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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목사에게 침묵을 허하라임목사, 신목사, 로드리고 신부를 보면서 우리도 침묵해야
임현수 목사의 석방 소식에 2015년 8월 15일 기사를 다시 올립니다. (편집자 주)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임현수 목사(토론토 큰빛 교회)가 7개월 여 만에 모습을 보인 기자회견장과 평양 봉수교회에서 '참회'를 했다. 임 목사는 "내가 저지른 가장 엄중한 범죄는 공화국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심히 중상모독하고 국가전복음모행위를 감행한 것"이라면서 캐나다, 미국, 일본, 브라질, 한국 등 교회에서의 '사역보고' 중에 북한을 비난했다고 말했다. 특히 임 목사는 자신이 해온 대북 인도적 지원도 결국은 "미국과 남조선당국의 반공화국 압살정책에 편승하여 북의 체제를 뒤집어 엎고 종교국가를 세우기 위한 거점을 꾸리기 위한 데 있었다"고도  했다.

임목사의 발언은 '사역보고를 통한 북한 비난'과 '북의 체제전복 음모'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7개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이 '참회'가 본인의 의지에 의해 쓰여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 단체의 북한 지원 사업은 임목사의 두 가지 '참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역보고는 선교비 모금과 동의어고 선교비 모금은 피선교지의 상황을 악화시키면 시킬수록 두둑해진다. 피선교지의 척박함과 선교비 증액, 이 두 변수가 함께 가는 일은 북한 뿐 아니라 다른 선교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임현수 목사가 봉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최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에 함께 했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 졌고 풍요로워 졌다고 한다. 물론 미국이나 한국이 누리는 개인적 자유에 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그 사회도 확실히 변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선교에는 적신호거나 판단 착오를 가져오기 쉽다. 판단 착오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북한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믿고 더 가열차게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랫동안 북한에 공을 들여온 임현수 목사의 헌신적인 노력은 모두가 인정해 온 부분이다. 따라서 북한 측의 처사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번 사건은 임목사 역시 북한을 잘 몰랐던 데서 나온 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통일운동가에 따르면 임목사의 사역보고 중에 나온 북한 세습체제 비판 발언이 북한 측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북한 체제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분명 낯설지만 그 사회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지도체제는 특히 민감한데 북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을 오히려 북한 비판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기대'와 달리 북한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피선교지의 체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니카과라의 기억

피선교지 상황에 대한 분석력이 미흡했던 선교보고의 기억이 있다.  몇 해 전 주로 백인들로 이루어진 PCUSA 목회자들과 함께 니카과라 선교여행을 갔었다. 흔히 말하는 단기 선교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선교여행이었는데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현지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당시 니카과라는 포악했던 독재자 소모사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반군 산디니스타 출신의 오르테가가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었을 때였다.

오르테가는 1979년 33세의 나이로 40년 이상 철권을 휘두르던 소모사를 몰아내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오르테가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소모사 잔존세력인 콘트라 반군에게 뒷돈을 대었고 그 결과 니카라과는 끝없는 내전과 혼란으로 돌입했다. 지금 뉴욕시를 잘 이끌고 있는 더블라지오 시장은 20대 때부터 산디니스타 후원을 위한 미국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뉴욕 시장은 '빨갱이 시장'이다.

내가 선교여행을 갈 그 무렵 권좌에서 물러났던 오르테가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치를 하고 있었다. 선교 여행에 함께 한 동료 목회자들은 내전이 끝나고 오르테가 정권 하에서 안정 상태에 돌입한 니카라과를 위해 기도하고 다시는 소모사와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소망했다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우연의 일치처럼 니카과라에 있는 한국 선교사의 선교후원 요청 편지가 교회로 배달되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니카라과는 다시 공산당이 정권을 잡아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습니다.” 이 편지는 정세 분석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나를 실망시켰다. 당시 니카라과 정국을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로 분석한 PCUSA 목회자들과 공산화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어려워졌다고 말하는 한인 선교사의 태도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

이 구호품 뒤에는 교회가 있다고 꼭 생색을 내야 하는가? 왜 받는 이들의 자존심은 고려하지 않는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개인의 선행에만 적용되는 익명성의 원칙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성경을 건네주는 행위는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함인가? 선교보고용 이벤트인가? 북한 지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존중하지만 이러한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 북한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대한성서공회가 무료로 <공동번역> 인쇄 원판을 넘겨주어 일부 용어만 북한에서 고쳐 인쇄한 것이다. 이렇게 합법적인 성경 전달 사실을 북한 구호 활동가들은 왜 외면하는가?

임현수 목사가 기자회견에서 보도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북한측이 임목사 근황을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연 것을 보면 캐나다 시민권자인 임목사를 곧 석방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지난 번 종신 노동형을 받은 두 명의 '선교사'들 처럼 형량이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임목사의 기자회견을 본 사람들은 북한측의 공작 또는 고문을 의심하면서 '배신' '뒤통수'의 용어를 써 가며 북한을 비판하고 있다.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이 시점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일은 임목사 석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목사가 석방된다면 돌아와서가 더 문제다. 그가 공포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할지라도 한국 보수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금기어인 '위대한 수령님, 장군님'을 입에 담고 자신의 선교할동을 공작으로 인정한 점은 '배교'로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순교'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임목사의 '참회'는 살기 위한 행동으로 비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의혹은 제쳐두고 임현수 목사가 석방되어 돌아왔을 때 그에게 침묵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보수적인 언론이나 북한 선교단체들은 뒷이야기를 듣고 싶겠지만 어떤 내용이건 간에 임목사 또는 향후 비슷한 일을 하는 단체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현수 목사에 대한 기억

오랜 전 토론토에서 목회하는 해외한인 장로회 소속 목사들의 모임 자리에서 임현수 목사가 그 때 막 시작한 북한 사역에 대해 보고를 한 적이 있다. 보고가 끝나자 "우리가 보내는 구호품이 북한 군인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냐"는 목사들의 단골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그 때 임현수 목사는 "군인들도 우리 동포가 아닌가?  쌀 밀가루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들도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했다. 나는 초면이었던 그의 대답에 상당히 큰 감명을 받았다. 보수적인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 말을 하기 쉬운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소견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은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순수한 사람이었기에 이번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  20여 년의 긴 세월이 그에게 타성 혹은 지나친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은 아닌지 그것이 이번 사달의 원인이 된 것 같아 아쉽다.

나는 임목사가 속히 귀환하기를 기도한다. 동시에 돌아와서 사람들 앞에서 침묵하리라 믿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사역의 정당성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 '참회'가 강요 때문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대중 앞에서 새로운 '참회'를 한다면 그도, 한국 교회도, 통일 사역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비슷한 일로 북한에 억류되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로드리고 신부와 김은국의 소설<순교자>에 나오는 신목사의 생각이 났다. 일본 선교에 나섰던 포르투갈 신부의 배교 소식을 듣고 진상 조사차 일본에 온 로드리고 신부도 잡히고 만다. 선배 신부들의 배교를 믿을 수 없었던 로드리고는 자신을 배교시키기 위해 신자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을 보고 마침내 교인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의 성화를 밟는다. 로드리고 신부가 고난의 현장을 외면하는 하나님의 침묵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 순간 ‘나를 밟아야 한다. 너희들을 위해 밟히러 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배교하게 된 것이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배교했지만 그의 배교 행위는 많은 신자들을 살렸다.

이북지역을 점령한 한국군 정보대 장교가 '열 네 명의 목사가 심문을 받았지만 젊은 목사 한 명은 실성하고 신 목사만이 살아 나온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되는 일로 시작하는 소설이 <순교자>다. 12명을 순교자로 추대하면서 반공의 선전도구로 사용하려는 의도에서 조사를 시작했지만 밝혀진 것은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살아 나온 신목사를 향해 배교자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실은 신목사만이 유일하게 공산군의 위협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었다. 순교자로 추대받은 12명의 목사들은 모두 목숨을 구걸하다가 죽어갔고 신목사만이 당당했다. 이는 훗날 당시 현장에 있던 북한군 소좌가 체포됨에 따라 밝혀진 사실이었다. 물론 신목사의 석방 이유가 신앙고백이 아니라는 사실이 소설의 주요한 모티브이기는 하지만 신목사와 로드리고 신부는 언젠가 임현수 목사가 귀환하면 참고로 해야 할 인물들이다.

로드리고 신부의 배교는 신자들의 목숨을 구했다. 자신의 성화가 짓밟히는 순간에도 예수는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마찬가지로 임목사의 굴욕적인 '참회'가 이후 북한 주민 지원사업이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복음전도나 체제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방향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임목사는 자신의 명예나 신앙의 순수성 보다 북한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에 더 비중을 둔 사람이라고 믿는다. <순교자>의 신목사 경우처럼 우리는 지금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알 뿐'이기 때문에 지난 7개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돌아오면 궁금해 하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일단 침묵하자. 그래야 그도 침묵할 수 있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김기대  gilbert@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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