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되짚어보기] 성소수자는 찬반을 떠난 인권의 문제
뉴스되짚어보기] 성소수자는 찬반을 떠난 인권의 문제
  • 지유석
  • 승인 2017.04.26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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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의제 둘러싸고 공방 벌인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 후보
25일 진행된 TV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성소수자를 주제로 공방을 벌였다. ⓒ JTBC 방송화면 갈무리

홍준표 : 군에서 동성애가 굉장히 심하다. 동성애는 국방 전력 약화로 이어지는데, 동성애를 반대하느냐?

문재인: “반대합니다”

홍준표: “반대합니까?”

문재인: “그럼요”

홍준표: “차별금지법이라고…이게 사실상 ‘동성애 허용법’인데..동성애 반대하는 게 분명합니까?”

문재인: “저는 뭐..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

25일 밤 진행된 JTBC 대선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사이에 오간 질의다. 얼핏 홍 후보의 질문은 뜬금 없어 보였다. 그러나 홍 후보의 질문은 사실 치밀한 계산의 결과라고 본다. 

홍 후보의 행보 중에 눈에 띠는 지점은 9일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이영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그리고 23일 은혜와진리교회 조용목 목사를 차례로 예방한 일이다. 검색 결과 홍 후보의 종교는 개신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척 의외다. 거칠기로 소문난 그의 언행을 보나 정치인, 그리고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의 이력을 보나 종교와 거리가 먼 인물 같아서다. 

개신교 신자인 정치인이 목회자를 만난 일이 새삼스럽지만은 않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 이영훈 목사, 조용목 목사 모두 보수 정당에 우호적인 목회자들이다. 특히 조용목 목사는 지난 3월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 성도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홍 후보가 이들을 차례로 만난 건 다분히 보수 대형교회의 표를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홍 후보는 조용기, 이영훈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보수 우파가 결집하면 선거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후보가 성소수자 쟁점을 꺼내든 것도 보수 기독교계의 표심을 의식했을 공산이 크다. 홍 후보의 질문에 대해 문 후보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러자 홍 후보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공세의 고삐는 놓치지 않았다. 홍 후보는 재차 “동성애 때문에 대한민국에 얼마나 에이즈가 창궐했는지 아냐”고 물었다. 문 후보의 답은 이랬다.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

문 후보의 답변은 무난했다고 본다. 물론 성소수자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웠겠지만 말이다. 실제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상에선 문 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는 게시물들이 속속 올라왔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개인의 정체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 후보의 발언은 무척 실망스럽다. 지지율 1위 후보인 점을 떠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예민하지 못해 보여서다.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선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발언이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심 후보의 말이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개인의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이지만 성 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심 후보의 지적대로 한 인간의 성적 지향은 찬성하고 반대하고 말 성격이 아니다. ‘동성애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당신은 왜 이씨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의미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문 후보의 답변은 세련되지 못했다. 문 후보의 발언이 본인의 인식이었는지, 아니면 보수 기독교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만약 전자라면 성소수자 의제와 관련해 감수성을 키워야 할 일이고, 후자라면 보다 과감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힐 것을 주문하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 홍 후보는 성소수자 문제를 건드리며 보수층에게 추파를 던지는 한편, 문 후보 지지층 흔들기를 시도했다. 일정 수준 홍 후보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문 후보의 발언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아래 무지개행동)' 활동가 20여 명은 26일 오전 문 후보의 기자회견장에 뛰어 들어 "성소수자 혐오발언 사과하라", "문 후보는 적폐청산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문 후보의 발언이 적절했느냐의 여부와 무관하게 성소수자 의제는 대선 판세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우선 역대 대선에서 이 의제가 판세를 뒤흔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적이 없는데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 문제를 공적 논의의 장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일만큼 성숙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번 따져보자. 온 국민이 지켜보는 TV토론의 장에서 성소수자 관련 쟁점을 두고 사상검증식의 질의응답이 오가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 아닌가? 더구나 이런 상황을 기독교, 특히 보수 개신교계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더더욱 뼈아프다. 

성소수자 의제는 보다 사려깊은 접근이 필요하다. 문 후보를 비롯해 대통령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가 배려의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특정 세력, 성소수자 의제의 경우 보수 개신교계의 표를 의식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안될 말이다. 성소수자들에 자신의 성정체성은 자신을 찌르는 가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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