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의 사약과 장희빈의 사약
김기춘의 사약과 장희빈의 사약
  • 김기대
  • 승인 2017.07.0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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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 발언에 나타난 김기춘의 꼼수

“독배를 내리면 깨끗이 마시고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 지난 달 28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진행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재판에서 김기춘은 “과거 왕조시대 같으면 망한 정권, 왕조에서 도승지를 했으면 사약을 받지 않겠느냐.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만약 특검에서 ‘당신 재판할 것도 없이 사약 받아라’하며 독배를 내리면 제가 깨끗이 마시고 이걸 끝내고 싶다”고 토로했다고 모든 매체들이 전했다.

사약, 사극에서 많이 보아오던 사약은 마시자마자 죽기 때문에 흔히 사약(死藥)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사약(賜藥)이다. 즉 왕이 특별히 선처한 죽음의 방법이다.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었거나 다소 억울한 죽음이기에 능지처참, 참수형과 같은 극형으로부터 면제시켜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약을 받는 사람은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한 뒤에 마지막으로 '성은이 망극하다'며 군신의 예를 다한다. 또한 사약을 받은 사람은 가족의 형벌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참수형이나 교수형을 당할  경우 직계가족 혹은 3족이 노비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약의 경우 자신만 징벌을 받는 것이기에 연좌제가 살아 있던 조선 시대에서는 감사해야 할 사형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조선 경종 때 노론 조태채는 사약을 받게 되는데 아들 조회헌이 이곳에 오고 있으니 부자상봉을 한 다음에 사약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집행인이 이를 거절하자 조태채를 존경해오던 하급관리 홍동석이 사약을 발로 차 엎어 버렸다. 당시 조태채가 귀양가 있던 진도에서 한양까지 가서 다시 사약을 받아 오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그 사이에 부자 상봉을 할 수 있었고 조태채는 한 달 뒤에 다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특이하게 사약을 발로 찬 홍동석은 어떠한 형벌도 받지 않았다. 사약을 집행하는 사람들 역시 그 형벌을 받는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는 반증이다.

그런 점에서 김기춘은 사약 발언으로 여러가지 꼼수를 노린 셈이다. 첫째로 자신의 현 상황은 억울하기에 사약을 받겠다는 것이다. 그는 재판에서도 블랙리스트에 관련해서는 무죄를 주장했다.

두 번째는 소위 '성은이 망극하다'는 의미로 현 정권에 직접 자신의 사면을 부탁한 것이다. 그는 나이를 거론했고 심장에 스텐트가 8개나 있다며 엄살을 피웠다. 스텐트 시술(수술이라는 표현을 쓰지도 않는다)을 받아 본 사람들은 안다. 그게 얼마나 일반화되어 있는 간단한 시술인지를 말이다. 즉 김기춘은 진술에서 '당신 재판할 것도 없이'라고 말하며 사법적 판단을 하지 말고 임금(문재인 대통령)께서 '노약자'를 직접 선처해달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의미심장한 꼼수는 세 번 째인데 조선 시대 사약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 후일에 명예가 회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현재 복역중이지만 반드시 자신의 행위가 명예를 회복할 날이 오리라는 일종의 도전을 한 것이다.

그는 노약자 코스프레를 했지만 사약 발언에는 이처럼 노회한 꼼수가 숨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초법적 행위가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지만 김기춘의 경우를 보면 '공소시효'라는 법 때문에 그의 과거 악행이 묻혀버려 법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선비(대학생들, 신진 학자들)를 간첩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정신병자를 만든 행위는 극형을 내려도 마땅한데 현대 법체계로는 그 일을 할 수 없는게 원망스럽다는 말이다.   

SBS 드라마 장옥정에서 사역을 받는 장면의 김태희. SBS 화면 갈무리

​숙종의 빈으로 권력을 휘두르다 인현왕후를 내쫓고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던 장옥정이 결국 사약을 받게 되는 장면은 사극에서 여러 차례 재현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장희빈이 희대의 악녀로 그려지고 인현왕후는 지고지순한 왕비상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사가들의 주장이다. 장희빈은 붕당정치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실록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수문록>(조선 후기의 문신 이문정이 기록한 경종시대의 역사)에 따르면 장희빈은 사약을 몇 회나 먹고도 쉽게 죽지 않았다고 한다. 죽음이 임박해서야 세자 윤(훗날의 경종)을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 세자 윤과 마주한 장희빈은 마지막 죽을 힘을 다해 윤의 낭심을 심하게 잡아 성불구자를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실제로 경종은 후세를 보지 못했고 동생의 신분으로 왕위를 이어 받은 사람이 영조다. 장희빈의 억울함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장희빈은 자신의 핏줄이 왕위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김기춘 그는 나이를 감안한 사면이 절대 이루어져서는 안될 존재다. 다만 그가 일했던 모든 정권의 낭심을 잡아 흔들 정도의 모든 악행을 털어 놓음으로써 다시는 수구 세력이 잉태하지 못하도록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그에게 최소한의 선처는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김기대 편집장 / <NEW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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