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심방, 문제없나?
목회자의 심방, 문제없나?
  • 이계윤
  • 승인 2008.04.22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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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심방 헌금과 그 용처는?

10년 전 일이다. 사무실 근처에서 사업을 하시는 장로님께서 회사에 심방을 요청했다. 심방을 주로 하는 목회자가 아니었기에 나는 이러한 요청에 기쁘게 응했다. 사무실에서 이러저러한 대화를 마치고 기도를 하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자 장로님은 이미 준비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봉투를 하나 건네주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책값이나 하라고 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감사하게 받았지만,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그 헌금을 아내에게 주어 장로님 따님을 위한 선물을 사 주라고 했다.

후에 알고 보니 이러한 일이 관행이 되어 있었다. 번뜩 기억나는 일이 있었다. 약 20여 년 전 이야기다. 어떤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 3~4년간 잦은 심방을 하는 일이 문제가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심방이 왜 문제가 되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이유는 심방을 통해서 수금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이 심방을 오시면 음식 외에 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교인들로 하여금 심방을 짐스럽게 만들었다. 

최근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사례비(나는 임금이라 칭한다)에 대해 말을 나누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목회자들의 임금이 적은 이유는 심방을 통해 교인들이 주는 약간의 돈(?) 즉 다른 수입을 전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 심방을 하는 중에 오고가는 약간의 사례비는 정례화 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방은 그 자체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입 증대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아무리 자발적인 헌금이라고 해도 말이다.

필자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가정방문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 제도는 중 3이 되면서 갑자기 사라졌다. 지금 돌아보면 선생님들의 가정방문 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중 2때 가정방문을 오신 선생님은 우리 집의 형편을 잘 파악하셨다. 그리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사에서 나를 배려해주셨다. 아마도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방문 제도는 사라졌다. 그 이유는 가정방문 제도를 통해서 오고가는 촌지(寸志)가 횡행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일부 교사는 촌지를 목적으로 가정방문을 정례화 했고, 학부모는 이를 기회로 삼아 자기 자녀만 특별하게 돌보아달라는 차별의 계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회자의 교인 심방이 30여 년 전에 사라진 교사의 가정방문 제도와 유사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정례화 된 돈(?) 주고받기는 심방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되지 않을까? 그것도 심각하게.

필자가 존경하는 한 원로목사님은 참으로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분은 심방 중에 교인들이 제공한 돈(?)을 철저하게 헌금으로 만드셨다. 교인들이 사례로 준 돈은 잘 정리해서 회계를 관리하는 분에게 보고했다. 교인은 '책값이나 차비로 쓰라'고 주었지만, 그 목사님은 회계에 잡히는 정상적인 헌금으로 보고한 것이다.

목사님들과 함께 외국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귀국 2~3일을 남겨놓고 진풍경이 벌어진다. 출국하기 전 교인들이 제공한 여행 경비에 맞는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받은 액수에 따라 차별화된 선물을 사야하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목회자를 본다. 이때부터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마치 물건 사재기에 혈안이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앞에서 언급한 그 목사님은 이러한 일도 정결하게 정리하셨다. 교회에서 제공한 여행 경비,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제공한 비용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시고, 증빙자료를 첨부하셨다. 그리고 귀국할 때 교인들을 위한 선물은 일체 없었다. 교회에 부임해 첫 번째 이루어진 성지순례는 교인들로 하여금 귀국 선물을 기대하게 했지만,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러한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의 심방 문화는 (전부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목회자들의 수입을 위한 것으로 변질됐다고 볼 수 있다. 돈을 어떻게 주던 간에 청지기로서 깨끗하게 관리하는 목회자의 모습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심방은 심방 본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목회자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계윤 목사 / 동빙고교회 협동목사·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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