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살인사건의 피의자 종교 앞세운 보도 유감
딸 살인사건의 피의자 종교 앞세운 보도 유감
  • 김동문
  • 승인 2017.07.20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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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기독교인 아버지... 딸 살해” 기사 다시읽기
(누리집 갈무리)

“이스라엘 기독교인 아버지, 무슬림 남성 사귀는 딸 살해” 제하의 기사가 지난 19일자(한국 기준)로 떴다. 그런데 미국 CNN 보도 내용을 옮긴 이 기사를 보면서 불편했다. 관련 사건을 종교성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공정하지 못했다. 또한 CNN 기사에 대한 추가적인 정황 확인이나 보완없이 단순 인용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사건을 규정한 아래의 여러 제목을 보라. 어떤 느낌이 다가오는가? “이스라엘 라믈리 시에서 기독교인 아버지가 딸을 죽였다.”. “이스라엘 라믈리 시에서 아랍계 이스라엘 아버지가 딸을 죽였다.”. “이스라엘 라믈리 시에서 아랍계 이스라엘 기독교인 아버지가 딸을 죽였다.”

CNN 보도 (2017.07.19. 누리집 갈무리)

같은 사건을 묘사한 다양한 표현들이다. 이런 기사 제목들은 이미 벌어진 사건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지으려는 전제들이 담겨있다. 대부분의 외신은 물론 이스라엘 지역 언론도 ‘이스라엘 기독교인’이라는 말로 피의자를 소개한다. 방점은 ‘이스라엘인’ 인가 아니면 ‘기독교인’인가? 미국 CNN 아랍어 방송은 처음에는 ‘이스라엘인이 그의 딸을 죽였다’고 적었다가 ‘이스라엘 기독교인이 그의 딸을 죽였다’고 표현했다.

이번 사건은 외형은 단순하다. 이스라엘 중부 라믈리(Ramle) 시에서 지난 달 13일 아버지(58)가 딸(17)을 죽였다. 그리고 살인 혐의로 지난 16일 구속 기소되었다. 조금 더 사건을 들여다보자. 아랍계 이스라엘인으로 기독교인인 싸미 까르라(Sami Qarra, 58), 그의 딸 헨리이트 까르라(Henriette Qarra, 17) 그리고 익명의 한 무슬림 청년이 이 사건에 등장한다.

기독교인 아버지가 자신의 외동딸이 수감 중인 한 무슬림 남자와 교제하고, 그가 출소하면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그 무슬림 남자 친구하고 결혼하겠다는 말을 듣고, 그 딸을 살해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딸을 만류하고 설득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무슬림이 되고 무슬림과 결혼하겠다는 딸의 말과 행동이 자신의 (기독교인) 가문의 명예를 해쳤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은 이런 면에서 ‘명예범죄’이다. 명예범죄는 일반적으로 가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가족이나 친척 남자들에 의해 여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범죄행위를 지칭한다.

나는 이 사건을 마주하면서 몇 가지 배경을 짚어보았다.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 아랍계 이스라엘 기독교인,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 기독교인에서 무슬림으로의 개종, 종교의 자유 등이다.

퓨 리서치 센터가 발표한 이스라엘 인구 구성 현황(2015.05. 퓨 리서치 센터 누리집 갈무리)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대부분 이스라엘 국적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을 지칭한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시점에 이스라엘 영토 안에 거주하던 이들이다. 169만 명으로 이스라엘 전체 인구 815만 명의 20.7%에 이른다. 인종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이지만, 이스라엘 국적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의 정체성도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이스라엘을 유대교 국가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이스라엘 기독교인'이라는 단어가 낯설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도 기독교인이 존재한다. 교회도 있다. 이슬람 사원도 존재하고 무슬림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아랍계 이스라엘 기독교인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약 16만 명 정도가 아랍계 기독교인이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2% 정도이고, 전체 아랍계 이스라엘 인구의 9%에 이른다. 한 편 유대계 이스라엘 시민 중 1만 명 정도는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이다.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 가운데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관계는 특별하다.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친밀도가 아랍계 무슬림 또는 아랍계 기독교인에 대한 것보다 일반적으로 더 높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있어서는 아랍계 무슬림과 기독교인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특징이 있다.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 증가를 언급한 이스라엘 하아레츠 기사(하아레프 누리집 갈무리)

최근의 이스라엘의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 현황은 파악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최근 자료가 2008년 현황 자료이다. 종교가 다른 결혼이 92,612 쌍에 이르렀다. 유대교 신자와 다른 종교인의 결혼은 2%였고, 기독교인, 무슬림, 드루즈 종교인 사이의 결혼은 1%에 불과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대교인과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은 물론 기독교인과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도 늘고 있다.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에 관한 퓨 리서치 기사 (2014년, 퓨 리서치 센터 누리집 갈무리)

그런데 흥미로운 관점이 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연구(2016년 5월)에 따르면, 아랍계 이스라엘 기독교인의 86%가 자신들의 친밀한 친구들이 거의 또는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도 거의 대개가 기독교인과 결혼한다. 자녀가 무슬림 또는 유대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유대인과의 결혼에 반대는 88%, 무슬림과의 결혼에 대한 반대는 80%에 이른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아랍계 이스라엘 기독교인 부모의 20% 정도가 무슬림과의 결혼에 대해서도 열려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드루즈 등 4대 종교의 결혼법정에서 결혼이 성립되고, 같은 종교인끼리의 결혼만 가능하다.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은 위법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은 신랑 또는 신부가 상대편의 종교로 개종한 이후에야 결혼이 합법적으로 인정된다. 또한 결혼 연령은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피해자는 이제 법적으로 결혼할 나이가 되고 있던 것이다.

라믈리 시 주변 지도(구글지도 갈무리)

이번 사건 발생 장소인 라믈리(Ramle 또는 Ramla로도 부른다)는 인구 7만 2천 명 정도의 중소 도시이다. 도시 주민들의 80%는 유대인이고 20%가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들이다.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이 대부분인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비율은 전체 주민의 16%, 4%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다른 종교인 간의 교류는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살인 사건으로까지 번진 일은 상식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피해자도 이곳의 유대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까? 피의자의 행동은 어떤 요인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 대법관을 배출한 집안의 한 남자가 1급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표현하여야 할까? 이번 살인 사건의 바탕에 기독교라는 종교성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의 말과 행동, 의식과 가치관은 기독교, 기독교인의 규범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이스라엘시민,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남자 이스라엘 시민의 가치에 합당한 것이었을까?

이스라엘의 다른 종교인 사이의 결혼 상항(하아레츠 누리집 갈무리)

수감 중인 다른 종교를 가진 남자와 사귀는 딸에 대한 피의자 싸미의 반응은 적절한 것이었을까? 게다가 종교까지 바꿔가며 결혼하겠다는 딸에 대한 피의자 싸미의 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을까? 아니면 협박죄, 재물손괴죄, 마약거래 및 소지죄 등 많은 범죄 경력을 가진 한 이스라엘 시민이 저지른 1급살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피의자의 혈연, 지연, 학연, 종교, 인종 등 그 어느 것 하나가 이번 살인 사건을 저지른 요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특별히 종교를 앞세운 해석에는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요소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 제목은 그냥 ‘’(한)이스라엘인이 그의 딸을 죽였다.“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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