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배반한 기독교 기업, 이랜드
예수를 배반한 기독교 기업, 이랜드
  • 허지웅
  • 승인 2008.04.17 08:53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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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이랜드 파업 300일] 예수는 민중의 편이었음을 박성수 회장은 알까

"성경에 노조가 없다"는 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말은 참신했다. 또한 강력했다. 말 한 마디로 진보적 시민사회에서 여러 해 동안 노력해 쌓아온 문제의식을 대중적으로 환기시키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상식을 거스르는 저 발랄한 교조주의는 과거 비정규직 문제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달아올라 덤벼들게 만들었다.

덕분에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에는 전에 없이 많은 사회적 관심이 쏟아졌다. 노동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대의 반개신교 정서와 맞물려 공감대가 형성된 덕이었다.

물론 문제의 주장이 "성경에는 비정규직도 없다"는 빤한 말로 애틋하게 무력화됐어도 그 물렁한 아름다움은 오래 남아 가슴을 적셨다. 도를 지나친 무지와 무식과 무념은 때때로 그토록 참신하고 강력하다. 그렇게 작년 여름은 십자가 아래에서 뜨거웠다.

▲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회원과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을 점거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이랜드 본사 앞에서 이랜드 비정규직을 위한 예배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중요한 가치들이 시장·실용·현실의 이름으로 희석되고 있는 이명박 시대

어쩌면 그것은 애초 하나님의 권능에 기반을 둔 폭력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당시 사측은 '불법 파업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노동조합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달란트에 불만을 갖지 않은 성실한 종의 소임을 다 하도록'이라는 기도 내용을 이랜드 전 직원들에게 전파했다.

하지만 다음날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홈에버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던 이들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낸 건 하나님이 아니라 공권력이었다. 진압 시작 40분 만에 농성자 전원을 연행하는 초강수였다. 공권력을 움직인 건 정권의 원칙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장의 원칙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공권력은 시장의 이해관계에 의해 작동했고 노동자들은 시종일관 촛불처럼 위태로웠으며 돕고자 하는 이들은 반개신교 공기에 위탁하지 않고선 힘을 얻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정의란 대체로 무심한 것이었다.

해가 바뀌고 상황은 더욱 불리해졌다. 이명박 정권은 '마켓 후렌들리'를 하다못해 그 자체로 하나의 시장 같아 보인다. 대통령은 7퍼센트의 경제 성장과 6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약하는 동시에 노동 시장 유연성을 강조했다. 결국 싼 값에 원칙 없이 착취하다가 언제든지 잘라 없앨 수 있는 일자리 60만 개라는 이야기다.

총선에서도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거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각 정당의 공약들만 난무할 뿐, 뭘 어떻게 고칠지에 대해선 말이 없었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말을 꺼낸 건 그나마 진보 정당 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대의 공기라는 게 그렇다.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들이 시장과 실용과 현실의 이름으로 희석되고 있다.

새 정부의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어떤 형태의 노사 갈등에도 정치적 해결을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중재자로서 정부 역할을 부정하겠다는 말이 한 나라 노동부 장관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초현실이 원숙한 실용으로 치부되는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언뜻 자발적인 기도 은폐와 이성 마비가 여러 모로 실용적일 것 같다는 생각에 닿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를 비롯해 그와 유사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의 폐악이다. 시장이 어쩌고 비정규직이 어쩌고 할 것 없이 원래 세상이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를 속속들이 전파해, 끝내 그것을 국민 이성에 체화시키고야 말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환경미화원들을 모아놓고 "못 살고 힘들어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해 모두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선진일류국가"라고 했단다. 그저 입 편한 소리고 환상이다.

"못 살고 힘들어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해 모두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선진일류국가"가 아니라 못 살고 가난한 사람이 값싼 배려와 연민 어린 동냥 없이도 떳떳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선진국가다.

▲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이랜드 노조원들이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장로로 있는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앞에서 이랜드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이랜드, 민중 편에서 투쟁하다 죽은 예수를 생각해야

부자가 모두 빌 게이츠처럼 상식적일 이유는 없다. 그저 돼지 같은 놈일지라도 정부 욕 해가면서 세금 많이 내고, 그 세금이 덜 가진 자들에게 돌아가야 정당하고 마땅한 사회다. 그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땅을 디딘 말이다. 이것이 차라리 흙내가 겹친 실용주의다.

요컨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사회적 시스템이 무력화되고 정부가 시장의 일부임을 자처하는 상황이다. 허수아비가 새들과 친구 먹겠다고 나서는 셈이다. 짱돌을 들어 농성과 시위를 하고 싶어도 "강력 대응하겠다"는 새 정부의 엄포에 소시민의 속내가 처연하다. 그렇다고 저항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저항도 시장적으로 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시장을 경유해 정부가 못하겠다고 발을 빼는 이랜드의 죄를 물을 수 있다. 불매운동이다. 이를테면 이랜드 계열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다. 당장 홈에버와 킴스클럽에 가지 않고 콕스와 헌트의 옷을 사 입지 않는 거다. 이랜드는 비정규직 분쟁과 관련해 총체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의 이름이 된 지 오래다. 이랜드 경영진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성의 있는 태도도 보여준 적이 없다. 오는 17일로 이랜드 투쟁은 300일째를 맞는다. 그 더딘 시간 동안 노조는 고된 싸움을 계속해왔다.

전체 노동자의 60퍼센트가 이미 비정규직이고 앞으로 신규 고용되는 인원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자연 흡수될 마당에 내가, 혹은 나의 부모와 자녀가 비정규직 문제와 무관하다고 착각하는 건 배변에 가깝다. "왜 사람들이 격한 방법으로 항의하고 농성을 하죠? 평화로운 방법도 있을 텐데"라고 묻는 초롱초롱한 눈들이 지금 당장 계약 해지돼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면 얼마나 더 반짝거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랜드 불매운동을 통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입증해낼 수 있다. 비정규직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조리에 저항할 수 있다. 악화일로를 걷는 우리 삶의 풍경을 개선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더 나은 삶이란 그렇게 쉬운 것이다.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였던 이남신 이랜드노조 수석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늘 기도합니다. 비정규직 없는 나라가 주님의 나라입니다. 우리의 한걸음을 모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당신, 우리에게 힘을 주십시오." 

그는 교회 집사다. 사측과 노조가 모두 입에 담는 저 유명한 예수는 2000년 전에 바로 그 '더 나은 삶'을 위해 민중 편에서 투쟁하다가 정치범으로 몰려 살해됐다. 새 정부 들어 또 하나의 강력한 권력 주체로 떠오른 주류 개신교회들은 갖은 병폐와 권력욕으로 언론과 여론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교회가 진정 예수의 삶을 흠모한다면 신의 이름을 빙자해 땅에 재물을 쌓을 게 아니라, 이제라도 '개신교 기업' 이랜드의 노조 문제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성하는 태도로 나서야한다. 그들의 신이 죽음으로 지키려했던 가치를 환기해야 한다.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이란 가능하다.

허지웅 / 한국 < PREMIERE KOREA > 기자

* 이 글은 한국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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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키 2008-04-24 22:27:33
"성경에 노조가 없다"는 이말 참 정말 어이가 없네!! 장로님 성경공부 좀 더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

바가지 2008-04-18 02:09:26
자기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채 남의 눈의 티를 보고 나무라는 격입니다. 이랜드가 잘못을 안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의 접근방식과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고 해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도무지 성경적이지도 않고 예수님이 말하신 말씀과 아무 상관도 없으며 결국 각자 자신의 이익에 앞선 정욕적인 접근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뉴조는 오마이와 같은 곳으로부터 기사를 가져오는 것 자체를 신중하게 검토하시기를 건의합니다.

바가지 2008-04-18 02:04:34
우리는 모두 구원받은 죄인들입니다. 예수를 믿고서 구원받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의인이 된것은 아닙니다. 즉, 예수의 의를 덧입고 있을 뿐이지요. 육신의 몸을 가지고 살면서 우리는 날마다 죄의 때를 또한 입습니다. 그렇때마다 우리는 예수의 거룩하신 의를 거룩하지 못하게하는 것이요,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배반하는 것임을 정녕 모르신단 말입니까? 요1 1:9절을 아십니까?

바가지 2008-04-18 01:54:08
뉴조는 이런 성경을 왜곡하는 기사는 더이상 지양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부자 가난한자를 편가르지고 오신것이 아닙니다. 부자도 구원받아야할 죄인이기에 예수를 민중의 편으로 만들어버린 이런 가짜는 더이상 성경적이지도 복음적이지도 않습니다. 부자를 편들 생각도 없고 이랜드를 옹호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닙니다. 뉴조는 성경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