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없어 경선 포기한 김문수, 그래서?
1억 없어 경선 포기한 김문수, 그래서?
  • 김기대
  • 승인 2017.03.25 01: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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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나?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기탁금 1억이 없어 경선을 포기한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가 화제다. 김문수 전지사의 2014년 공직자 재산 신고액을 보면 총 4억5177만원으로 2014년 기준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16위였다. 꼴찌는 마이너스 신고를 한 박원순 서울 시장.

지난 해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의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던 김문수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상대 후보인 김부겸 현 더불어 민주당 의원 측이 공시지가 총액이 26만원인 조부 산소를 누락했다고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했었다. 당시 야권지지자들은 겨우 26만원 누락을 문제 삼냐며 김문수측을 비난했다.

그러나 김문수에게는 돈 액수보다 법을 위반한 점이 더 큰 사안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에게는 경상도 출신의 선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광역단체자중 16위의 재산은 8년 동안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그의 청렴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jtbc의 인기 프로그램인 '썰전'에서 전원책 변호사가 1억을 준비 못한 그의 청렴성을 높이 사자 맞수 유시민 작가도 지체 없이 공감했다.

김문수 전지사는 청렴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박원순 시장은 청렴이라기 보다는 오랫동안 시민 운동을 하면서 생긴 빚 때문에 꼴찌를 기록했다면 김전지사의 16위는 도지사 자리에 있으면서 각종 청탁과 이권에 말려들지 않아서 얻은 영예다. 게다가 보수진영으로 말을 갈아타기 전 노동운동의 세월은 그와 재산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일반 서민들에게 4억여 원은 적은 재산이 아니지만 김문수의 경력에 비추어 보면 분명 많지 않은 재산이다. 그의 청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청렴은 좋은 덕목이다. 그러나 청렴이 무기가 될 때는 위험해 진다. “백합이 썩을 때 그 냄새는 잡초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고 셰익스피어가 말하지 않았던가? 김문수를 보면 이 문구가 떠 오른다.

청렴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나?

지난 2004년 딴지일보의 김어준이 김문수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 인터뷰의 제목은 "늘 열심히 살았는데 왜 세상에는 ‘그의 편’이 없을까"였다.  인터뷰 당시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의결로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의 대표로 출마했다가 큰 표차로 떨어진 상태였다. 당시 김문수를 누르고 당대표가 된 사람은 박근혜였다.  

노동운동가 시절의 김문수

​김어준은 김문수의 배경을 아주 잘 집어낸다.

"몰락한 양반으로 사적 이해를 추구하는 건 좀팽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문중 제사, 상소문 편찬, 비석 세우기를 평생의 업으로 여기고 봉건적 도덕률에 충실했던 아버지 밑에서 사서삼경을 배우고 대학 때까지 서당을 다닌 그에게, 애국적 시와 <사상계>를 고등학교 시절부터 탐독하며 국가를 사랑하려면 경영학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학과를 선택했을 만큼 경도됐던 그 시절의 감성적 민족주의는, 이데올로기라기 보단 가풍이었다. "

“입신양명을 바라는 건 소인들이나 하는 짓으로, 제대로 된 사람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를 무한히 희생해야 한다고 지식인의 시대적 의무를 담론하는 이념써클. 그에게 이념은 아버지의 문중이 된다."

김어준은 "그의 ‘변절’은 ‘전향’이라기 보단 25년간 부여잡았던 이념의 공백을 대신한 ‘진로’였다"고 분석하지만 유교적 선비 정신과 서구 이념으로부터 배운 계몽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노동운동이 벽에 부딪혔으면 지조를 꺾기 보다는 산 속에 들어가 세상을 탓하며 사는 것이 꼿꼿한 선비에게 어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그에게 계몽주의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내 나서서 민중을 교화하리라!  내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부패한 보수세력을 바로 잡으리라!

다음은 김어준의 분석이 돋보이는 인터뷰 내용이다.

"수구세력에 부역하는 자신을 조감할 능력을 상실한 채, '부패했고 민심과 떨어졌기에 오히려 자신이 역할이 있다'는 앙상한 합리화에 옹색하게 의지해 이념이 거세된 흉터를 청렴과 성실의 ‘품성’으로 ‘아까징끼’하며 어떻게든 제 자릴 찾아보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고 돈도 못 벌고 욕까지 먹으며' 열심히 일해 이룩한 것이라곤 그래도 '부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라 맥없이 자위하는 그는, 핸들은 간 데 없고 엑셀만으로 질주하다 이제는 '솔직히 지쳤다' 고백하는 외로운 고아다"

13년 전 인터뷰 때와 지금의 그는 전혀 변한 게 없다. 청렴이란 걸 굳게 지키고 있지만 그걸 자산으로 다른 걸 정당화 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남양주 소방서에 긴급전화를 걸어 관등성명만을 요구하는 해프닝을 벌인 일이다. 그는 지난 2011년 12월 19일 암환자 응급 이송 체계를 점검한다며 자신이 도지사라는 사실을 누차 강조하면서 전화를 받는 소방관이 '예의'을 갖추어 주기를 기다렸다. 그는 청렴하지만 자신이 양반임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극 속 몰락 양반의 행태를 보였다.

친박집회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그의 요즘 언행도 이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깨끗하기 때문에 옳으며, 옳음을 모르는 이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듯 하다.

소이연과 소당연

유교에는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 이라는 개념이 있다. 소이연은 이(理)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 가운데 자연적 원리를 담당하며 소당연은 윤리적 원리에 해당한다. 

청렴 혹은 가난을 예로 들자면 이것들은 자연스러운 원칙, 즉 소이연으로  파악해야 한다. 자랑하거나 내세울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부를 축적할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렴으로 이겨 낸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것을 마치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소당연의 윤리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기가 한 당위(당연)를 다른 무엇인가로 보상받고 싶어한다. 결국은 자신을 알아 달라는 인정 투쟁을 넘어 계몽의 단계로 넘어가서 모든 이를 가르치려 든다.

이제 쉬면서 김문수는 서당 다닐 때의 한학 공부 경험을 되살려 소이연과 소당연에 대해 좀더 깊이 탐구해야 할 듯하다. 더불어 계몽주의는 이미 폐기된 사조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공부도 필요해 보인다.  

한 기독교 원로께서 어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그의 청렴함을 높이 사던 사람들은 그만큼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되묻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분은 일종의 해명방송에 나와 박근혜를 구속하면 수준 낮은 나라 소리를 듣는다며 '걱정'을 했다. 박근혜의 구속 여부에 대한 찬반은 있을 수 있고 어느 주장을 하든 자유다. 그런데 '수준'이라니? 누가 누구의 수준을 말하는가?

계몽주의 시대 서구는 그 '수준'을 앞세워 얼마나 많은 비서구 사회를 침략했는가?  지긋지긋한 계몽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 곁에 짙게 드리워 있다. 

김기대 편집장 / <NEW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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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한 2019-11-10 21:39:31
8년 도지사에 4억 재산가라면 청렴한 사람이지 문죄인처럼 양산 아방궁 저택을 가져야 청렴한 것인가? 지 애미도 x 같이 모시는 호로새끼인데 말이야.

와검 2017-04-06 04:05:20
김문수씨가 청렴하다는걸 처음듣네요..ㅎㅎ
손봉호 교수님의 '수준' 인가보죠..

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