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딸' 논란에도 윤이상을 찾은 김정숙의 모험
'통영의 딸' 논란에도 윤이상을 찾은 김정숙의 모험
  • 김기대
  • 승인 2017.07.07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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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식수에 담긴 정치적 함의

"자유 순수 화합을 추구하고 한발 앞선 사고 속에서 살아간 사람. 민족 분단의 멍에를 짊어지고 평생을 몸바쳐 실천해온 사람, 그렇게 사랑하던 고향을 끝내 가보지 못하고 떠난 사람. 그는 바위와 같이 늠름하였으나 섬세한 감수성은 바늘과 같이 예민하였으며 정의감과 정열은 화산과 같았습니다."

일본의 야노 토오루가 "동양에서는 단 한 사람 존재하는 천재 작곡가"라고 아사히 신문에 기고했던 천재 작곡가 고 윤이상 선생의 아내 이수자 여사가 '내 남편 윤이상'이라는 회고록에 남긴 글이다.

윤이상, 이런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객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음악 교사 생활, 대학 강사 생활을 하던 윤이상은 1956년 유학을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1965년 처음 연주한 불교를 주제로 한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1964)와 1966년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처음 연주한 관현악곡 《예악》은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에서의 대표적인 간첩조작 사건인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된 그는 1967년 아내 이수자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어 수감되었다. 세계 음악가들의 탄원으로 1969년 석방되어 서독으로 완전 귀화한 후 한국에서는 그의 입국은 물론 연주 자체가 금지되었었다.

고향 통영에 오고 싶어했던 윤이상은 1994년 모든 정치 활동 중단을 선언하면서까지 한국 입국을 원했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 조차도 보수 여론에 밀려 입국을 불허했다. 결국 1994년 서울 부산 등지에서 윤이상 없는 윤이상 음악제가 열렸다.

사진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 했다가 좌절된 충격 때문이었을까? 이듬해인 1995년 윤이상 선생은 끝내 고향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수자 여사조차도 2007년 노무현 정부에 와서야 입국이 허락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간) 독일 방문 일정 중에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김정숙 여사는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공수해온 동백나무를 묘지에 심었다. 그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며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을 가져오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정숙 여사의 이러한 행보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함의를 갖는 행동이다. 일단 동베를린 사건으로 원조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윤이상 이수자 부부에 대한 해금의 의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보수 세력 달래기(국가 유공자에 대한 극진한 예우, 월남전 참전 군인에 대한 감사, 워싱턴 방문시 장진호 기념비 앞 연설로 미국내 보수세력 달래기)와는 전혀 다른 행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좌우를 포용하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기는 하지만 보수 언론은 끊임없이 문재인 정부를 좌측 지표에 놓으려고 하고, 반대로 좌 성향의 지지자들은 문대통령의 보수 달래기 행보를 마뜩잖아 한 것이 사실이다. .

하지만 김정숙 여사의 이날 윤이상 묘소 참배는 좌파 성향의 지지자들이 가진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동베를린 사건은 조작사건으로 판명되었지만 보수 여론은 아직 종북 논쟁의 주요 소재로 악용하고 있다. 통영에 있는 이수자 여사의 자택 앞에서는 보수 단체의 반공 시위가 아직도 심심찮게 열리고 있을 정도다.

특히 시비가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통영의 딸' 논쟁 때문에 김정숙 여사의 행보는 보수 언론의 좋은 먹이감이 충분히 될만한데 높은 지지율 때문인지 보수 언론은 김정숙 여사의 윤이상 묘소 참배에 대놓고 비판은 못하고 있다.

'통영의 딸' 이란 2011년부터 일부 보수 단체들이 통영 출신의 신숙자씨와 두 딸 오혜원·규원씨 3모녀가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살고 있는데 이들을 북으로 보낸 사람이 윤이상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시작된 논쟁이다. 독일 한인사회 민주화 운동 단체였던 '민주사회 건설협의회' 4대 부회장(윤이상 선생은 2대 회장)이었던 오길남 박사는 1985년 3모녀와 함께 입북했다가 이듬해 혼자만 탈출했다. 오씨는 이후 여러 강연을 통해 윤이상이 자신과 가족들에게 입북하도록 직접 권유했다고 주장하면서 보수 언론과 보수 시민단체들의 '환영'을 받았다. 

지난 2011년 11월 3일, 지만원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청소 500만 야전군' 50여명이 통영의 이수자 여사 자택 앞에 모여 “통영의 딸 3모녀를 북한 지옥에 내다 판 대가로 호강한 윤이상. 그 가족까지 통영-평양-독일 오가며 호강한다는 게 웬말이냐? 인신매매 간첩을 우상화하는 곳이 통영이더냐. 윤이상을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날은 윤이상 선생의 기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수자 여사는 오길남씨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분단이전 동독에 있던) 북한 대사관에 오씨 가족의 송환을 요청했었다고 당시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는 것은 논쟁을 촉발시킬 우려가 있기에 김정숙 여사를 대신 보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담은 행보일 터, 뒤틀어진 과거를 바로 잡고 불필요한 종북 논쟁에 정면 대결한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최근 문대통령의 보수적 행보에 찬사를 보내던 보수 언론,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 게다가 성악 전공자(김정숙 여사)로서 유명한 음악가의 묘소를 찾았다는 우회적 제스쳐, 어느 하나 보수 언론이 선뜻 시비를 걸 수 없는 부분이다. 논쟁을 촉발시켜야 하는데 촉발시키지 못하는 보수 언론의 몸부림을 행간에서 발견하는 것도 요즘 신문을 읽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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