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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북미 개봉 <택시운전사>, 미국 기자의 5.18 회고5.18 둘러싼 전두환-레이건 미스터리 규명, 기폭제 되길
▲광주민주항쟁을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가 북미 지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의 평론가 평점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택시운전사>는 18일 오후 3시 기준 신선도 지수 93%를 기록했다.ⓒ 로톤토마토 화면 갈무리

광주민주항쟁을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가 북미 지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의 평론가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택시운전사>는 18일 오후 3시 기준 신선도 지수 93%를 기록했다. 주요 매체들의 평가를 살펴보자.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이고 폭력적이었던 한 단원을 다룬 흥미로운 여정." (버라이어티)
"노동자 계층 영웅을 향해 보내는 상상력 가득한 헌사. (할리우드 리포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살벌한 현장을 배경으로한 깊은 슬픔을 유발하는 사실 기반의 정치 드라마." (LA타임스)
"지나치게 무겁고 길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특수한 상황에서 영웅으로 변신하는 순간에 대한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애리조나 리퍼블릭)
"'그때 이렇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남기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뉴욕타임스)

최대 영화시장인 북미 지역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니 참으로 반갑다. 그런데 미 언론매체들의 평가를 접하며 무뚝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에게 <택시운전사>가 먼 나라의 과거를 그린 이야기여서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사정을 이렇게 쉽게 단순화할 수만은 없다.

미국은 5.18에 책임 없나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는 광주의 참상을 온 세상에 알렸다. 미국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CBS도 광주에 주목해 1980년 5월 28일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이때 CBS는 신군부의 사실 왜곡을 비판했다.

"(한국) 정부는 광주사태의 원인을 공산주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왜곡함으로써 시위가 계엄령 반대와 군부의 과잉진압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숨기려 하고 있다."

카터 미 행정부는 광주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백악관은 CBS 보도가 나가기 약 1주일 전 이미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한국 전쟁 당시엔 포병장교로, 이후 <워싱턴포스트>지 특파원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돈 오버도퍼는 자신의 책 <두 개의 한국>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최 급선무는 남한 정부가 광주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며 이후로도 광범위한 소요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무력사용은 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는 것에 대다수가 합의했다. 또한, 질서 회복 후 미국이 남한 정부, 특히 군부를 압박해서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미 의견이 일치됐다." -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미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와 뒤이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곤욕을 치르는 와중이었다. 가뜩이나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카터로서는 한국의 정정불안이 난감하기만 했다. 마침 그해는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기도 했다. 이어지는 악재를 수습하지 못하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에 카터 행정부는 신군부의 사태 왜곡엔 눈감은 채 '질서 회복'에 방점을 찍기로 한다.

카터는 재선에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공화당의 레이건에게 정권을 내주고야 말았다. 새로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은 전두환을 한껏 치켜세웠다. 레이건의 환대는 외교적 수사에만 그치지 않았다. 취임과 동시에 인접국인 멕시코와 캐나다 정상을 만나는 관례를 깨고 가장 먼저 전두환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앞서 인용한 돈 오버도퍼, 그리고 주한 미 대사를 지냈던 도널드 그레그의 회고에 따르면 백악관과 국무부의 실무진은 전두환을 낮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그레그는 자신의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백악관 쪽에서는 솔직히 잔혹한 독재자 전두환을 형편없이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가 김대중의 생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지만 않았다면 백악관에 초대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의 미국 방문을 대단치 않은 일로 깎아내리기 위해 노력했다." - 도널드 그레그, <역사의 파편들>

실무진과 달리 레이건 대통령은 전두환을 융숭히 대접했다. 정통성이 취약했던 전두환으로선 레이건의 환대는 신이 내린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이와 관련해 돈 오버도퍼는 이렇게 적었다.

"레이건은 국무부에서 조언한 절제된 인사의 말을 제쳐두고 전두환을 따뜻한 포옹으로 맞이했다. (중략) 레이건의 따뜻한 영접은 전두환의 정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또한 그것은 남한 사람들에게 전두환의 정권찬탈이 기정사실화됐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레이건은 열렬한 환영을 통해 전두화의 마음속 깊이 의무감과 호의를 심는 데 성공했다. 훗날 레이건은 이러한 호의를 십분 활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은 과거 미국을 흠모했던 한국인들 마음속에 지독한 적개심과 배신감을 안겨줬다. 레이건의 이같은 태도는 한국인들 사이에 전두환이 주동한 12.12 군사 쿠데타와 잔혹한 광주항쟁 진압조치에 미국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더욱 깊게 했다. 또한 미국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대대적이고 공개적으로 전두환 정권을 승인한 책임도 면치 못하게 됐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목숨을 걸고 광주의 참상을 온 세계에 알렸음에도 전두환은 권좌에 올랐다. 저간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전두환이 권좌에 오르게 된 데에는 미국의 후원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북미 개봉한 <택시운전사>, 진상규명 단초 될까?

▲<택시운전사>가 북미 지역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만큼, 미국의 역할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쇼박스

<택시운전사>는 20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택시운전사>의 흥행을 계기로 광주 민주항쟁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13일 이 영화를 관람한 뒤 "이 영화가 아직 풀지 못한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북미 지역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으니만큼, 차제에 미국이 5.18에 어느 수준까지 개입했는지 규명하려는 노력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선례가 없지 않다. 올리버 스톤의 1992년 작 < JFK >는 베일에 가려져있던 케네디 암살 의혹을 전면 재조명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 영화가 개봉되자 케네디가 암살당한 텍사스주 댈러스시 당국은 1992년 1월 시 경찰국이 봉인해 관리해 온 2500건의 수사 자료를 공개했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도 케네디 관련 비밀자료의 기밀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광주 민주항쟁과 관련해서도 이미 지난 5월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이 기밀 해제된 미국 국방성 정보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을 근거로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왜곡해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했고, 미국은 이 정보가 왜곡됐음을 알았음에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부디 <택시운전사>가 북미 지역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단편적인 소식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은 광주 5.18에 책임 있는 당사자다. 그러니 <택시운전사>가 북미 지역에서 흥행도 성공하고 5.18 당시 미국의 역할을 규명하려는 노력에 기폭제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유석  luke.wyclif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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