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 이야기, '유학생 배우자들의 삶'
F2 이야기, '유학생 배우자들의 삶'
  • 이영훈
  • 승인 2008.04.03 12: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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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연구실로 출근하는 유학생 남편에게 맞추어 아침에 기상, 아침을 먹고 점심식사를 준비하면 열두 시 쯤 칼같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 남편과 점심식사.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토크쇼 두 개를 보고 나면 어느새 저녁 준비해야 할 시간. 남편이 저녁 수업에 들어가면 한국 드라마 몇 편을 보며 집 안 일을 해야 한다. 밤늦게 돌아와 수업내용을 리뷰하는 남편 옆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한국 소식을 접하고, 여러 사이버 카페에서 수다를 떤다. 그리고 한 시 쯤 잠자리에 든다. 매일 매일이 동일하다.”

유학생 배우자 김혜진 씨가 털어놓은 그녀의 삶은 영락없는 ‘무인도 표류기’다. 보이지 않는 ‘내조’라는 영예를 위해 희생하는 이들, 과연 F2 비자 소지자들은 행복한가? 그녀의 삶을 통해 들여다보자.

시카고에 살았던 김혜진 씨는 자신의 생활을 한 마디로 ‘무인도에서의 삶’이라 표현했다. 남편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자신, 바로 그녀가 경험하는 자신의 소외된 존재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절망하게 하는가?

1. 고립감과 무기력감

그녀가 표현한 무인도는 그녀가 느끼는, 현재 상황에서의 고립감을 의미한다.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공동체의 소중함, 대학시절을 부대낀 공동체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15년을 동고동락한 지역 교회의 동기들과 떨어져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 언제 돌아갈지 모르고,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삶”인 것이다.

고립감을 극복하고자 그녀가 찾게 되는 해결 방안은 소속감 얻기, 즉 ‘공동체 생활’이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만은 않다. 이번엔 유학생의 아내로서 느끼는 이질감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 군데 찾을 것 없이 지금 속한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일이겠지만, 한인 교회에서도 내가 설 곳은 없다. 교회 청년회의 사역 대상은 분명 유학생이며, 유학생의 아내는 인원을 채우기 위한 덤일 뿐이다. 어쨌거나 이름뿐이라도 유학생들을 위한 청년회가 존재하는 반면, 그것도 싱글인 학생을 위한 청년회이며, 더군다나 유학생 아내들은 한국에서 신앙생활의 결과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내 공동체로 삼기에는 이질감을 느끼는 그런 청년회다.”

많은 유학생 배우자가 그렇듯, 그녀의 유일한 낙은 한국에서 자신의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이번 한국행이 나의 무력감을 깨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유학생 배우자 생활이 2년 다 되어가는 근래에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력함이 극도로 치닫고 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감, 유학생 배우자의 단조로운 생활이야 기혼자 유학생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기에, 나의 생활 패턴을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전히 변함없는 나태한 신앙생활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감정의 무너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지극히 조용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더 내버려 두면 영영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감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에서) 예전의 그 공동체를 다시 경험하고 그때 함께 하던 동기들과 잠시라도 다시 교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새로운 자극제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기대한다.”

한편, 그녀의 남편은 현재에 충실하며 성실히 달린다. 그러기에 그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다르다. “학위는 남편이 따는 것이고, 그러한 남편을 잘 지원하고 돕는 일이 와이프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만, 결국은 진보하고 있는 남편과 퇴보하는 자신을 비교하며 허탈해하는 모습들을 빈번히 본다. 나 역시, 오직 남편의 진행 과정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내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금 내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미국 생활은 더 힘겨울 것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경험한 우울한 미국 생활은 비단 심리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을 향한 그리움으로 밤새 붙들고 있던 인터넷으로 인해 얻게 된 불면증’과 더불어 ‘집안에만 갇혀 있느라고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으로 몸은 더욱 엉망이 된다. ‘체중은 늘었지만 체력은 떨어져 약간의 노동에도 쉽게 지쳐 떨어지는 상태, 물처럼 들이키는 커피와 다이어트 콜라’는 스스로 마약중독자의 비참함까지 연상케 하는 유학생 배우자들의 그늘이다.

2. 문화적 쇼크와 적응

흑인 주거 지역인 시카고 남부에 위치한 남편의 학교. 도서관 안에서 흑인 아이 두 명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그녀는 피하지 않는다. 아이들 표정이 험상궂고 이내 그들의 말이 “돈 내놔!”임을 알아챈다.

사전과 책을 주섬주섬 챙겨 도망갈 채비를 하는데 아이들은 끝까지 그녀를 협박한다. 험한 꼴은 당하지 않고 빠져나왔지만 대낮, 학교 도서관에서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돈을 요구하는 흑인 아이들이 어처구니없다.

이후 그녀에겐 영어 기피증이 생겼다. 텔레마케팅 전화도, ESL코스 사무실 직원도, 길을 묻는 아랍인도 마주하기 싫다. 영어 수업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남편의 불평은 사치로 들리고, 요즘 강력하게 목소리를 낸다는 한국 아줌마들이 부럽기만 하다. “유학생 와이프들은 그냥 숨 안 쉬고 산다.” 그녀는 오늘도 작아진다.

3. 정체성의 상실

많은 이가 그렇겠지만, 그녀에게 있어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에 다름없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그리고 그녀에게 익숙해질 틈도 주지 않고 이름은 그녀를 떠났다.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이민 교회에 가니 “부인 성을 남편 성을 따라 갈아치우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바로 한국 교회에서.

그녀에게 내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 억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불만은 “결혼과 동시에 ‘누구  누구에게 얹혀사는 누구’라는 인상을 주는” ‘~씨 와이프’란 전혀 달갑지 않은 호칭이다. 자신에게도 관심 영역이 있고 전공이 있지만, 잃어버린 그녀의 이름은 어디서 다시 찾아야 하는 걸까?

김혜진이라는 개인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교회 공동체나 유학생 공동체에게 그녀 역시 관심을 갖게 될 리가 만무하다. 사실 그녀는 억울하다. 남편 때문에 시카고로 오게 되었고, 남편이 다니는 교회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니게 되어 그녀에게는 어떤 선택권도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이쯤 되면 ‘도대체 그녀는 누구인가?’

4. 주변인들과의 갈등

유학 4년차인 남편은 한 해전만 해도 한인학생회에서 막내 신세였다. 자신의 남편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반말과 손가락질까지 해대는 유학생 선배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은 유학생 아내들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일찍 결혼해서 23세의 나이로 미국에 온 그녀에게 쏟아진 것은 귀여움이 아니라 ‘무시’였다. 어린 나이에 결혼부터 덜컥한 생각 없는 아이로, 직장 경력이 없다고, 철이 없다고, 요리를 못하고 아이를 돌볼 줄 모른다고, 그녀에게 공부는 오르지도 못할 나무라고. 그녀는 그렇게 무시당하는 반면 전문직 출신 다른 배우자들은 그녀를 무시함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새로 생긴 유학생 아내들을 위한 게시판은 고달픔을 토로하는 이들과, 정신과 상담이나 받으라는 미혼 여학생들, 그리고 와이프들의 글에 불만이 가득한 유학생들로 오늘도 싸움판이다.

5. 남편과의 마찰

결혼 적령기를 넘긴 유학생들의 결혼은 선이나 소개팅을 통해 한 두 달 사이에 급속히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고달픈 유학생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담한 부부관계까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는 남편들이다. 황금 같은 주말을 아버지 학교에서 보내려고 하는 남편들이 얼마나 될까? 유명한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권하면 남편들은 전공 분야 외에 또 다른 책을 읽으려들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불만은 점점 쌓여만 간다.

6. 출산과 육아

허정 씨는 유학생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사는 삶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잠시 고통을 겪었다. 그녀에 따르면, 아이가 없을 때는 나름대로 자유롭게 교회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막상 자녀가 생기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언급한다. 산후 조리와 육아로부터 오는 육체적인 피곤과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자신의 신앙생활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너무나 달라진 상황에서 오는 당황스러움과 무의식 가운데 있은 정신적인 충격, 그녀는 이를 “‘엄마’라는 새로운 자아정체성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해서 오는 혼란”이라 표현했다. 이는 산모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산후우울증이었지만, 당시에는 회복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고 고백한다. (이코스타 2006년 3월호에서 인용)

7. 대책 프로그램

낯선 환경에서 의사소통마저 단절된 상태로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게 되는 아내. 미리 예비 유학생 때부터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에 대해 미국 비즈니스 학교들이 학생 유치 전략의 일환으로 가족을 위한 각종 활동 및 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가족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족’이라는 변수가 지원자들의 학교 선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는 이 시점에서, 비즈니스위크에 소개된 다트머스 경영대학원의 사례를 들어보자.

이 학교는 예비지원자들이 학교를 돌아볼 때 배우자를 함께 초청해 이들을 대상으로 친가족적인 학교 분위기를 소개한다. 만약 지원자가 합격했을 경우, 2학년 재학생의 배우자가 신입생 배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해주고 이들의 궁금증에 친절히 대답해 준다. 아울러 입학한 뒤에는 학교 당국이 배우자들에게 지속적인 상담을 해주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과외 활동 및 외부 활동을 제공한다.

8.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

김혜진 씨는 유학생 배우자들의 고민들이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배우자뿐 아니라 유학생들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유학 사회 내에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가올 여름방학(Spring Break)에 유학생들이 지친 배우자들의 감옥을 깨어보는 것(Prison Break)은 어떨는지.

이영훈 / <코넷> 기자

* <코넷>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이코스타에 실린 유학생 배우자 김혜진 씨의 글을 위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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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niece 2012-03-06 18:15:37
Clear, informative, smiple. Could I send you some e-hu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