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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은 진보의 1중대인가 야당의 2중대인가훌다를 닮은 심상정 - 성서 인물로 본 대선 주자(5)

그런 결과가 일어나지야 않겠지만 진보 진영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심상정의 득표가 진보진영의 표 분산을 가져와 더불어 민주당이 집권에 실패하는 경우다. 이때 일어날 일은 가히 비극적이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들은 집권 실패의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기 보다 심상정에게 돌리면서 진보 진영 내에는 심각한 비난전이 난무할 것이다. 지난 2010년 한명숙이 서울 시장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오세훈에게 패배했을 때 노회찬이 그 비난을 고스란히 떠 안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미 SNS공간에서는 이런 가능성을 두고 양 진영의 공방이 뜨겁다. 어떤 이는 달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협박하기도 한다. 타인의 표 행사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야 말로 민주적이지 않다. 과연 이런 공방전은 온당한가? 더불어 민주당과 정의당은 엄연히 다른 정당인데 한 정당의 득표가 다른 정당의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게 불안하다면 자생력을 더 키우면 된다. 문재인 지지자들의 각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강간모의 미수범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있다. 그에게 표를 던지는 일은 범죄를 옹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정의당은 그런 대접을 받는데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이건 정의당 입장에서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그들은 왜 항상 보수 야당의 2중대로 인식되는가? 왜 진보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선거 막판에 사표론을 의식해 보수야당에  비판적 지지를 보낼 수 밖에 없는가?

이건 그들이 '이게 바로 진보'라는 의제를 생산해 낸 적이 별로 없었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노회찬 유시민 등 스타들을 보유하고도,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박찬욱 감독 같은 든든한 응원군을 확보하고도 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보수 야당의 2중대처럼 인식되곤 했다. 노동을 비롯한 모든 의제에서 더불어 민주당보다 조금 왼쪽으로 갈 뿐 그들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동성애 논쟁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의 실수가 있고서야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왔다. 이전까지는 숨은 공약이었다가 호기를 만났다 싶을 때 들고 나온 것은 비겁하다. 동성혼 합법화의 공약 제시도 없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른바 NL(자주파)과 갈라서서 정의당을 분당할 때부터 '진보'를 독점하기에는 부족한 정당으로 각인되었다. 여기서 자주파가 옳으냐 평등파(PD)가 옳으냐의 문제는 별개다. 당내 투표 과정에서 '불법'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분당사태로까지 갈만큼 큰 일이었느냐를 두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군대에서 간첩으로 몰렸다가 결국 무죄가 입증된 드레퓌스 사건을 진보의 '대중적 상품'으로 만들었던 일등 공신은 유시민이다. 그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던 드레퓌스를 '스타(?)'로 만들었다. 그랬던 유시민이 이석기를 비롯한 당내 NL세력에 주홍글씨를 새기는데 앞장 선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신이었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종북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종북'을 두려워하면서 무슨 '진보'를 말하겠는가? 심상정은 군복을 입고 군부대를 방문해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인정'해주는 이벤트도 서슴지 않았다. 문재인의 군복과 뭐 그리 다른가?    

기원전 7세기 남유다 왕국의 왕 요시야는 왕국 형성 과정에서 세를 키워간 기득권 정치 세력들을 모두 처단하는 종교 개혁을 단행한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이방 종교가 성행했다는 것은 극우 반동 세력들이 요직을 차지 하고 있었다는 말과 같다.

요시야가 종교 개혁을 성공하기까지 여예언자(네비아, 남성 예언자는 나비) 훌다의 역할이 컸다. 열왕기하 22장과 역대기하 34장에 짧게 소개되는 훌다는 요시야가 자문을 구하기 위해 보낸 신하들 앞에서 왕국의 멸망을 예언한다. 성전 수리 중에 율법책(신명기)이 한 권 발견되는데 이들이 훌다에게 가서 여기 쓰인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훌다는 '이러다 망한다'는 극약 처방을 내어 놓는다. 현재 한국의 상황을 가장 비극적으로 분석하는 점이 심상정과 닮았다.

당시 가장 영향력이 있던 예언자는 예레미야였다. 요시야가 예레미야에게 신하들을 보내지 않고 훌다에게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레미야가 재야의 예언자였다면 훌다는 궁중 예언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신학자 구미정은 주장한다. 요시야는 듣고 싶은 말을 듣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다 왕국의 미래에 대한 예언은 예레미야와 훌다 모두 비슷하게 나왔다. 궁중 예언자로서는 하기 힘든 말을 했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당대의 양심적인 예언자라면 모두 아는 내용이었다.  

지난 2015년 백령도를 방문,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찾은 심상정 후보

구미정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의 다섯 개의 문 중 두 개가 훌다의 문으로 불렸을 정도로 훌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또한 예루살렘 제 2지구에 거주했다는 사실(열왕기하 22장)은 그녀가 특권층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구미정은 주장한다. 이 부분이 심상정이 가진 한계다. 여성이라는 것 말고는 심상정이 보여줄 수 있는 민중과의 연대 의식이 약해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만 보자면 박근혜의 공약이 더 진보적이었다는 말처럼 이번 대선에서 모든 공약이 엇비슷한 것도 심상정에게는 불리한 부분이다.     

훌다는 요시야의 개혁을 도운 인물이었지만 너무 싱겁게 성서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성경에서 대접받지 못했던 여성의 지위를 원인으로 삼기에는 뭔가 상투적이다. 훌다의 이름 뜻이 '족제비'라는 점도 여성 비하의 가능성을 비켜가지 않는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훌다에게 특별한 컨텐츠가 없었던 것이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시스라를 물리치던 사사 드보라와 같은 담대함이 심상정에게 더 요구되는 부분이다.

심상정은 훌다 이상으로 개혁을 이끌고 도울 인물임에는 확실하지만 그의 말은 익숙한 '클리셰'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며칠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심상정 만의 무엇을 만나고 싶다. 

김기대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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