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전쟁'
'우리의 소원은 전쟁'
  • 김기대
  • 승인 2017.03.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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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이 불편하면서도 읽히는 이유

'댓글부대'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장강명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예담, 2016년)은 어느 날 북한이 붕괴되었다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한반도의 지배권을 남한 군대와 UN평화 유지군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수세력들이 좋아하는 '흡수통일'이 된 듯하다.

하지만 통일된 공간은 낙원이 아니었다.

"새로운 무법천지가 왔다. 북조선에서 돈 버는 자들은 다 사기꾼들이다. 뇌물을 가장 많이 쓰는 자가 남쪽 기업이나 공무원과 일할 기회를 얻는다. 힘 좀 쓴다는 녀석들은 모두 조직폭력단에 가입해서 다른 사람들을 갈취하고 있다."

휴전선은 없어졌지만 그 자리에 분계선이 설치되었고 남한은 '난민'을 막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지뢰를 옛 비무장 지대에 매설한다. 북한 주민은  6~70년대 남한처럼 노동력으로만 인식되어 착취의 대상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설은 우울하다.

 

군복무를 마쳤으나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다시 군대에 소집된 강민준 대위,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장기철, 평화유지군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인도네시아 여군으로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 혼혈인 미셀 롱. 이 세 사람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소설에서 북한의 인권, 3 대 세습 등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한국의 보수 세력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소설은 상당히 불편하다. 작가가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보수적이라는 말을 한 이유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소설 중 강민준의 이야기에서 작가의 대북관이 보인다. 미셸 롱이 남한 사람들은 통일을 원한다고 하면서 왜 북한에 적대적이냐고 묻자 강민준은 이렇게 답한다.

“질려버린 거죠. 옆집 사람이 매일 롱 대위님 집 대문에 칼을 꽂고 욕설을 퍼부으며 살해 협박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쇼. 그러기를 수십 년인데, 그 옆집 사람이 진짜로 심각한 위협이 된 적은 별로 없다고.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그 옆집 사람을 이사를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냥 지겨워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 자체가 싫어집니다. 짜증만 날 뿐이에요." (226쪽)

가슴이 답답해 지는 부분이다. 세계 최강의 미군과 연합으로 북한의 턱밑에서 대규모 훈련을 해왔던 것은 오히려 남한이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작가는 보수 언론이 쏟아내는 틀에 갇힌 듯 하다. 북한의 군사 훈련은 도발의 징후고 한미 연합훈련은 정례 훈련이 되는 그 프레임 말이다. 강민준의 이야기와 달리 북한 주민 입장에서 '매일 대문에 칼을 꽂고 살해 협박'을 한 쪽은 한국과 미국이다. 욕은 저쪽이 이쪽을 향해 많이 했을지 모르지만.

이처럼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소설은 흡수통일 혹은 세습 정권의 붕괴에 대한 환상을 접으라는 반면교재로 읽히는 장점이 있다. 통일 후에 북한에 인프라 투자를 하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접으라는 부분도 새겨 들을만하다. 남쪽의 천박한 자본주의는 통일 후 북한 주민들과 이익을 나눌 최소한의 연민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치던 대통령은 '대박'을 내기 위해 개성공단의 문을 닫았고 서둘러 사드 배치를 결정했으며 그의 수하들은 간첩을 조작해 내더니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북한 식당 여성들을 한국으로 강제로 데리고 오는 악수를 뒀다. 그의 대박 정책에 따라 통일이 되었더라면 아마도 장강명의 소설대로 한반도는 저주의 땅이 되었을 것이다. 쫓겨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이 지점에서 차기 대선을 향해 달리고 있는 주자들은 어떤 통일관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보수세력의 표심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 무주공산이 된 그 쪽의 표를 얻기 위해 모두가 민감한 남북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허사(虛辭)조차도 찾을 수 없다. 국가 보안법 존치 여부, 개성공단, 사드 배치 문제에 어물쩡 넘어가면서 모두 미국의 금인(金印- 명나라에서 조선의 왕을 승인하는 표식)이 있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듯이 미국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

후보들은 일단 정권교체가 중요하니 정권을 잡은 다음에 진면목을 보여주겠다고 속으로 칼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대중은 솔직한 지도자를 원하지 마음에 묻어둔 지도자를 원치 않는다. 외연을 확장하겠다고 모아 놓은 어중이 떠중이들이 나중에 묻어둔 뭔가를 영원히 묻어 두도록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솔직했던' 트럼프를 반면교사로 여겨야 한다. 

선거일이 다가와서 음모에 따른 거대한 북풍사건이 터지고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고 외치는 듯한 대북 강경책을 가진 후보가 하나 나오면 판은 소용돌이 치게 된다.

미루지 말고 지금 그대들의 통일정책을 과감하게 밝히라! 그것이 조작된 북풍 앞에서도 견딜 수 있는 '맷집'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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