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군함도]의 역사, 탈출 서사로 소비될 수 없다
리뷰] [군함도]의 역사, 탈출 서사로 소비될 수 없다
  • 지유석
  • 승인 2017.08.0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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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방식’ 아니라는 류승완 감독의 변, 납득 어려워
영화 <군함도> 메인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군함도 이야기를 가장 쉽게 전달하려면 탈출 부분, 친일파 부분을 빼면 됐을 것이다. 조사된 기록에 근거해 참혹한 부분을 드러내고, 일본인의 만행을 더 보여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쉬운 방식이다."

<군함도>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7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연출의도다. 류 감독은 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솔직히 일제강점기를 다룰 쉬운 방식이 있잖나. 관객을 어떻게 들끓게 하는지 말이다. 근데 그거야말로 선동이지”라며 자신의 입장을 재차 반복했다. 

사실 <군함도>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군함도는 일제 징용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런 역사를 탈출 대서사극으로 둔갑시킨 감독의 의도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서다. 그런데 류 감독의 언론 인터뷰를 접하고 나니 아무래도 몇 자 적어야 할 것 같다.

군함도의 이야기는 어느 방식으로 전달하든 쉽지 않다. 군함도는 앞서도 언급했듯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다. 그리고 동시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진행형의 사건이기도 하다. 류 감독 말대로 친일파와 탈출부분을 빼고, 징용 조선인의 참상과 일본의 만행을 드러내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걸 쉽게 생각했다면 류 감독 자신이 선택한 주제에 정서적으로 공감하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어떻게 옮겨졌을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다양한 서사구조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그중 윌렘 대포 주연의 1989년작 <트라이엄프>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유대인 살로모 아로슈가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참상을 그린 작품이다. 살로모는 수용소에 오기 전 빵집에서 일했다. 그런데 그는 남달리 복싱에 소질이 있었다. 수용소에서 독일군은 이 사실을 알아채곤 그를 링에 올린다. 

열악한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제대로 훈련할 기회도, 음식을 넉넉하게 먹지도 못했기에 살로모는 자칫 큰 위험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로 주먹을 휘두른다. 그리고 목숨 건 싸움의 대가로 얻은 빵울 굶주리는 동료들과 함께 나누며 생존의지를 다진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다른 영화와 달리 이 작춤은 유대인 학살 장면의 비중이 크지 않다. 그보다 영화는 살로모의 눈물겨운 투쟁을 무뚝뚝하게 응시한다. 무엇보다 살로모의 투쟁은 천박한 유대 우월주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살로모의 투쟁은 극한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 존재의 몸부림이었다. 아우슈비츠의 실상은 살로모를 통해 간접화법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오히려 독일을 직접 가해자로 그린 영화보다 훨씬 더 깊이 나치의 죄악상을 부각시킨다. 직접화법이든 간접화법 이든 나치 독일의 죄악상을 다루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트라이엄프>는 불편한 과거사를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군함도>의 경우, 독립군 비밀요원 박무영(송중기), 종로에서 주먹께나 쓰던 최칠성(소지섭),  악단장 이강옥(황정민), 위안부 출신의 말년(이정현) 등이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특히 이들은 영화 말미에서 조선인들을 군함도에서 탈출시키고자 맹활약한다. 류 감독은 이들을 영웅으로 그린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실제 군함도엔 영웅이 없었다. 일제가 영웅이 나오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싹을 짓밟았던 탓이다.

어차피 제작진이 영화 오프닝에서 '사실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만큼 사실 여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나, 군함도는 영웅서사를 끼워넣기엔 아직 알려야 할 진실이 많다. 특히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 시도를 감안한다면, 그곳에서 징용 조선인들이 어떤 설움을 당했는지에 무게중심을 두었어야 했다. 적어도 내 판단은 그렇다는 말이다.

군함도 이면에 역사왜곡이 있다 

영화 <군함도>는 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를 탈출 서사를 위한 소재로 소비한다. ⓒ CJ엔터테인먼트

일본은 군함도를 일본 산업근대화의 상징으로 선전한다. 여기서 군함도 외에 한 가지 더 주목할 곳이 있다. 바로 쇼카 손주쿠다. 아베 내각은 이곳과 군함도를 한데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렸다.

쇼카 손주쿠는 아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에 있는 서당 유적이다. 에도 막부 말기 사상가인 요시다 쇼인은 이곳에서 부국강병과 정한론을 설파했다. 조선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실질적 배후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테프트 밀약의 주역 가쓰라 타로, 초대 조선 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 등 한반도 침략의 주역들이 모두 요시다 쇼인의 영향을 받았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적 영향은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에게까지 이어진다. 아베 총리도 스스럼없이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고 말해왔다.

사실 군함도와 쇼카 손주쿠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아베의 정치적 야망의 결과물이다. 아베는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을 꿈꾼다. 그런 아베에게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자행한 한반도 병합과 중국 침략, 강제징용의 역사는 지워야 할 역사다. 반면 군함도와 쇼카 손주쿠는 오늘에 되살려야 할 자랑스런 역사다. 이런 이유로 아베 내각은 총리실까지 나서서 군함도와 쇼카 손주쿠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남다른 공을 들인 것이다.

일본은 <군함도> 개봉에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올해 2월 일본 보수 신문인 산케이는 "영화 <군함도>는 날조됐다. 하시마섬(군함도의 일본 이름 - 글쓴이)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운동의 일환"이라고 비판했다. 영화 개봉에 즈음해서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브리핑을 통해 "징용공 문제를 포함해 한일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라고 못 박았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우리는 먼저 군함도에서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일본이 군함도의 진실을 어떻게 은폐해 왔는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또 하나, 강제 징용에 대한 배상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일단 MBC TV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지난 달 4일 '군함도와 아베의 역사전쟁'편을 통해 군함도의 슬픈 역사와 아베 정권의 역사왜곡 시도를 고발했다. 앞으로도 탐사보도든 다큐든 영화든 모든 장르가 나서서 군함도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한가하게 배우 송중기의 스타성에 기대 일본 제국주의자와 이들에게 협력한 변절자의 목을 베는 장면으로 한풀이를 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영화가 사실을 토대로 했어도 허구적 요소는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밴 애플렉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아르고>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뒤늦게 토니 멘데즈 일행의 정체를 알고 이들이 탄 비행기의 이륙을 막는 장면은 허구다. 그런데 사실이냐 허구냐 하는 논쟁이 본질이 아니다.

류 감독은 앞서 인용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학설이나 자료로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카메라라는 무기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류 감독 더러 학설이나 자료를 토대로 조선인 강제징용의 숨겨진 진실을 규명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서 깊이와 연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진짜 문제다.

우리 근현대사는 유달리 아픈 역사가 많다. 영화 연출자들이 아픈 역사를 주제로 끌어 오는 건 자유이고, 또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군함도>의 탈출서사 식으로 아픈 역사가 소비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을 감안해 보면 더더욱 안될 말이다. 연출자인 류승완 감독에게 참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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