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둔한 목사, 영악한 교인
우둔한 목사, 영악한 교인
  • 이승규
  • 승인 2008.05.0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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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목사 말 안 듣는 교인…교회 안과 밖에서 따로 노는 믿음

▲ 교인들이 목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 목사들의 위기다. 왜 말을 듣지 않을까. 교인들이 교회에서의 삶과 사회에서의 삶을 전혀 별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목사들이 이번 총선에서 기독당 지지를 강조했지만 허사였다. 사진은 올해 1월 열린 사랑실천당 발기인대회.
목사들의 위기다. 교인들이 당최 목사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의 말이라면 모두 설설 기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난 4월 총선은 교인들이 목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였다. 적어도 비례대표 10석은 얻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기독사랑실천당(기독당·대표 최수환 장로)은 정당 투표에서 443,775표를 얻어 2.5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당 투표에서 비례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 요건인 3%에 미치지 못했다. 

3월 27일 열린 기독당 기자회견에서 김준곤 목사가 한 말에 의하면, 전광훈 목사와 장경동 목사는 목사 12,000명에게 기독당 입당원서를 받았다. 특히 전광훈 목사는 2007년 1월 24일 열린 사랑실천당 발기인대회에서 목사 1명 당 100명의 서명을 받기로 했다며, 2주 안에 100만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목사 말 안 듣는 교인

'빤스 내리라고 말해서 그대로 하면 내 교인이다'는 전광훈 목사가 주장하는 생명 공동체는 300만 명이다. 적어도 생명 공동체라고 부를 정도면 전 목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의 장담대로 됐다면 기독당은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 이어 교섭 단체를 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숨에 원내 3당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총선 전 급조된 친박연대가 약 13%(약 225만 표)의 득표율로 8명의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했으니, 전 목사가 자랑하는 생명 공동체 300만 명 모두 그의 말을 들어 기독당을 찍었다면 약 17%의 득표율로 당초 목표였던 비례대표 10석은 무난했을 것이다.

교인들이 목사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4년과 2006년에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도 그렇다. 보수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엄신형 목사)도 지난 2006년 1월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1,000만 명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5개월 동안 서명을 받았지만 150만 명에 그쳤다. 당초 목표였던 1,000만 명에 10분의 1이 조금 넘는 인원이다. 이마저도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명성교회 등 대형교회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달성하기 힘든 숫자였다.

대통령 말 안 듣는 국민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장로를 지원하던 목사님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사진제공 오마이뉴스)
대통령도 위기다. 국민도 대통령 얘기를 죽어라고 듣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문제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이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민란'의 수준을 넘어섰다.  MBC 'PD수첩'이 4월 29일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한 내용을 방송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개설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위한 서명운동에는 5월 5일 현재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서명했다. 이전까지 다음 아고라에 올린 청원 중 최고 많은 서명을 한 인원이 19만 명이었다. 화가 난 누리꾼들은 이명박 대통령 미니홈피에 몰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4월 29일 밤 결국 대통령의 미니홈피는 폐쇄됐다.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이런 흐름은 오프라인으로 번졌다. 5월 2일에는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연인원 2만 명이 참석했다. 5월 3일과 4일 주말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약 2만 명이 참석했다. 한 고교생이 제안한 이 촛불집회에는 특히 중·고등학생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촛불집회에 배후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02년 효순이와 미선이 사고 때도 그들은 그랬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을 보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장로를 지지하던 목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적화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말하던 김홍도 목사나 '이명박 장로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 버린다'고 한 전광훈 목사, '예수 믿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오정현 목사의 얼굴이 쇠고기 수입 때문에 벌어지는 논란의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그래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 위해 미국에 와서 쇠고기를 먹는 장면까지 연출했지만, 이 목사들은 그런 퍼포먼스마저도 하지 않는다. 쇠고기 수입을 지지하는 발언이라도 한번 할 만한데, 아직 소식이 없다. 대선 때 선거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던 용기는 보이지 않는다.

왜 말 안 듣는지 잘 생각해야

▲ 일부 교인들에게는 우리 동네를 뉴타운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한나라당의 공약이 복음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왜 교인들이 목사의 말을 듣지 않을까. 그만큼 영악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교회 건물 안에서만, 종교적인 영역에서만, 자기에게 유익이 될 만한 대목에서만, 목사의 말을 들으면 된다는 사실을. 교회 건물 바깥에서, 비종교적인 영역에서, 자신에게 별 이익이 없는 대목에 대해서는, 목사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벼락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당은 이번 총선에서 뚜렷한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통일교가 국회에 진출하려 한다는 '종교적 이유'를 들먹여서 표를 호소했다. 하지만 대다수 교인에게 통일교의 국회 진출 저지는 매력적인 호소가 아니었다. 서울의 경우는 우리 동네를 뉴타운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후보들의 목소리가 훨씬 크게 다가왔다.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한 이유는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겠다'는 것이 먹혔기 때문이다. 대다수 기독교인에게는 '통일교 국회 입성 저지'를 외치는 기독당보다 '우리 밀면 부자 됩니다'는 한나라당의 메시지가 복음인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장로라는 이유만으로 찍은 기독교인은 얼마나 될까. 목사들이야 장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몰표를 던졌을지 몰라도, 교인들은 그가 장로라는 이유보다는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성공 신화'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교인들에게도 '장로' 대통령은 별 매력이 없지만, '성공' 대통령은 매력이 차고 넘친다.

목사와 교인의 관계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이런 점에서 목사들은 시대착오적이다. 강대상에서 교인들에게 '빤쓰 벗어라' 하면 '벗을까 말까' 고민할지 몰라도, 강대상에서 내려와 교인들에게 '빤쓰 벗어라' 하면 '너나 벗으세요' 한다는 걸 모른다.

이에 반해 교인들은 지나치게 영악하다. 이들은 두 개의 복음을 따로 믿고 있다. 하긴 성경을 보면 이해가 된다. 구약 시대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 영역에서는 '야훼'를 섬겼고 일상의 영역에서는 '바알'을 섬겼다. 이것도 다 목사들한테 배운 것이기는 하다. 목사들이 야훼와 바알을 동시에 섬겨도 괜찮고, 사실 그래야 저 세상과 이 세상에서 모두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기독당이 국회에 입성하면 교인들부터 뉴타운에 입주할 수 있고, 사립학교법이 재개정되면 교인 자식부터 명문대 입학할 수 있다고, 목사들이 선전했으면 교인들이 적극 지지했을 텐데, 목사들은 교인들을 과신하다 뒤통수 맞은 셈이다. 목사들이 머리를 좀 더 열심히 굴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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