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5.18정신, 정권 교체에 따라 평가 달라져선 안된다
시론] 5.18정신, 정권 교체에 따라 평가 달라져선 안된다
  • 지유석
  • 승인 2017.05.19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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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에도 ‘피의 일요일’ 사건 재조명한 영국 사례 참고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출처 = 오마이뉴스

2017년 5월18일 제37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국민들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안겼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집권시기 5.18 민주화운동은 홀대 당하기 일쑤였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2011년 임명한 박승춘 보훈처장은 6년에 걸친 재임 기간 동안 줄곧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다. 

또 이 시기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가짜 뉴스들이 들끓었다. 특히 ‘5.18 당시에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주장은 극우 인터넷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가짜 뉴스의 확산과 관련해서는 기독교계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12월 한반도 전쟁설을 유포하며 사회문제를 일으킨 홍혜선 전도사는 5.18에 대해 “여장한 북한군이 땅굴을 통해 침입했다”는 황당 주장을 내놓았고, 기독교 단체 대화방(단톡방)은 이 같은 주장을 담은 글을 퍼나르기 바빴다. 

5.18을 일으킨 장본인인 전두환씨의 회고록 출판은 5.18 민주화운동 정신 폄훼의 정점일 것이다. 전씨가 회고록에서 주장한 내용을 일부 인용해 본다.

“5.18은 ‘폭동’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계엄군 발포 명령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기독교계의 책임을 묻는다. 광주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인 그해 8월 한경직, 정진경 목사 등은 서울 시내 유명 호텔에서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상임위원장을 불러다 놓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었다. 이후 기독교계는 정권의 공공연한 비호를 받으며 교세를 불려 나갔다. 광주의 아픔을 외면한 채. 기독교계가 보수 정권 집권기에 공공연히 5.18 폄훼를 자행한 것도 지난 날의 원죄에서 비롯된 셈이다. 

진실 알리다 희생당한 이들 이름 부른 대통령 

그러나 올해 5.18은 달랐다. 새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일자리위원회 구성 다음에 이어진 제2호 업무지시였다. 이어 기념식장엔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기념사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정권 하에서 5.18의 진상을 알리려다 희생당한 네 명 희생자의 이름을 불렀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숭실대생 박래전."

그뿐만 아니다. 새 대통령은 5.18 정신과 지난 해와 올해 광장을 가득 매웠던 촛불정신을 이어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광주 영령들이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성숙한 민주주의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또 5.18 정신을 폄훼하려는 세력을 향해선 ‘용납할 수 없는 일’,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새 대통령과 함께 5.18을 맞이하면서 그동안 마음 한 구석에 쌓여 있던 한이 가시는 기분이다. 또 지난 9년 동안 어떤 시절을 살아왔는지 되돌아 보게 만든다. 보수 정권 시절, ‘소통의 달인’이자 늘 명연설로 청중을 휘어잡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보고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국과 미국의 처지가 뒤바뀐 듯 하다. 적어도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오바마 대통령 부럽지 않다. 

그러나 그저 감동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모든 주장들에 대해 엄벌이 가해져야 한다. 이 점은 새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약속한 만큼 후속조치가 따를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보수-진보 정치세력의 정권교체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정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서는 안된다. 영국 정부가 1972년 북아일랜드 데리시에서 일어난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을 접근한 방식은 훌륭한 참고 사례다. 1972년 1월 데리시 시민들은 영국의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맞서 거리시위를 벌였다. 이때 영국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진압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13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1972년 북아일랜드 데리시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을 그린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 ⓒ 백두대간

영국 정부는 이 사건을 오랫동안 은폐해왔다. 그러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1998년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했다. 재조사는 12년에 걸쳐 이뤄졌고, 마침내 2010년 6월 <새빌 보고서>가 세상에 나왔다. 보고서가 나왔을 때 정권은 보수당 데이빗 캐머런으로 교체됐었다. 캐머런 총리는 전 정권의 연구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캐머런 총리는 <새빌 보고서>를 토대로 ‘피의 일요일’ 사건을 비무장 시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로 공식 인정하고 피해자에 사과했다. 

우리는 5.18말고도 제주4.3, 한국전쟁 등 비극을 숱하게 겪었다. 그럼에도 첨예한 이념갈등으로 인해 사건을 제대로 조명하지도, 희생자를 온전히 기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보수 정파 집권시기 동안 제주4.3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지속적으로 모욕당했다. 지금 새정부가 출범했지만 만에 하나 보수에 정권을 내주기라도 한다면, 또 다시 5.18이 폄훼될 위험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정파적 시각을 넘어서 ‘상식’과 ‘정의’의 문제로 지난 날의 아픔을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오늘에 받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부디 새 정부가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초석을 잘 다져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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