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되짚어보기] 트럼프에게서 닉슨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뉴스되짚어보기] 트럼프에게서 닉슨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 지유석
  • 승인 2017.05.1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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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러시아 게이트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기밀 정보를 러시아에게 넘겼다는 <워싱턴포스트>지 보도. 이 보도로 미 워싱턴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 워싱턴포스트 화면 갈무리

트럼프는 닉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러시아 내통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보면서 떠오른 의문이다. 사태는 지난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해임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일을 잘 못하고 있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해임 당시 코미 국장이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국장을 해임한 바로 다음 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 만남을 가지면서, 코미 국장의 해임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뿐만 아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현지시간 15일 전, 현직 관리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도 공유하지 않는 이슬람국가(IS) 관련 기밀정보를 러시아에게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이러자 미 워싱턴 정가에서는 탄핵이 공식 거론되는 양상이다. 

FBI에 도전장 내민 닉슨 

트럼프 대통령은 FBI의 위상을 과소평가하는 듯하다. 창설자인 존 에드가 후버 초대 국장은 수사권 독립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후버는 정치인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찰을 감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감행한 사찰은 정치권의 외압으로부터 수사권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 점은 후버의 일대기를 그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J 에드가>에 잘 묘사돼 있다. 

그런데 FBI의 위상을 흔들려는 대통령이 있었다. 바로 리처드 닉슨이었다. 닉슨은 권력의지가 남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FBI를 비롯, 미 중앙정보부(CIA) 등 권력기관을 장악해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닉슨은 특히 후버가 쌓아놓은 정치인 사찰자료를 수중에 넣고자 했다. FBI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때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1972년 6월 미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 6층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5명의 남자가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일이 적발된 것이다. 

처음에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절도사건으로 결론 내렸고 백악관은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지는 이 사건에 닉슨 진영이 개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이때 FBI 부국장 마크 펠트는 사건을 취재하던 밥 우드워드에게 닉슨의 치부를 흘렸다. 닉슨은 FBI의 일격에 무너져 내리다 결국 1973년 사임을 발표했다. 

백악관, FBI, 워싱턴포스트 등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게이트에서도 워터게이트와 동일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뉴욕타임스>는 현지시간 16일 “트럼프가 코미에게 FBI의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코미가 직접 남긴 메모에 이를 입증하는 대화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게이트, 워터게이트와 닮은 꼴 

러시아 게이트의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 트럼프 선대본부장을 지낸 폴 매너포트, 전 외교참모 카터 페이지, 트럼프의 측근 로저 스톤 등 총 네 명이다. 그중 핵심은 마이클 플린 전 보좌관이다. 그는 2015년 러시아 국영방송 RT의 10주년 행사에 참석해 인터뷰 및 강연을 하고 총 4만 5천 달러를 받았다. 미 연방 헌법은 공무원, 군인 출신은 사전 승인 없이 외국 정부나 유관기관에서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RT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국영 홍보기관이다. 

그런데 플린 전 보좌관은 RT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게 문제가 됐지만 플린은 소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가 3월 하순, 검찰의 불기소를 조건으로 의회 및 FBI의 조사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 중인 사안에 용의자가 거래를 제안해 온 점은 본인이 유죄를 인정했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한다. 

다시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자. 이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2월 코미 전 국장과 백악관에서 단 둘이 만나 “수사를 끝내고 플린을 놔주는 것에 동의해주길 바란다. 플린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코미는 트럼프와 대화 내용을 메모로 남겼다. 만에 하나 이 메모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 트럼프는 수사 외압을 행사한 셈이다. 

트럼프의 반격은 만만치 않다. 트럼프는 현지시간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들의 대화 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언급하며 코미 국장을 압박했다. ‘우리들의 대화 내용’은 이렇다. 트럼프는 트윗을 올리기 하루 전 NBC방송과 인터뷰에서 지난 1월 코미 국장과의 만찬 및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코미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아니며, (나는) 국장직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헸다. 

한편 <월스트리트 저널>은 14일(현지시간) 트럼프를 30년 넘게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측근 3명의 말을 인용해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지인이나 다른 사람과 전화 대화를 하면서 때때로 녹음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테이프의 존재를 뒷받침할까?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집무실 테이프 역시 닉슨을 떠올리게 한다. 닉슨은 대통령 집무실에 비밀 녹음테이프를 설치해 놓고 그곳에서 주고받은 모든 대화를 녹음해 놓았었다. 집무실 녹음테이프의 존재는 닉슨의 보좌관인 알렉산더 버터필드가 상원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공론화한 뒤 1년 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다 비밀테이프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휘청거렸다. 

트럼프 역시 닉슨처럼 비밀 녹음기를 설치하고 집무실에서 오간 모든 대화를 녹음했을까? 벌써부터 야당인 민주당은 비밀 테이프의 공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CNN 방송에서 “(녹음테이프가 존재한다면) 대통령은 이를 즉시 제출해야 한다”고 트럼프를 압박했다. 

트럼프의 러시아 게이트는 과거 적국인 러시아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 트럼프는 코미 국장을 해임하는 강수를 두며 파문 차단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앞날은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처음의 의문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트럼프는 닉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트럼프가 관련 의혹을 모두 인정한다면 신속하게 러시아 게이트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버티기로 일관하면 닉슨의 뒤를 이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백악관을 떠나는 두 번째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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