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 USA
미시 USA
  • 서상희
  • 승인 2017.02.18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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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할까 한다.

나는 미시 USA 회원이다. 4년째다.

미국에 거주하는 결혼한 여성의 놀이터, 옛날로 치면 우물가 또는 빨래터 정도일까. 정보를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곳, 그리고 서로에게 위로와 어루만짐을 줄 수 있는 공간.

이미 그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2013년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서 굳이 찾아 들어가 사건의 전말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회원 전용이어서 읽을 수 없었다. (사실 가물가물하다. 윤창중 사건은 읽은 듯도 하고)

가입하려고 하니 미국 거주이거나 거주 예정인 기혼여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뉴욕에서 서울로 이주한 상태여서 자격조건에 맞지 않았다. 물론 부모형제가 뉴욕에 있으니 주소 쓰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고지식한 성격 탓에 가입을 포기했고 잊어버렸다.

몇 달 후 갑작스레 다시 뉴욕에 돌아와서, 일상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다. 대학 선배가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들을 수 있다며 미시 USA를 권했다. 처음에는 ‘마더후드’ - ‘미들 하이스쿨’과 교육칼럼 방에서 살았다.

세월호가 터졌을 때 미시들이 한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감동으로 다가왔다. 집에 우환이 있어서 직접적인 참여를 할 순 없었지만, 아픔과 분노를 행동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은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이후에 나의 일상은 핫이슈/사회/정치 방에서 시작됐고 미시들이 말하는 “어떤 연예 뉴스보다 흥미진진하다”에 동의하며 이 방에 자리 잡았다.

아, 세월호와 탄핵정국 사이에 연예 방에 들락거리던 때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열기. 이 드라마의 압축본을 올리는 사령관과 그를 기다리는 중위들. 그래서 ‘사령관과 중위들’이라는 카페도 만들어졌다.

또 하나의 기억은 어느 귀국한 미시의 결혼 성공기. 맞선에서 만난 남자들에 대한 재기발랄한 인물평으로 인기를 끌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카페로 뭉쳤다. 물론 글이 연예 방에 맞지 않는다는 말들 때문에 라이프 앤 컬쳐 방으로 옮겨지기도 했고, 글쓴이가 글을 지우기도 해서 힘들게 읽었던 추억이 있다.

가끔 더 이상 읽을거리가 없을 때는 속풀이 방을 기웃거렸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빚어내는 마력에 빠져 미시 USA의 폐인이 되어갔다. 물론 눈팅(?)을 했다는 말이다. 가끔씩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고 싶을 때도 있었으나, 읽는 즐거움이 앞섰다.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려고 작정한 듯 매섭고 준엄한 댓글을 볼 때는 가슴이 섬뜩하거나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서로 위로해주며 아끼는, 얼굴 모르는 이들에게서 사람 사는 세상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워낙 많은 인재들이 정보를 확산시키고 여론을 형성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났고 미시 USA를 확인하지 않으면 삶이 무엇인가 결여된 느낌이었다.

새로 일을 시작했고, 예전만큼 미시 USA에 들락날락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혹여 이 글을 읽고 있는 미시 USA 회원이 있다면, 기삿거리로 충분한 내용을 알고 있다면, 미시 USA에 올리고도 여유 시간이 남는다면, 다시 기자가 된 빨래터 친구에게 귀띔을 좀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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