까워했고, 그곳에 돌아와 그 누구보다도 재건에 대한 열망과 갈망으로 목말라했을 느헤미야, 그의 땅 밟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에도 회복되지 않은 땅과 그 땅의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는 안타까움을 가질 수 있다. 그 사랑의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일방적인 선포와 외침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조용히 집중해야 할 때가 많다. 땅만 밟고 지나가는 외침의 신학이 아닌 그 땅을 품고 그들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을 토로하는 다른 형태의 외침, 즉 침묵이 필요한 것 같다. 자칫 '선교지', 즉 복음이 필요한 땅의 백성들이 우리들의 땅 밟기와 선포하는 몸짓을 보고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시는 것처럼' 가현(假現)된 것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땅을 밟고 사셨다.

문득 어린 시절에 했던 땅따먹기 놀이가 생각난다. 땅재기라고도 하는 놀이를 기억하는가? 두 사람이 제각기 동글납작한 돌조각이나 사금파리를 준비하고 땅바닥에 큰 원을 그린다. 같이 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원의 한 귀퉁이에서 안쪽을 향해 엄지손가락 끝을 중심으로 장지를 뻗어 돌려서 원을 그린 땅바닥을 자기 것으로 따먹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 땅바닥을 다 빼앗기거나 좁아진 편이 지는 땅따먹기. 낮 시간에 아무리 많은 땅을 따도 밤이 되면 그 땅은 내 소유가 아닌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 이 놀이가 생각나는 것일까?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보름까지 행하던, 지신을 진압하고 잡귀를 쫓아내어 마을과 가정에 평강과 안녕, 큰 복이 깃들기를 바라던 마당 밟기 등으로 부르던 그런 몸짓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백과 담대함, 사랑의 마음도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모양과 내용으로 전해져야 한다. 덕을 세우는 지혜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 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잠 27:14)는 잠언의 교훈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지혜의 말씀이다. 

김동문 / 중동 암만, <복음과상황> 해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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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베뢰아 사상 가진자 2010-11-26 06:03:07
최바울은 외대 다닐때, 베뢰아단체에서 열심히 활동을 한 경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자신이 IVF 에서만 활동한 것으로 이야기를 함. 베뢰아는 이단 집단 입니다.
그곳에서 활동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것 입니다.
최바울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슬쩍 넘어가면서 숨기고, 자신을 드러낼 것은 과장포장을 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자임. 인터콥이 왜 한국에서 선교의 이단아라고 하는가를 알아야 함

인터콥에 부탁 2010-11-25 07:54:42
인터콥에 부탁합니다. 미주 한인교회에 들어가 교인들을 선동하고, 교인들을 인터콥이 원하는 중동, 중앙아시아 등지로 동원시키지 마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한국에 많은 선교단체들이 있지만 그들은 절대로 교회에 침투하지 않음. 교인들을 자기들이 원하는 곳에 동원시키려 하지도 않음. 하고 싶으면 자기들 멤버끼리만 합니다. 그런데 인터콥은 왜 교회 교인들을 동원시키려 하고 교회에 상처를 주려 하는지요?

피해당한 교회 2010-11-25 07:38:17
인터콥이 교회에 주는 피해도 막대함. 그 건 피해를 당한 교회를 수소문 하여 알아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음.
우리 교회에 주고 간 피해가 그 얼마던가요 !! 그 괴롬을 주님은 아십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음. 인터콥에 빠졌던 교인들을 교육시키고 사역하는 데 어려움이 많음. 교회에 침투하여 교인들을 선동하여 땅밟기에 동원시키고, 착실히 교회생활하던 성도들을 말 안듣게 만들어 버린 인터콥은 정말 싫음

웃기는 땅밟기 2010-11-25 07:34:48
미주한인교회에 침투하여 땅밟기를 종용하는 선교단체는 인터콥. 교회에 들어와 선교교육을 시킨 후에는 중동으로, 중앙아시아로 땅밟기 하라고 하면서 막 보내려 한다. 그 땅에 가서 땅밟기를 하고 온다면, 그 땅에 하나님나라가 이뤄진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교인들은 거기에 호응하여 떠난다. 미주 한인교회들은 땅밟기를 종용하는 인터콥을 멀리해야 한다. 안그러면 제2의 샘물교회사태가 발생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