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노인, 교인
군인, 노인, 교인
  • 김기대
  • 승인 2017.03.1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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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전쟁 놀이 그리고 가장 비겁한 교인들

응집력에서나 충성도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3개의 단체는 모두 벗 우(友)자를 쓴다. 해병 전우회, 고대 교우회, 호남 향우회. 우스개 소리로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3개 단체라고도 하고 비슷한 성격의 다른 단체들에 비해 열정이 지나쳐 질시의 대상이기도 하다.  

박근혜 탄핵정국에서는 새롭게 선보인 라임(Rhyme)은 군인 노인 교인이다. 박근혜 탄핵 정국 초기에 숫자가 미미하던 반대인파는 동원령을 내렸던 일당을 지급했던 간에 어쨌든 갈수록 늘어났다. 마침내 주최측 추산 '1000만'을 기록했고 박근혜 전대통령은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태극기 집회의 인파가 촛불집회보다 많다며 국민들에게 (헛)웃음을 주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판결 직전까지 청와대와 피청구인측 변호사들은 탄핵의 기각을 확신하며 5단 케이크까지 준비했다는데 도대체 누가 이들의 눈과 귀를 흐리게 했을까?

태극기 집회의 주요 구성원은 군인 노인 교인이었다. 뒤집어 보면 탄핵의 숨은 공신들이다. 이들의 몰지각한 행동은 생각의 차이를 넘어 상식과 교양을 의심케 했다. 이런 행동을 보던 시민들은 기각 후에 그들이 보여줄 '난장'을 생각하면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재판 직전까지 80%이상의 여론이 탄핵을 지지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지난 3월 11일 헌재 판결을 비판하는 집회가 열렸다. @ 사진 이경미 사업부장

군인

 태극기 집회에는  '행군', '노병', '총', '칼' 등 군대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거수경례와 군가는 일상이 되었다. 켈로 부대도 선을 보였다. 켈로 부대는 한국전쟁 당시 대북정보를 수집하고 북한 후방을 교란하는 게릴라 작전을 펼친 북파 공작 첩보부대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어언 65년인데 2017년 광장의 그들이 당시 그 부대원들이었을 리는 만무하다.

사내 아이들이 어릴 적 전쟁놀이를 즐겨 했듯이 이들 집회에서 군대 놀이는 촛불집회에서 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콘서트의 대용품이다. 유명가수의 음악에 맞추어 촛불을 흔드는 연행적(퍼포먼스) 요소들이 이곳에 오면 군가와 군복, 군기, 가짜 권총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촛불집회가 전인권과 한영애, 김제동을 통해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향수한다면 군복들은 가짜 권총을 들고 군사정권에 대한 향수에 빠져든다.   

19세기 말까지 조직적인 군대를 대규모로 운영할 능력이 없었던 각국들은 의용군을 운영하는데 이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곤 했었다. 1898년 해산된 터키의 '바시보수크(bashi-bosuk)'라는 의용군 조직의 경우 전쟁이 없을 때에는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깡패와 다름없는 행동으로 대중들의 원성을 샀다. 바시보수크라는 말은 본래 '거지'라는 말이었다. 비정규군 거지 민간인 이들이 모두 거기에 해당되었다.

스페인과의 전쟁 당시 미국에도 러프 라이더(Rough Rider)라는 의용군 조직이 있었다. 훗날 대통령이 된 시오더어 루스벨트가 카우보이, 플레이보이, 백수 건달들 중에서 선발했다.  

이처럼 정규군이 아닌 의용군은 정권을 가진 자들의 구미에 따라 이용되고 버려진 자들로 그들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눈감아 주었다.

19세기 말에나 볼 수 있었던 '의용군'들이 21세기 서울에서 세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과 청와대밖에 없었다. 한국 라디오에서 소개된 어느 버스운전사의 증언처럼 '군인'들은 자식들에게 부끄러워 귀가하기 전에 옷을 갈아 입을  장소를 찾는다고 한다. 

노인

작가 최현숙씨는 계간지 문학동네 2017년 봄호에 '모든 밀려난 존재들의 악다구니는 아름답다'는 글을 썼다. 최씨는 앞서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조롱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박사모에도 가입했고 집회에 나온 노인들과 인터뷰도 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태극기 집회에 나와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공간적으로 배제된 노인들의 인정투쟁이라고 결론 지었다. 게다가 “자신들의 창구라고 생각했던 보수언론마저 잃어버리자 본인들의 시대·가치관·문화가 말살된다고 느껴서인 것으로 보인다”고 최씨는 해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려는 ‘박근혜’는 노인들의 상실감의 표상이다. 박근혜가 밀리면 그들도 밀린다는 연대의식이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텍스트 메시지 교환, 사진 올리기 정도의 기능을 사용할 줄 아는 노인들은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자신들이 결코 IT에 능한 젊은 세대들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진다. 스마트폰으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고 오직 '카카오톡'으로 전달되는 가짜 뉴스에만 매달리게 되는 까닭이다. 

독일어에는 주름이라는 말에 '다수 풍부 다양성 (vielfaltigkeit)' 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미셀 트루니에는 이것을 설명하면서 주름살은 외부표면이 내부표면으로 변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주름 즉 나이듦은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훈장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2017년 대한민국 광장의 '주름'들은 훈장이 아니라 완장을 차고 거리를 '주름잡고' 다니면서 젊은이들의 노인 폄하를 자초했다.

교인

3 종류의 '인(人) 중에 제일 알 수 없는 '인'이 교인이다. 군인과 노인은 소외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체불명의 비선 조직은 박근혜를 '소외되는 것들을 위한 상징'으로 조작했고 이러한 상징조작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자신들의 탓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을 외면해 왔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고 압력집단이다. 그들은 조찬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을 무릎 꿇릴 수 있는 조직이다. 최순실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박근혜는 목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기도를 '받았다'.  

앞의 두 계층과는 다르기에 이들을 향한 비난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목사들은 교묘한 언설을 통해 미국을 축복받은 땅으로 둔갑시키고 북한을 악마화 한다. 초대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한 채 최태민이 이단이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외면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최태민의 과거 행적들은 지금 목사들이 하는 짓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굳이 최태민을 이단이라고 여기지 않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모두가 양반이 되고 싶어하던 유교 문화의 폐해는 1970년대 명문고등학교 동문회로 전승되었고 평준화 이후 갈 곳이 없던 계급 상승 욕구는 대형교회로 집중되었다. 대형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한 때가 바로 평준화 세대의 사회 진출과 맞물려 있다.

이들은 '영락 문중' '온누리 문중' '사랑의 문중' '순복음 문중'이 되어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을 한다. 진보와 동성애을 옹호하는 집단은 '정파'들이 보기에 모두 '사파'다.  그런 점에서 교인은 소외심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하여 광장으로 나온 집단이다. 실제로는 '박근혜결사옹위' 보다 박근혜 이후를 겨냥한 '문중지키기'로 나왔다. 박근혜 측에서 보기에는 가장 비겁한 집단인 것이다.

교인들의 대규모 집회가 탄핵반대집회와 겹친 것에 대한 비난이 거세자 이영훈 목사(순복음 교회)는 우연히 겹쳤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달리 진심이었을 것이다. 탄핵이 기각되면 공신이 되고 인용되면 '구국집회'가 되는 줄타기를 했기 때문이다. 2017년 광장은 교인을 가장 비겁한 집단으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김기대 편집장 / <NEW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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