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XXX, 넌 황천길이야!
이 XXX, 넌 황천길이야!
  • 박노자
  • 승인 2017.04.20 0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이유

놀라운 것은, "한반도 위기"란 늘 한반도 내에서보다는 한반도 바깥에서 더 첨예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가 인터넷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서울은 "그저, 그런", 보통의 서울이죠. 대선준비, 세월호3주기, 보다 편리한 (?) 감방 생활을 염원하는 박근혜씨의 옥중투쟁 (?). "전쟁 위험"과 무관한 삶은 그저 흘러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데 그 사이에 한반도 바깥에서는 "서울로부터의 외국인 가족 소개" 이야기가 여러 매체에서 보이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정부 요인들까지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현실적"이라는 암울한 예상들을 내놓습니다. 한반도인들이 분단 70년간 각종 "한반도 위기"에 익숙해진 탓인지...실은 서울뿐만 아니라 평양의 일상도 그저 태평스럽다고, 거기에서 상주하는 중국과 러시아 기자들이 전한답니다.

아니면 일종의 숙명론인가 싶기도 합니다. 남한 같은 경우에는 최근의 촛불 저항처럼 밑으로부터의 저항을 통해 예외적으로 무능, 부패한 "국가수반"을 바꿀 수 있어도, 남한이 편입돼 있는 "안보레짐"을 바꿀 수 있단 생각을 이미 못/안한지 꽤나 오래 된듯합니다.

1950-60년대 혁신정당들이 매우 진지하게 "중립화통일"을 논하고 1980년대 학생들이 "미군철수"를 외쳤지만, 인제는 가장 왼쪽에 선다는 대선주자 심상정의 공약을 봐도 "균형외교"까지 들어있긴 하지, "단계적이고 남북한 공동 군축과 연동돼 있는 미군철수"같은 온건한 표현의 미군철수론마저도 볼 수 없습니다. 반대로 "튼튼한 안보"에 방점을 찍는데 아 "안보"란 "한미동맹"의 프레임이라는 걸 묵시적 전제로 할겁니다. 한반도 남반부를 미군이 군사적으로 통제하여, 결국 우리 운명이 궁극적으로 그 손아귀에 놓여져 있다는 걸 이미 "숙명"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걸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이유는, 요즘의 미국의 일련의 행동들이 안정성과 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균형상실과 취약해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동물 왕국의 왕중왕 사자"라기보다는, 힘이 빠져 은근히 불안에 떠는 야수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런 존재에 한반도 중생들의 운명을 맡긴다는 건 좀 현명치 못한 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서 북조선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했던 시리아 관군 비행장에 대한 미사일 폭격을 보시죠. 분명히 미국은 "화학무기를 사용한 불량 정권을 엄벌해주는 세계 경찰"의 자세를 취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봤자 러시아-중국-이란 소속의 아사드 정권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이런 유의 폭격을 감행하기도 힘들겠지만, 감행한다 해도 아사드 정권이 내전에서 승리한다는 결론을 뒤집기란 역부족일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미국은 자국의 무력함을 이런 폭력적 방식으로 달래고 (?) 호도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아프간에서 "세계사 최강의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거기에서 안정적인 친미정권이 전국 평정, 복속에 성공하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번 "한반도 위기"를 조성한 것은 어떻게 보면 라이벌 중국에 대한 압력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한데, 실제 감행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대북 도발 말고는 미국으로서 대중국 압박 수단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반증한 것입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치고는 실제로는 이미 너무나 능력과 균형의 상실이 큰거죠?

여러분들은 아마도 그런 경우들을 종종 보곤 했습니다. 술에 마취한 중년의 아저씨는, 옆에 아무나 멱살 잡아 "이 XXX, 너 인제 황천길이야! 너 죽어!, 짐 바로 죽어!"를 막 외쳐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다가 정말 칼이 휘둘러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멱살잡이, 고성, 가벼운 주먹다짐으로 끝나고 말지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고주망태 아저씨들을 보면 정말 강자라고 할 지역 조폭 보스나 삼성 임원 등등은 있을까요? 보통은 아니죠. 보통은 이렇게 해서 "헬조선"의 중년의 패배자, 낙오자들이 그 한을 원풀이하는 겁니다.

지금 트럼프의 미국이 "광인극", 미치광이 행세를 해서 북한에 핵 방망이를 당장이라도 내려칠 것 같은 광경을 벌이지만, 그 광경은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힘이라기보다는 그 힘이 점차 약화돼간다는 점을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일관성이 있고 효과라도 날 것 같은 "정책" 대신에 중국, 러시아, 북조선 등에 대해 스펙타클이랄까 일종의 연출로 보이는 도발 흉내를 내는 겁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한반도 해역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핵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당초 미국 국방부 발표와 달리 지난 주말까지 인도네시아 해역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짜 뉴스'의 근원과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에 의한 "한반도 위기" 조성은 남한 시민에 대한 협박이기도 합니다. "안보 위기" 상황에서 좀 더 보수적인 쪽이 대선에서 이기거나 덜 보수적 쪽이 이긴다 해도 "안보" 문제에 있어서 바로 더 보수화될 것을 노골적으로 기대하는 거죠. 주요 대선후보들이 사드 관련해서 "수용"하는 입장으로 줄줄이 선회하는 걸로 봐서는, 이 협박은 이번에는 통하는 듯합니다.

한데 영구적으로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이번의 "사드질"만 해도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국가위신 추락은 둘째치고 경제적 손실부터 대단히 컸습니다. 앞으로 "힘이 빠져가는 야수"의 협박에 넘어가 이웃나라를 해칠 "안보 조치"를 취할 때마다 그 대가 역시 커질 겁니다. 그런 비용을 감당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이러다가는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대기업까지도 조심조심하게 "탈미국"의 가능성을 논하게 되는 시점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교수(박노자 글방에 실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