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 가요 톱텐, 그리고 황인찬 시인의 개종
'빠', 가요 톱텐, 그리고 황인찬 시인의 개종
  • 김기대
  • 승인 2017.05.26 0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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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법 파괴한 '빠' 현상을 관찰하다

민음사에서 시상하는 김수영 문학상 31회(2012년) 수상자는 20대의 젊은 시인 황인찬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문예지인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 시상하다가 지금은 민음사에서 주관하는 큰 상인 김수영 문학상의 수상자가 20대라니?  그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를 구입하고 그를 검색해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팬클럽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열혈 팬이었다. '샤이니'와 '김수영'이 내 속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20대 천재시인과 아이돌 그룹의 현란한 춤이 부조화 했다. 

세상은 아주 오래 전에 변했다. 고흐의 그림에 심취하고 모차르트를 좋아해야 시인다와 보이는 시절이 아니라 만화와 게임을 즐기는 소설가들이 명작을 쓰고 아이돌을 따라 다니는 시인에게서도 감동적 시가 나오는 세상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황인찬의 시는 '개종 5'다.  시 전문이 4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다.

여름 성경학교에

갔다가

봄에

돌아왔다

 

목사의 아들인 황시인은 개종이란 제목으로 모두 다섯 편의 시를 시집 '구관조 씻기기'에 싣고 있는데 그 중 다섯 번 째 개종은 어릴 때 '교회 좀 다녀 본 사람'이면 한번 쯤 했을 법한 경험이다.  산 속 적막한 곳에서 기도하고 또래들끼리 해방감을 맛보다 보면 마지막 밤 쯤에 뜨거운 기도를 하면서 정신줄을 놓는다. 이 때 놓친 정신줄은 이듬 해 봄쯤 돌아온다. 그가 경험한 개종의 일부였던 것 같다.

자신들이 누렸던 경험의 세계로부터 가장 늦게 빠져 나오는(아니면 영영 빠져 나오지 못하거나) 집단은 정치계일 것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단골 배우는 안성기와 김혜자였다. 좋아 해도 별 탈없을 안전 모드를 택하는 그들 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답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이른바 '문빠' 현상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 어떤 이들은 '빠' 가 부담스러운지 스스로 '문지기'를 자처하고 나서기도 한다. 최근 대통령 부인에 대한 호칭시비(오마이 뉴스), 한겨레 21의 문재인 대통령 표지 사진 등에서 지지자들과 한 판 붙었다. 이낙연 총리 청문회에서도 흠집을 내는 야당 의원들을 향해 쏟아지는 문자 폭탄도 같은 맥락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빠' 현상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호불호의 영역이다. 그들의 행동은 기존의 정치 문법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설익은 팬덤’ 정도로 보인다. 팟캐스트에 몰입하고, 호불호가 분명한 이들이 주요한 정치 생산자가 된 현상을 버거워 하는 시선들도 많다. 그러나 정치 이외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부조화가 주류가 된 것은 이미 오래 되었다. 정치의 영역에서만 낯설 뿐이다.  새로운 참여의 형태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1981년 2월 10일 KBS 1TV에서 첫방송되어 1998년 2월 11일 종영한 KBS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당시로서는 첨단이었을 방송 안내 화면이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다른 느낌이다.

 

낯선 것들이 공존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계는 예외 규정을 '제 맘대로' 정하고 법 위에 군림하는 '주권'개념을 소개한 정반대의 칼 슈미트(1888~1985, 독일의 정치신학자, 그는 정치적인 것을 적과 동지의 구별에 기반을 둔 인간의 집단적 상호 행위로 규정한다)를 좌우파 모두가 소환하고 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슈미트와 포스트 모더니즘은 정치건 문화건 생산자가 주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박사모가 그랬듯이 문재인의 열성 지지자들은 기계적 균형주의를 벗어나서 '내 편이 옳은 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박사모와의 비교는 몹시 불쾌할 수 있겠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전술에 있어서는 박사모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민주주의 꽃이 내 편과 저 편을 아우르는 기계적 균형주의라고 믿는다면 이미 낡은 세대다. 오래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 말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를 유혈 혁명으로 이해하는 세대도 지났다. 자기의 신념이 피흘리는 상처를 입을 때 민주주의는 성장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다른 현상의 출현을 못미더워 하는 사람들이 만들려는 세상은 팬덤들이 만드는 세상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서정주, '국화 옆에서') 누이가 겪은 소쩍새 울음과 천둥의 경험이 인정받는 세계가 아니라 지난 여름의 생각이 봄에 가서 바뀌는 것도 꽤 길다고 생각하는 '개종'이 다섯 번 아니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다. 구세대들이 기억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가요 톱텐'이 '뮤직 뱅크'로 포맷을 바꾼 지 오래 되었다.  가요 톱텐이 그리운 내 세대는 뮤직 뱅크가 나오면 뭔가 어색해 채널을 바꾸지만 그래도 현상은 뮤직뱅크다. 중요한 정치 생산자들이 된  '빠'들의 행태,  역시 어색하지만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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