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되짚어보기] 한국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뉴스되짚어보기] 한국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 지유석
  • 승인 2017.04.09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민사회 방미 대표단 활동을 되돌아보다

“워싱턴에서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한미 양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 반대입장을 전하고자 미국을 방문한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겸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가 남긴 말입니다. 

이래경 공동대표를 비롯해 안재웅 전 YMCA 이사장,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안충석 신부, 이삼열 민주평화포럼 상근대표 등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대표들과 ‘주권자 전국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로 이뤄진 ‘사드 반대를 위한 방미 한국 대표단’(아래 방미 대표단)은 4일부터 9일까지 미국 현지를 방문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대표로 이뤄진 ‘사드 반대를 위한 방미 한국 대표단’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5일 백악관 앞에서 교민 단체인 미주한인희망연대와 함께 공동으로 사드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 미주한인희망연대

방미 대표단의 미국행은 지난 5일과 6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 발맞춰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이뤄졌습니다. 방미대표단은 5일 오전 백악관 앞에서 교민 단체인 미주한인희망연대와 함께 사드배치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어 워싱턴에 위치한 두뇌집단인 맨스필드 재단을 찾아 프랭크 자누지 대표와 면담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래경 공동대표의 말처럼 워싱턴에서 한국은 투명한 존재였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사드는 의제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북한의 핵 계획이 심각한 단계에 들어섰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핵 포기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원론적 수준의 합의에만 도달했습니다. 한편 미국은 미중 정상회담이 임박한 시점에 시리아 공습을 감행했고, CNN과 뉴욕타임스 등 미국 유력언론들은 시리아 공습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와중에 사드는 미국 현지 여론의 관심에서 더더욱 멀어져만 갔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처한 되돌아 보려 합니다. 한미 양국의 사드배치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중국은 한국에 무역보복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설을 흘리는 와중입니다. 이에 사드배치는 한반도의 운명을 뒤바꿀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따라서 시민사회가 대표단을 꾸려 미국에 보낸 건 무척이나 고무적인 조치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의도와 달리 결과는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전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 미국인들은 국제 문제에 대해 남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걸 생생하게 느낍니다. 우리로선 사드가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고, 5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도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정작 미국 언론은 시리아 공습 보도에만 열을 올리고 있고, 미국인들은 그저 무사 태평하기만 합니다. 이 같은 경향은 남북전쟁과 9.11테러를 제외하고 미 본토에서 전쟁을 겪은 적이 없는데다, 국제 문제를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진영논리 그늘 드리운 교민사회 

김평우 변호사는 뉴저지와 뉴욕에서 시국강연을 하고 있다. 교민 사회에서는 시국강연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가 확산되고 있다. ⓒ 교민 제공

교민 사회는 어떨까요? 이곳에 잠깐 머물러 있는 입장이라 교민 사회를 이렇다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화제가 되는 사건을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속했던 김평우 변호사는 현지시간으로 8일 오후 뉴저지에서 시국강연회를 열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오는 10일 뉴욕에서 한 차례 더 시국강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는 뉴저지 시국강연에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가 죽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뉴욕 시국강연회에서도 비슷한 말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김 변호사의 강연 소식에 대한 교민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미국에 건너온 지 30년 이상 되신 분들, 그러니까 이민 1세대들은 보수 성향이 강합니다. 이분들은 김 변호사의 강연에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반면 비교적 최근에 미국에 건너온 분들의 성향은 이민 1세대와 확연히 다릅니다. 워싱턴에서 만나 뵌 한 교민은 김 변호사의 강연 소식에 “국내 정부기관이 김 변호사를 앞세워 교민사회를 뒤흔들려하는 것 같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요약하면 국내에서 횡행하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이곳 교민사회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을 관철하려면, 무엇보다 한국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합니다. 현지 동포사회의 목소리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지 동포사회는 진영논리에 따라 분열된 것 같은 인상이 강합니다. 심지어 보수성향이 강한 한인 단체가 생각이 다른 동포를 향해 서슴없이 ‘빨갱이’란 딱지를 붙이는 일도 직접 목격했습니다. 사실 낯 설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에 건너와 살면서 동포끼리 단합해도 하루하루 생활하기가 벅찬 게 이민생활의 현실입니다. 단합해야 할 동포사회가 진영논리에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사드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진영에 따라 입장차가 확연합니다. 이런 와중이기에 미국에 우리의 이해를 효과적으로 관철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선 이후 곧장 태스크포스 가동해야 

방미 대표단은 지난 5일 워싱턴에서 한반도 전문가인 아시아 이스트 인스티튜트의 스티븐 코스텔로와 면담을 가졌습니다. 이래경 공동대표에 따르면 코스텔로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고 합니다. 

“한반도 및 북핵 문제와 관련, 미중 정상회담은 실제적인 합의 없이 끝날 공산이 크며, 트럼프 측에서는 시진핑을 강하게 압박했다고 포장하는 선에서 마무리 될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듯 한국의 새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과감한 제안으로 치고 나가면 미중 모두 출구 전략으로 한국정부에게 의존하며 따라 올 것으로 판단한다. 상황이 어찌됐든 6월중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 및 북핵 전략의 윤곽이 짜지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5월 대선이후 곧바로 신속실행전략팀을 구성하여 전방위로 접근해야 현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

스티븐 코스텔로는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그의 조언은 대선을 앞둔 한국 정부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아무래도 방미 대표단이 거둬들인 가장 의미 있는 조언이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5월 대선을 통해 들어설 새정부가 존재감을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새정부는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햇볕정책’에 버금가는 획기적 제안을 마련해 미국에 내밀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의 눈길을 잡아끌 수 있습니다. 교민사회도 진영논리를 떠나 고국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주기 바랍니다. 한국 정부의 노력과 교민사회의 단합된 목소리가 합쳐진다면 사드가 몰고 온 찬바람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