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왜 그러셨어요?
교수님, 왜 그러셨어요?
  • 김기대
  • 승인 2017.03.2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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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부대의 실내 버전에 이름을 올리다

한국시간으로 20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국가원로 100여명이 서명한 비상시국 성명서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기독일보 인터넷 판이 보도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대표적인 인사들은 이명현 전 교육부장관, 고영주 MBC 이사장, 안병직 전 서울대교수, 정길생 전 과학한림원 이사장, 장선덕 전 부경대총장 송희연 전 KDI 원장, 이갑산 범시민사회연합 상임대표, 이석연 전 법제처장, 손봉호 전 서울대교수, 백성기 전 포항공대총장 등이다.

고영주 MBC 이사장은 지난 2013년 1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 하례식에 참석해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라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가 지난 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측에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는 1981년 부산의 대표적 학생운동 탄압사건인 부림사건에서 피고인들에게 중형을 구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담당판사는 태극기 집회에서 명성을 날린 서석구 변호사였고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백성기 전 포항공대 총장은 총장 재임 당시인 2010년 캠퍼스 내 영어 사용을 원칙으로 하는 '영어 공용화' 선언을 공표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백총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선 나부터 3월 2일 입학식 식사(式辭)를 영어로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는 뉴라이트 운동의 좌장이며 식민지 근대화론과 종군 위안부 강제 동원 부정 등 막말을 일삼았다. 새누리당의 부설 연구소장을 지냈다. 

이런 명단에 손봉호 전 서울대 교수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교회 개혁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고영주 안병직 등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 (손봉호 교수측은 개헌 내용만 인지한 채 서명했다고 정정 요청을 해왔다).

지난 2007년 동덕여내 총장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학교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손봉호 교수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본보제휴 오마이 뉴스 사진

​몰론 보수가 나쁜 가치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오른 쪽으로 기울어진 한국의 지형에서 '건전한 보수'는 오히려 지금 야권을 규정하기에 더 적절한 명칭이다. 문재인은 군대에서 훈장 받은 발언으로 진보진영에서 공격 받고 있으며 안희정은 연정 발언으로 곤혹을 치렀다. 두 사람 모두 보수층에 러브콜을 보내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재명 정도를 진보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역시 성남시 행정을 하면서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많이 폈다.

지금 한국 정치지형은 진정한 진보가 없어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중도 자유주의자들을 진보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100인이 결코 건강한 보수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의 시각이 그만큼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들 100인의 성명서는 친박 세력은 물러나야 한다고 나름 균형을 지키는 듯이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현재 여론 조사상으로 앞서고 있는 정치 세력을 "안보불감 정권, 경제무능 정권, 포퓰리즘 정권"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이런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개헌을 하라고 촉구한다.

지금 정치권에서 조차 개헌논의가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특정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받고 있는데 이들은 자기들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개헌'카드를 껴내 들었다. 비례대표선출을 정당명부제로 바꾸라는 그럴듯한 주장도 있으나 다시 그들은 속내를 드러낸다. 

"이러한 우리들의 제안이 실천에 옮겨지기 위해서는 이번의 탄핵사태를 초래한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퇴진이 요구된다. 그리고 현재의 국민의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은 연합전선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게 뭔가?  이건 노골적 선거 훈수 아닌가? 그들의 선거 개입은 다음 글에서 더욱 뚜렷해 진다. 

"지금 야당의 어떤 대선후보는 지금까지 정치의 틀은 그냥 둔 채 정권교체만 이루어지면 대한민국이 새로운 나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하여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아래서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시행해 온 햇볕정책의 기본 틀 안에서 오늘의 안보위기를 대처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작금의 상황은 그러한 안이한 발상으로 이 문명사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처지가 결코 아니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문명사가 뭐길래

지금 세계는 나눔과 사회주의를 다시 고민하고 있다. 가끔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기 위한 극우 정당들이 부각되기는 경우도 있지만 거대한 흐름은 부의 편중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는데 그들이 아는 문명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구성원도 그렇고 주장하는 내용도 그렇고 그냥 태극기 부대의 실내 버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998년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인물과 사상'(계간지)을 창간해 그의 말대로 '금기와 성역에 도전'했다. 금기와 성역이란 이른 바 '우리 편'에 대한 성찰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여파로 생겨난 부분적 민주화 이후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은 많았으나 내부에 대한 성찰은 부족했다. 강교수는 자신이 만든 문구인 '싸가지 없는 진보'들에 대한 실명 비판을 함으로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도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기독교 내에서도 이런 성역과 금기는 존재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손봉호다.  그가 기윤실을 통해 이루어온 교회 개혁에는 박수 받을 부분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항상 작은 운동을 한답시고 거대 담론을 무력화시키는 데 이용되었었다. 사회의 변화에는 사적인 영역의 생활운동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거대 담론을 제시해야 할 때도 있는데 손봉호는 늘 작은 변화를 선택했다. 그가 고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시작한 '내탓이요' 운동이 대표적인 경우다.  80년대 후반 미완의 6월 항쟁을 완결하기 위해 아직 '네 탓'을 찾아야 할 여지가 많았지만 손봉호는 내 탓이라며 더 이상의 구조적 개혁에 반대하고 나섰다.

6월 항쟁 당시 완성하지 못한 개혁으로 한국 사회는 오랜 몸살을 앓다가 30여년 만에 다시 기회를 잡았는데 이들이 나서 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손봉호의 이런 '공헌'을 지적하면 소위 개혁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비판 받기 일쑤였다. 그는 '금기와 성역'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우익 정치 세력들의 단결을 촉구하는 '큰 싸움'에 이름을 걸었다. '개헌' 내용만 듣고 서명했다는대 그걸로 해명이 될 지는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에게 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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