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감옥 면제?
강간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감옥 면제?
  • 김동문
  • 승인 2017.08.01 0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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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의회, 강간범과 피해 여성의 결혼 허용 조항 폐지
튀니지 의회가 대표적인 악법조항이었던 형법 227조 규정을 폐기했다. ⓒ 알-하야 누리집 갈무리

어린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강간을 하였어도, 그 피해자와 결혼하면 죄가 면제되거나 경감된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거라 '결혼 생활은 창살없는 감옥이다' 하는 이들이 있지만, 실제 죄를 짓고도 감옥 대신 결혼을 택하는 성폭력 범죄자들이 적지 않다. 튀니지 등 일부 아랍국가의 아픈 현실이다. 튀니지 의회는 지난 주, 대표적인 반여성 악법으로 지목을 받아온 형법 227조의 규정 폐지를 의결하였다. 형법 227조 규정은 이렇다.

폭행 없이 15세 미만의 여자 아이와 성행위를 한 자는 6년 징역형에 처한 것이다. 만일 피해자가 15세 이상 20세 이하인 경우는 5년형에 처한다. 이 두 가지 경우에 있어서, 피의자와 피해자와 결혼은 기소를 중단하거나 선고에 영향을 준다.

'이 조항은 강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또한 '강간범이 형벌을 피하기 위하여 강간 피해자와 결혼하여 형벌을 피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성폭행이나 강간 피해자인 미성년자를 가해자와 결혼하도록 하는 것은 어린이 및 미성년자의 신체 및 정신건강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또 다시 희생시키는 악법이다.' 비 법조항에 대한 비난이 계속 이어져 왔다.

"강간에 대한 처벌은 결혼이 아니라 투옥이다." 강간범과 프헤 여성의 결혼을 조장하는 악법 조항 폐지를 주장하는 페이스북 계정. ⓒ 페이스북 갈무리

'강간에 대한 처벌은 결혼이 아닌 구속이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러한 악법 조항은 명예와 수치라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남존여비적인 가치체계가 반영된 것이다. 강간당한 여성 피해자를 가문의 수치로 생각하고, 그 수치를 결혼으로 명예롭게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여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존재로, 그리고 주체가 아닌 도구로 인식하던 잔재가 남아있던 것이다. 성폭행 피해 여성을 순결을 잃어버린 수치스런 존재로 취급했다. 전통 보수 사회에서 순결을 잃어버린 여인의 결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런 식의 결혼에 피해 여성을 내몰곤 했다. 여성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야만적인 행위였다.

튀니지 민주여성협의회가 2015년 말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일 2.8명의 튀니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 피해자는 연간 1,050명에 이른다. 조금 지난 통계자료이지만, 2010년 튀니지 정부 자료(the National Family Office)에 따르면 튀니지 여성의 47 퍼센트가 가정 폭력 피해 경험을 고백했다. 15.7 퍼센트는 성폭력과 강간 피해 경험을 갖고 있었다.

국제여성의날 행사(2014년 3월 8일) 에 튀니지 국기를 들고 나온 여성들 ⓒ2017 Human Rights Watch

한국에서도 관습법에 따라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오히려 죄인이 되는 구습의 영향을 받아왔다. 강간범, 성폭력범죄자가 피해자 또는 피해자 부모를 설득, 강재하여 합의를 이끌어내 처벌을 피하거나 경감받는 일은 한국에서도 드물지 않은 일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는 3만 4126명 이었다. 그 가운데 성폭력 범죄 피해자는 2만 9863명(87.5 퍼센트)이었다. 이 가운데 여성이 차지한 비율은 2만 7129명으로 90 퍼센트로 나타났다.

튀니지 사회에서 여성차별적인 악법 조항이 하나 줄어든 것은 튀니지 인권운동과 여성 권익을 위한 작은 승리이다. 그러나 여전히 넘어서야할 장벽이 가득하다.

한국 사회는 오래된 차별과 장벽을 지금도 마주하고 있다. 형법 규정이 아니라 남존여비라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성폭력 피해 여성의 보호를 소홀히 하는 경향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여성혐오 범죄도 늘고 있지만, 여성을 보호하는 규정과 사회 통념은 여전히 뒤쳐져 있다. 한국교회는 여성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만큼은 전근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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