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보내며 - 역사에 자식 묻은 어머니 아버지를 기리다
5월을 보내며 - 역사에 자식 묻은 어머니 아버지를 기리다
  • 서상희
  • 승인 2017.06.01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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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 - 

1980년대를 살아온 의식 있는 이들에게 오월 광주는 낙인이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던 생명들이 부당한 국가권력에 의해 스러진 기억의 공유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무조건 뛰어들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촛불 시민의 힘으로 이룩한 평화로운 정권교체. 그리고 잘 뽑은 문재인 대통령은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우리에게 무한 감동과 환희를 선사했다.

큰 뉴스에 묻혀 빛을 발하진 못했지만, 내게 더 큰 감동을 준 것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와 임종석 비서실장이 손을 꼭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장면이었다.

1980년 해방 광주를 기리는 기념식장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한열이의 어머니와 2017년 촛불로 이루어낸 정부의 비서실장이 손을 맞잡고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은 흡사 한국 현대사를 한 장면에 담은 것 같았다.

처절하고 슬픈 역사에 자식을 묻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 그리고 이름을 잊어버린 많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1980년대 중·후반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대학 간, 또는 노동자·농민·학생의 연합집회가 자주 열렸다. 수천수만 명이 모여 한국의 민주주의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집회 현장에서 결기와 투쟁의 다짐이 가장 고조될 때는, 바로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과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어머니 아버지들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모두 일어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려움 없이 싸워나가리, 어머니! 해 맑은 웃음의 그 날을 위해…….” 라며 비장한 목소리로 민중가요 ‘어머니’를 부르던 그 순간, 두려움은 한낱 사치에 불과했다.

세월은 흘렀고, 삶은 계속 됐고, 집회에 참석해 비분강개하며 ‘어머니’를 불렀던 개개인의 일상은 복잡해졌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은 그대로였다. 아니다. 자식 잃은 부모는 오히려 강해졌고, 그 슬픔은 자식을 앞세운 부모가 늘어날 때 마다 자연스레 증가했을 것이다.

배은심 어머니는 한 인터뷰에서 “마음 아픈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권력자들 당신들만, 화해를 하면 화해가 되는 거냐?  마음 아픈 사람들한테 물어 봤냐? 자식을 죽여 놓고도 울지도 못 한 5월 가족들의 맘을 알기나 하냐?”며 분노했었다.

유가협 부모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1998년 봄, 이른바 화해 차원에서 전두환 노태우의 석방을 결정했을 당시, 안양교도소로 달려갔다. 박정기 아버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전경의 방패에 머리를 받아 피가 솟구치기도 했다.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 보낸 짧은 편지에서 읽혀지는 느낌은 어떠한 수사로도 표현할 수 없다. 국가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이 사사롭고 미숙한 권력의 통치 범위에서 방치된 채 죽어간 어린 학생들의 유가족에게 보내는 진정어린 위로라는 것 이외에는.

광주의 낙인은 세월과 함께 흐려졌지만, 노무현 대통령마저 5월에 유명을 달리해 5월은 더욱 잔인해졌다.

5월을 보내며, 해방 광주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이 땅의 아픔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어머니 아버지들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만한 세상이 어서 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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