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비어 죽음에 의문을 가지면 '종북'?
웜비어 죽음에 의문을 가지면 '종북'?
  • 김기대
  • 승인 2017.06.2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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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감안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

한 젊은 관광객이 관광 중에 벌인 돌발행동 때문에 15년 노동 교화형을 받았고 17개월 만에  코마 상태로 돌아왔다가 사망했다면 북한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일부 진보적인 사람들이 미국이 제 3세계에 행한 짓과 혹은 미국 내에서 경찰 과잉 진압으로 인한 사망사고를 빗대어 북한을 나름 편들어주려고 하지만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자칫 미국의 이런 행동에도 면죄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웜비어의 죽음에 미심쩍은 마음을 갖는 것을 비난할 수도 없다. 웜비어의 사망을 둘러 싼 여러 가지 미스터리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는 게 그 이유다. 그런 종류의 의혹제기를 북한의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 마치 예수 초상화 밟기처럼 북한 체제를 일단 비판부터 하고 논의를 시작하자는 입장인데 이도 건강한 인식은 아니다.

북한 쪽에서 나오는 '소식통'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소식통이 없는 <뉴스 M>의 입장에서는 단편적인 궁금증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다음과 같다.

 

1. 정말 웜비어가 한 짓은 뭘까?

북한은 '나쁜 나라' 일수는 있지만 멍청한 나라는 아니다. 호텔의  선전물을 떼어 내었다고 해서 15년형을 선고했을 때 북한이 떠 안아야 할 비난을 모르지 않을 터, 왜 무리수를 두었냐는 거다. 예를 들어 캐나다 큰빛 교회 임현수 목사의 경우 북한에 대한 오랜 지원활동에 자신감을 가진 나머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위험 수위의 발언을 한 것으로 현재도 복역중이다. 일각에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북한을 도와주었는데 몇 마디 말 때문에 그간의 행적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그게 나라냐?"라고 북한 체제를 비판하지만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그 나라가 그런 줄 몰랐냐?"

그걸 감안해도 돌발행동으로 15년형이 무리수(실제로 더 심한 일에도 관광객에게 이런 형을 내린 적이 없다는게 중론이다)라는 건 북한도 알 터인데 정말 웜비어가 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오히려 대미 협상용으로 뭔가를 숨겨두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2. 고문이 있었을까?

애초부터 웜비어는 대미 협상용이었으므로 고문의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의사들도 심각한 뇌손상을 이야기하지 고문의 가능성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가족도 부검을 원치 않았다. 북한의 외교 협상 스타일을 벼랑끝 전술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벼랑 끝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어서 그렇지 미국인을 고문함으로써 스스로 벼랑 끝으로 갈만큼 어리석지 않다.

 

3. 왜 풀어 주었고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사망했을까?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랜 감금생활을 당해왔던 오대수(최민식분)가 이우진(유지태분)에게 왜 자신을 감금했냐고 물어보자 이우진은 왜 풀어 주었냐고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은 왜 풀어 주었을까? 더 이상의 연명치료가 불가능해서 풀어주었을 것이라는게 현재로서는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웜비어의 죽음이 가져올 파장을 모르지 않을 북한 입장에서는 연명치료를 지속함으로써 웜비어의 상태를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웜비어 사태를 극대화함으로써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스캔들에 쏠린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키는데 웜비어 사태만한 카드가 없다. 개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추악한 일이지만 미국이나 북한 이 부분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북미간의 관계는 프로파간다 게임(propaganda game, 북한을 다룬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처럼 상대방을 '악의 축'으로 모는 선전전을 하는 관계다.

미국에 돌아온 웜비어의 상태를 점검한 미국 의료진은 회생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웜비어가 미국에 돌아와서 비행기에서 내릴 때 장면도 의아한 부분이다. 미국처럼 안전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비행기안으로 들 것을 들여보내지 않고 부축하듯이 웜비어를 안고 내려왔다. 들 것에 누워있는 것 보다는 축 처진 모습이 대중들을 자극하기에 더 좋은 장면이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미국에게 웜비어는 선전물이었지 죽음이 임박한 가여운 생명이 아니었던 셈이다.

  

4. 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겼을까


웜비어 가족의 대변인 미키 버그만 (Mickey Bergman)은  웜비어가 유대인이라고 밝혔다. 장례식도 유대교 랍비인 제이크 루빈져가 집례했다. 억류 당시에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웜비어는 프렌드십 연합감리교회(Friendship UMC)에서 정치 선전물을 가져 오면 돈을 준다고 했다는 언급을 했었다. 또한 억류 당시 연합감리교단(UMC)은 조속한 송환을 요구하는 교단 차원의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미키 버그만은 이스라엘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웜비어가 연합 감리 교회의 지시로 포스터를 훔친 것으로 발표한 북한을 당혹스럽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천안함, 세월호의 음모론 중에 항상 등장하는 이스라엘 잠수함, 마찬가지로 유태인 웜비어가 음모론자들에게는 좋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5.  대니 그래튼은 누구?

지난 2013년 BBC방송의 존 스위니 기자는 런던 정경대(LSE) 박사과정 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다른 학생들을 데리고 북한에 다녀온 뒤 30분짜리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존 스위니의 이같은 행동은 런던 정경대와도 갈등을 빚어  언론의 취재 윤리가 도마에 올랐었다.

작년 평양에서 웜비어와 같은 방을 썼던 룸메이트 대니 그래튼이 2013년 존 스위니 기자의 방문단 일원이었다는 이야기가 대북활동가들 사이에서 일부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로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당시 런던 정경대학의 Grimshaw라는 학생 단체 이름으로 북을 방문한 그들은 평양 방문 이후 안전 문제(입국 취지를 속였기 때문)로 이후 Mr. X 등으로 호명되고 있기에 정확한 학생 명단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아마도 대니가 현재 영국인이기 때문에 이런 가설이 나오지 않았나 추정할 수 있다.

그동안 일체의 언론 접촉을 피해 오던 대니 그래튼은  “혼자 여행을 온 남성은 나와 웜비어 뿐이라 자연스레 우리 둘이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며 “함께 지내는 동안 웜비어는 선전물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차례도 꺼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래튼에 따르면 “호텔 측이 모닝콜을 해주지 않아 늦잠을 잤고 가장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자유여행이 불가능한 북한에서 관광 안내원이 이들을 두고 공항에 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튼은 또한 그가 공안원에게 끌려 갈 때 “웜비어가 저항하지도 않았고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반쯤 웃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튼이 미국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았는지, 왜 그 동안 침묵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글 앞에서도 말했듯이 웜비어의 죽음을 두고 북한의 책임을 경감시키려는 이유로 이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말이라면 그렇게 못믿는 사람들이 ‘선전물 탈취로 인한 15년 형’이라는 북한의 말은 모두 신뢰한다. 북한 스스로가 자신들을 궁지에 빠뜨릴 수 있는 말은 믿고 북한의  입에서 나오는 ‘선한 말’은 믿지 않겠다는 이율배반 아닌가?

북한 체제라면 일단 편들고 보는 일부 통일운동가들과 달리 이른바 자유주의자들은 나름 객관적인 대북인식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선전물 하나 훔쳤다고 15년형을 선고하고 그로 인해 죽게 만드는 사악한 북한 정권’이라는 인식에 있어서는 대북 강경론자들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걸 감안해도 마지막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사인은 무엇이고 누가 진실을 알고 있을까? 다시는 웜비어와 같은 희생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좌우 진보 보수 남북한 미국을 막론하고 같은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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