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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정권교체 이루어지는 역사적 현장에 함께 있고 싶었어요"미네소타 거주 강경희 씨 문재인 대통령 당선위해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로 활동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중략)
                                                                                                       -안도현-

강경희 씨는 선거 다음 날인 10일 서울 노원 병 지역구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 감사 인사를 했다. (왼쪽은 황창화 위원장)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 거주하는 강경희 씨(43세). 그는 대통령 선거 운동 자원봉사자로 정권교체에 대한 재외국민의 강한 열망과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멋진 한국인이다.

경희 씨는 4월 9일부터 5월 14일까지 서울에 거주하며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선거 당일에는 본적지가 있는 전남 벌교에 가서 투표한 후, 서울로 올라와 개표 감시 역할도 했다.

강경희 씨는 9일 본적지인 전남 벌교에서 투표했다. (게재된 모든 사진은 강경희 씨 제공이다)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실천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지난 4월 2일쯤, 미국 내 한인 여성들의 대표적 인터넷 공간인 미시 USA 핫이슈/사회/정치 방에 ‘한국에 자봉(자원봉사의 준말이다)하러 갑니다.’ 라는 글이 올라왔다. (기자 수첩-미시 USA 참조)

‘문 대표님을 위해 자봉하러 5주간 한국에 갑니다. 초1인 7살 아들이 있는데 남편이 잘 돌볼 테니 다녀오라네요. "태평양을 건너가 자봉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정치인이 일생에서 몇 번이나 있겠어. 가서 멋지게 활동해서 네가 원하는 그분, 꼭 대통령 만들어 드리고 와!"라고 말해주는 남편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자봉하러 가는 거 아니고 그만큼 정권교체의 염원이 크기 때문입니다.’

궁금했다. 정권 교체에 대한 간절함과 열망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일상생활을 기꺼이 접어두고 바다를 건너갈 결심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경희 씨는 선거 운동의 전 과정을 알리는 글을 그곳 게시판에 꾸준히 올렸고, 읽을수록 더 알고 싶어졌다. 더욱이 그가 활동했던 지역은 서울 노원 병이었다.

노원 병 지역구에서 받은 감사패. 경희 씨의 가족을 위해  황 위원장의 부인인 곽진선 씨가 밤을 새워 영어로 수를 놓았다.

작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왔던 황창화 위원장의 지역구. 황 위원장은 “나는 친노다. 나는 운동권이었다.”를 선언하며 경력 감추기에 바빴던 세태에 일침을 가하면서 대중에게 일약 바람직한 정치인으로 떠오른 새로운 인물이지만,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실력자 아닌가.

지난 17일 마침내 경희 씨와 통화했다.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을 통해, 문재인 TV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활기차고, 쾌활했다. 시차 때문에 낮에는 자고 밤에는 깨어있다는 그는 어쩌면 대통령 선거 운동의 긴 여운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노력한 결과로 자신이 지지하는 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의 느낌을 물었다.

“꿈결 같아요.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선거 운동을 하러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경희 씨는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벌교와 순천에서 10대를 보내고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아니다. 그는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꽃다운 청춘이었던 20대에 10년간 봉양한 의지 굳건한 효녀이다. 인자하고 훌륭한 시부모를 만난 것도 다 경희 씨가 효녀이기 때문이라고 언니들은 말한다.

“1남 5녀 중 막내인데, 그 당시 언니들은 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었어요. 또 시누 많은 집안 남편에게 시집온 새언니는 무슨 죄가 있어서 쓰러진 시어머니를 간호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했지요.”

어머니를 돌보느라 결혼이 늦어지고 있었는데, 32살 가을쯤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당시 사귀고 있던 지금의 남편에게 결혼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경희 씨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남편의 좋아하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강경희 씨의 가족 사진

경희 씨의 대선 참여를 적극적으로 후원한 남편 매튜 파이만(Mathew Faiman) 씨와는 2002년에 만나 3년의 연애 기간을 거치고 2005년에 결혼했다. 파이만 씨는 1년 기한의 영어 교사로 한국에 온 지 2주 만에 경희 씨를 만났고, 6년간 한국에 거주했다.

2008년에 미네소타에 온 경희 씨는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아들 잭의 한국 이름은 강은우이다. 잭은 중국어 차터 스쿨인 영화 아카데미(Yinghwa Academy)에 다니는데, 학교에서 한자 이름이 있는지 물어 자신의 성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경희 씨는 문재인 할아버지를 응원한다는 잭의 영상을 제작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잭은 경희 씨가 한국에 간다니 분리불안으로 힘들어했지만, 곧 적응했다.

“시부모님이 잭을 보고 싶어 하시면 언제나 보냈어요. 2~3일씩 또는 2주 정도 저와 떨어져 본 경험이 있어서 괜찮았어요.”

경희 씨는 세상의 모든 시부모 가운데 자신의 시부모님이 가장 훌륭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시부모님과 함께

“시아버지는 인자하고 자상하며 유머도 있으신 분이세요. 선거에서 이기면 몇 명 데리고 와서 미국의 대선판도 바꿔야 한다고 저를 응원해 주신 멋진 분이시죠. 시어머니도 마찬가지고요. 남편과 싸워도 시부모님이 내 편이라 든든합니다.”

경희 씨가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12년쯤이다. SNS상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특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원 병 지역은 경희 씨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 거주했던 곳이고 현재 셋째 언니가 살고 있다.

“형제 많은 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기분에 예민한 편이에요.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갈 때마다 만난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는데……. 아마도 이번 선거운동에 참여해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 기저에는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을 물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나라다운 나라. 초심 그대로, 처음 품었던 생각 그대로 국가를 운영하시길 바라요."

강경희 씨와 자원봉사자들이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애쓰는 모습

경희 씨는 내년 2월에 예정된 노원 병 보궐 선거에서 황창화 위원장을 돕기 위해 다시 선거 자원봉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이 올 6월에 치르는 공인재무분석사(Chartered Financial Analyst/CFA)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고. (그의 합격을 진심으로 바란다)

간절함과 희망을 품은 따뜻하고 의지 굳건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강경희가 이루어낸 평화로운 정권 교체. 수 많은 강경희들과 동시대를 사는 것이 참 좋다. 

서상희  tsang2000@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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