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10월, 아웅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83년 10월, 아웅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김기대
  • 승인 2017.10.04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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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사태와 케네디 암살의 비밀 봉인 해제

1983년 10월 9일 한글날 휴일을 지내던 시민들에게 버마(지금은 미얀마)를 순방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수행단의 피격 소식이 전해진다. 버마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웅산(아웅산 수치의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하려던 대통령 수행단 17명(보도진 포함)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전두환은 9일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덕에 참사를 면했다.

범인은 북한 공작원으로 알려진 강민철, 그는 곧바로 체포되어 미얀마 감옥에서 25년간 수형생활을 하던 중 지난 2008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연합뉴스의 강진욱 기자는 지난 6월 펴낸 <1983버마>(박종철 출판사)에서  강민철이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북파 공작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는 강민철의 증언 밖에는 없으며 2014년 현지에 세워진 추모비에 북한 소행이라는 말도 없다는게 그 이유다. 전두환을 향한 북한의 암살 공작이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계속되어 왔었고 아웅산 참사는 그 연장 선상에 있다는 것이 한국 정보당국의 분석이었다. 전두환을 필두로 하는 신군부가 저지른 광주에서의 만행 후 전두환 정권은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연계설을 계속 흘려 왔다. 4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시민군에 북한군이 투입되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흘러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당시의 공작이 지향했던 바는 뚜렷하다.

그러면 정말 해외 반정부 인사 또는 북한의 지령에 의한 전두환 살해기도가 있기는 했을까? 필자는 여기도 의문을 품는다. 전두환 집권 후 심정적으로 그런 마음을 한번쯤은 다 가져 보았을 것이고 반정부 인사가 많던 캐나다 교민들에게는 이런 말은 그냥 증오에 찬 넋두리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국제 태권도 연맹 총재를 지낸 대표적 친북인사 최홍희의 아들 최중화씨가 해외 전두환 시해 시도에 중심인물로 부각하고 최중화씨의 이웃집에 살던 마피아 보스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길지 않은 감옥생활 끝에 모두 풀려 났고 최중화씨는 한국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시해하려던 계획을 가졌던 사람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중화씨의 언급은 신뢰하기가 힘들다. 그는 <중앙선데이>(2008년 9월 14일) 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지령을 언급했다. 

강진욱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당시 버마의 상황이었다.

"노신영 외무부 방관이 1982년 기획해 전두환 대통령의 결재까지 받았다는 서남아 순방 일정에는 버마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비동맹 외교를 진두지휘하던 그는 1982년 6월 2일 갑자기 안기부장으로 가야 했고 서남아 순방 준비가 한창이던 1983년 5월 말 갑자기 청와대 지시라는 이유로 버마 방문 일정이 추가됐다. 그 직전인 1983년 5월 중순 버마에서는 보안과 치안을 책임지고 있던 군정보국장이 갑자기 숙청돼 보안 체계가 마비됐다. 버마와 한국 양쪽에서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조성됐던 것이다. 한국과 버마 양쪽에서 익런 일이 동시에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아웅산 묘소 테러는 일어날 수 없었다."  

목차를 보면 저자 강진욱 기자의 추적이 얼마나 집요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강진욱 기자는  버마 참사 한 해 전인 1982년 8월 전두환의 아프리카 가봉 방문 때도 이러한 시도가 있었다는 당시 언론보도도 수상쩍다고 지적한다. 가봉은 전두환 대통령 방문시 실수로 북한 국가를 연주할 정도로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친북 국가였다. 전두환의 가봉 방문과 때맞추어 북한 국적의 선박 '동건 애국호'가 가봉의 오웬도 항에 정박하고 있었다는 보도에서 날짜가 빠져 있는 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시차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동건 애국호는 버마사태 때도 등장하는데  이때는 3주 정도의 시차가 있었다. 기자의 말대로 "테러리스트들은 이 배가 입항한 뒤에도 무려 일주일을 배에서 머물고 배에서 내려 모처에 숨어든 뒤에도 무려 두 주나 빈둥거렸다는 각본이 나온 것이다".  실행에 옮기기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볼 수 있으나 당시 버마는 북한과 교류 상태였고 눈에 띠는 선박의 정박을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버마에 체류할 수 있었다.   

수많은 참사들- KAL 기 폭파, 천안함, 세월호, 국정원 직원의 자살, 심지어는 가수 김광석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음모론자들의 분석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일각에서는 음모론을 사실처럼 받아 들인다.

이 책 역시 음모론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의혹이나 음모론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자료나 정황분석이 방대하다. 특히 그의 마지막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그런데 어떤 인위가 개입되면 반복되는 역사는 비극과 비극 또 비극으로 점철될 수 있다..(중략)..아웅산 묘소 사건이나 천안함 사건과 같은 기상천외한 사건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박정희 시해일인 올해 10월 26일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에 관련된 비밀문서들이 봉인 해제된다. 음모론으로 치자면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만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는 10월 26일 해제된 문서에는 뭔가 확실한 해답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쯤 음모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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