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 김기대
  • 승인 2017.07.01 0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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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건 틀림없는데 찜찜한 이 기분은 뭐지?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장진호 기념비 연설이 연일 화제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보다 이 장면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일단 문재인 정부의 작전은 대성공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패하면서도 끝까지 한국인을 지켜주었다는 미 해병대의 전설을 치켜 세우는 동시에 한국내 보수세력들의 입을 틀어 막을 수 있는 신의 한 수였다. 

특히 이 기념비는 보수 반동 세력이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전 보훈처장 박승훈의 기획에 의해 탄생된 것인데 그 동안 진보 세력의 '상품'(예를 들어 1인 시위, 피켓 시위 등)을 무단 도용해 왔던 구 여권 보수 세력은 이번에 그들의 상품을 이용해 멋진 이벤트를 펼친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두고 배 아파할 게 틀림없다.

분명히 잘 하는건 틀림없는데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일단 김대중 노무현의 맥을 잇는 대북화해 정책 기조의 정권을 향한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더없이 좋은 카드였으나 결국 넘어야 할 산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미국의 대북 전략만을 고려하다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말  중요한게 무엇인지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잘 해내리라 믿는다.

장진호 전투는 흥남부두 철수사건과 연결된다. 흥남부두에서 미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으로 피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국제시장'이고 가요는 '굳세어라 금순아다'

국제시장 개봉 당시 빗발쳤던 진보진영의 비난은 장진호 기념비 연설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버린다. 쟝르는 다르지만 굳이 평하자면 그래도 노래가 낫다.  국제시장과 장진호 연설 속의 흥남부두에는 미군이 먼저라면 '굳세어라 금순아'에는 우리의 아픔이 먼저여서 그렇다.

노래는 북에 두고 왔음직한 금순이를 추억하는 내용인데 3절의 가사가 흥미롭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3절) 철의 장막 모진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의 너와 난데 변함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남북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1953년의 곡이다. 이제 막 휴전이 되었는데 가수는 통일을 노래하고 있다. 비록 서로가 분단되어 지금은 헤어져 살 수 밖에 없지만 얼싸안고 춤출 남북통일 그날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가사의 '철의 장막'은 소련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이 가사에는 남과 북의 체제를 모두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작사 강사랑). 강사랑이 반골 성향이 강한 작가 이병주 등과 교류했던 것을 보면 그런 뉘앙스를 담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비슷한 시기에  최갑석이 부른 '삼팔선의 봄',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 등의 가사에도 반공의식은 담겨 있지 않다. 전쟁이 막 끝난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사실 피난민들은 이념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당장 살 길을 찾아 아무 데로나 떠났을 뿐이어었다. 그들에게는 평양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내리던 미군의 폭격도 싫었고 인해전술로 내려오는 중공군(되놈)의 행태도 싫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쪽에 정착한 사람들은 이곳에도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가요계 한 쪽에서는 분단의 상처를 노래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이곳의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는게 그 증거다. 은방울 자매가 부른 ‘샌프란시스코’, 백설희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금사향의 ‘홍콩 아가씨’ 같은 노래를 통해 분단의 고통을 외국에서 위무받고 싶어 했다. 외국은 어떤 형태라도 좋았다. 미국 그 자체인 샌프란시스코이든지, 미국내 소수민족 거주지인 차이나타운도 좋았다. 아니면 중국 땅이지만 당시로는 영국령이었던 홍콩이라도 좋았다. 그곳에서 '나는야 꿈을 꾸며 꽃파는 아가씨'의 신분만 유지하면 된다는 마음이다.

전쟁이라는 시공간에서 이중의 피해를 겪었을 여성들이 한국의 분단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했던 마음을 어찌 탓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한반도에서 얼싸안고 춤을 추게 되는 그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막연히 샌프란시스코(미국)를 바라보는 결과가 나와서는 절대 안된다. 미국의 결정만 따르면 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휴전 공간에서 미국을 꿈꾸던 젊은 여성 듀엣 은방울 자매의 노래가 지금 우리의 심정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미 관계는 '태평양 로맨스'의 달달한 관계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생존을 다루어야 할 관계다.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물에 찰랑대며 춤 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꾸는 나는야 꿈을꾸는 아메리칸 아가씨

 

2절

네온의 불빛도 물결따라 넘실대는 꽃 그림자

비일비일 날아드는 비가새를 보면서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내일은 뉴욕으로 내일은 뉴욕으로 떠나가실 님이여

 

3절

네트로 포리톤 오페라에 속이타는 이 그림자

달콤한 커피수에 쌍고동이 울린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라이트 여객기로 라이트 여객기로 유속같이 날은다. (은방울 자매 샌프란시스코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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