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전도사로 자청하고 나선 '엉클 샘'
민주주의 전도사로 자청하고 나선 '엉클 샘'
  • 강희정
  • 승인 2007.03.08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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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카툰으로 보는 미국사 2

제목: This encounter does not seem, at present, exactly a happy one for poor Cuba, 작가:미상, 출처:Review of Reviews, Vol. 17, No. 6, June 1898
19세기의 정치 만평에서 미국은 콜럼비아라는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있었던 미서 전쟁(Spanish-American war) 이후부터는 엉클 샘(Uncle Sam)이라는 이름의 남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엉클 샘은 하얀 머리에 염소 수염을 하고 있으며, 미국기와 비슷한 모습의 옷을 입고 있는 늙은 남자이다.

스페인과 벌인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여성이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것만큼이나 획기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미서 전쟁은 미국 역사상 큰 전환점을 가져온 사건으로서, 국가 체제 정비와 대륙 개척에 몰두하던 미국이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려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콜럼부스 이래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스페인이 정치적 자치를 허용하지 않고 세금을 더욱 늘리자 1868년에 독립을 선언하며 투쟁을 시작하였다. 이 전쟁은 10년 간 지속되다가 교착상태에 빠졌었는데, 쿠바는 다시 1895년에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미국은 처음에는 이 전쟁에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1898년 2월 5일에 아바나 항구에 있던 미국 군함 메인 호가 불타는 사건이 벌어져 266명의 해군이 사망하게 되었다. 후에 이 폭발 사건은 보일러실에서 일어난 것으로 스페인 군대와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미국 정부는 이것을 스페인 군대의 소행으로 보고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원래 위의 카툰은 1898년 4월 24일 어느 독일 잡지(Kladderadatsch)에 게재된 것을 미국의 한 잡지(Review of review)가 인용한 것이다. 이 카툰을 살펴보면, 쿠바를 두고서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벌이는 것에 대하여 불행한 쿠바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제목: Union Nursery, 작가: 미상, 출처:New York World, May 13, 1898
미국 사람들은 종종 미서 전쟁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쿠바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참전 직전에 매킨리 대통령은 의회에서 참전의 목적이 미국의 국익에 있음을 밝혔다. 일부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제국주의로 나가는 것에 대하여 우려를 표현하였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스페인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크게 환영했다고 한다.

미국이 참전하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스페인은 속전속결로 치러진 전쟁에서 크게 패하였다. 미국은 쿠바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스페인 군대를 공격하였다. 이 두 지역에서 크게 밀린 스페인 군대는 미국에게 강화를 제의하게 된다.

1898년 12월 10일, 쿠바와 필리핀 대표를 배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강화 조약을 통해, 미국은 쿠바, 필리핀, 하와이, 푸에르토 리코 등을 얻게 되었다. 위의 카툰은 1898년 5월에 그려진 것으로서, 미국이 쿠바와 필리핀을 차지하게 될 것을 예측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전쟁 개입이 순수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꼬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제국주의적으로 해외 영토를 확보하며 팽창하는 과정에서, 새로 얻은 영토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오랜 동안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시달려 왔던 쿠바나 필리핀 사람들은 독립과 민주정부 수립에 대한 꿈을 꾸었을 것이다. 

출처:Harper’s Weekly, Vol. 42, No. 2175, August 27, 1898

그러나 미국은 쿠바와 필리핀과 같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 이들 국가에 대한 직간접적인 간섭을 하면서 그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미국은 이들이 민주적인 자치정부를 운영해 나갈 능력이 없다는 구실을 들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지배와 간섭을 합리화했다. ‘민주주의의 전도사’로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필리핀과 쿠바 국민들은 미국의 점령에 반대하며 저항했으나,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이들 나라에 대하여 오랫동안 내정 간섭을 계속하였다. 필리핀의 경우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1946년에 가서야 완전한 독립을 얻게 되었으며, 쿠바의 경우는 1959년에 피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할 때까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이 두 국가가 독립을 추구했던 것과 달리, 하와이와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에 편입되기를 원했다. 하와이는 1959년에 미국의 50번 째 주가 되었으며, 푸에르토 리코는 1952년에 미국의 연방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위의 카툰은 <자치 정부론을 가르치는 엉클 샘의 교실>이라는 제목으로 1898년 8월에 그려진 것이다. 이 카툰에서 엉클 샘은 선생님이 되어 자치 정부 수립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다. 미서 전쟁을 통해 미국이 획득한 쿠바, 필리핀, 하와이, 푸에르토 리코가 그의 학생들이다.

엉클 샘은 회초리를 들고 서로 사이가 나쁜 '구 쿠바 애국자'와 '게릴라'라는 두 소년들을 떼어놓으려고 하고 있다. 그 옆에는 훗날 대통령이 되어 쿠바 사회에 뇌물 수수와 부정부패를 고착화시킨 호세 미구엘 고메즈가  모범생의 모습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끌었던 필리핀 지도자 에밀리오 아귀날도는 고깔 모양의 모자를 쓰고 교실 뒤쪽에 삐딱한 모습으로 서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하와이와 푸에르토 리코가 아주 말을 잘 듣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적 의도와 각국의 지도자들이나 국민들의 반응을 예리하게 그려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카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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