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당한 일이어든 죽기로 싸울 것이요
기자수첩] 정당한 일이어든 죽기로 싸울 것이요
  • 지유석
  • 승인 2017.05.01 0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드 반대 선봉에선 원불교, 개신교 부끄럽게 해

국가가 어려울 때, 특히 국가 최고위 권력자가 전횡을 저지를 때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지난 28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든 의문이다. 

소성리는 조그만 산골마을이다. 원래 사드 부지는 성산포대였다. 그러나 성주 군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국방부는 이곳으로 부지를 옮겼다. 현지에 가보니 산골이고 주민도 약 1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국방부나 정부가 반발이 적을 것이라고 보고 이곳을 낙점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국방부가 성산포대에서 소성리로 부지를 변경하자 성주군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냉각됐다. 소성리 주민들도 이런 사태흐름을 간파했나보다. 대구에서 왔다는 한 활동가는 “이곳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며 한탄했다.

자칫 패배의식에 젖기 쉬운 마을분위기를 다잡아주는 이들은 원불교 교무들이다. 원불교 교무들은 주민들과 짝을 이뤄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사드 부지로 들어가는 길목인 진밭교 앞에 간이 교당을 마련해놓고 사드 철회를 염원하고 있다. 원불교는 이곳을 평화교당이라고 이름 붙였다. 

원불교가 사드 쟁점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해 7월이다. 당시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롯데 골프장이 사드 제3부지로 급부상했었다. 원불교가 술렁인 이유는 롯데 골프장이 원불교 창시자의 수제자이자 평화의 성자로 추앙 받는 정산 송규 종사의 탄생지와 멀지 않은 위치여서다. 물론 원불교는 사드 배치 논의가 활발해지던 시기에 일찌감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그런데 롯데 골프장이 제3부지로 급부상하고, 급기야 롯데 측이 국방부에 이곳을 내주기로 하면서 원불교는 종단 차원에서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주 소성리 진밭교 원불교 평화교당엔 ‘사무여한’이란 글귀가 적힌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 지유석

원불교 평화교당 앞엔 흰 깃발이 나부낀다. 그 깃발엔 이런 한자 글귀가 적혀 있다. 

‘死無餘恨’

말 그대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 사드를 막을 수 있다면 목숨마저 버리겠다는 결기일까? 아무래도 그래 보인다. 지난 26일 새벽 사드 장비가 롯데 골프장으로 들어가자 현장을 지키고 있던 원불교 교무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이 와중에 몇몇은 경찰에 끌려갔다. 이후 또 다른 교무들은 서울 광화문으로 장소를 옮겨 곡기를 끊었다. 

종교는 순진한 이상을 추구한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행동을 종교 이기주의로 폄하한다. 그러나 종교 이기주의란 시각은 검증이 필요하다. 종교를 내세운 집단 이기주의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집단행동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지만 보면 된다. 

정부와 한미 군당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북핵 위협 억제다. 이에 맞서 원불교는 줄곧 평화를 외쳐왔다. 즉, 북한 핵이 가져온 안보 위협에 대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 핵을 가질 명분을 없애자는 말이다. 

이 같은 입장이 너무 순진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종교 본연의 모습은 순진해 보이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종교가 현실세계에서 횡행하는 정치논리를 닮아가면 그걸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

개신교로 눈을 돌려보자.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든 쟁점 현안에서 개신교가 보여준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원불교 교무들 앞에 그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물론 성주 소성리엔 지킴이를 자처하며 아예 그곳에 상주하는 개신교인들이 있다. 그러나 신도 많고 힘 있는 교회들에서 '사무여한'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건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가 돈많고 힘있는 교회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홍 후보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이영훈 목사, 은혜와진리교회 조용목 목사 등을 차례로 만났다. 그가 만난 목회자들은 하나 같이 보수 정권에 우호적인 인사들이었다. 홍 후보는 더욱 거침이 없었다. 지난 28일 홍 후보는 보수 개신교 연합체인 한국교회연합을 찾아가 "절반 정도 선거운동을 했는데 목사님들이 좀 나서주시면 판을 한 번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목회자라면 그의 발언에 자제를 요구하는 게 맞다. 교회가 선거에 적극 개입해달라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개신교계, 원불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교회는 특정 정파에 기울어서는 안된다. 다만 현실정치가 비윤리적인 행위를 자행하고 그 결과 국민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호되게 질타를 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교회, 특히 힘 있고 돈 많은 보수 대형교회들이 이런 역할을 감당한 적은 사실상 없었다. 그보다 보수 정권이 곤경에 처했을 때 구원투수 역할을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지난 3월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진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성도들을 동원한 조용목 목사가 대표적이다. 이러니 홍준표 후보가 대놓고 보수 교계에 손을 내미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홍 후보의 러브콜에 보수 목사들은 잠잠하다는 점이다.

28일 오후 주민들과 경찰 사이에 두 번의 충돌이 있었다. 이때마다 원불교 교무들은 서로의 몸을 감싸며 경찰과 맞섰다. ⓒ 지유석

지금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주민들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원불교 교무들이 이들의 곁을 지켜주고 있지만, 또 몇몇 가톨릭 신부와 개신교 목회자들이 지킴이로 발벗고 나섰지만 벌떼처럼 달려드는 경찰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절실한 건 연대다. 부디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이 선봉에 서 줬으면 좋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의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던가? 개신교인들이 원불교 교무 및 성도와 함께 합력해 선을 이룬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