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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일까?디지털 시대에 자본과 언론의 관계는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가 최후에 남겼다고 알려진 유명한 말이다.(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아니고 소크라테스의 당시 생각과 처지를 대변하여 누군가에 의해 후대에 만들어진 말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보면 독재자와 법의 권위를 옹호하는 기득권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린듯 하다. 시민들이 신을 믿지않고 젊은이를 타락시킨 죄를 물어 억울한 죽임을 당하게 된 소크라테스는 탈출할 상황에도 법에 순종한다. 이 말에는 법에 순종해야 사회질서가 확립되고 설사 법이 잘못된 판결을 내리더라도 개인은 전체를 위해 마땅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숭고하기까지 한 이 말을 들으면서 두가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첫째는 안따까움이다. 훌륭한 인제의 죽음이 잘못된 법의 판결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법이 가질 수 있는 폭력성과 잘못된 판단이라는 불안정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둘째는 사회질서의 중요성과 전체를 위한 숭고한 희생 정신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개인의 이익만을 따르게 되면 전체의 이익은 깨어지고 질서가 파괴되어 결국 더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게 된다.

법은 마땅히 따라야 사회질서가 유지된다. 그러나 그것이 법이 항상 옳고 진리라는 뜻은 아니다. 이상호 기자가 <김광석>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공개하면서 ‘언론엔 공소시효가 없다.’는 멋진 말을 남겼다. 그는 법의 공소시효에 대한 유감과 법이 다하지 못한 진실에 관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에 대하여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언론도 기득권이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인 것 처럼 법도 스스로 기득권이 되거나 기득권을 옹호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언론과 법의 상호 견제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법 앞에서 언론이 가지는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언론은 법에 따라 존재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을 기득권으로 보고 견제의 역할을 해야하는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돈이 곧 진리임을 체감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법앞에서도 ‘누가 얼마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가?’가 승리의 중요한 키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법정 안의 싸움에서 자본을 가진 자의 보다 높은 승률은 어쩌면 법의 공정성에 한번쯤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중범죄를 저질러 검찰에 고소를 당하고도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영화와 드라마의 흔한 주제가 된다. 이런 악한을 응징하기 위해 법을 넘어서는 ‘퍼니셔’가 된다는 무서운 영웅 영화도 심심치 않게 만들어진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민사 소송을 통해 가지지 못한 자의 인생이 어떻게 비참하게 파괴되는지 우리는 주위에서 흔하게 보게 된다. 국선변호사는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그러나 국선변호사를 선임하여서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법 앞에 억울한 판결을 받게 되더라도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법정 비용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칠 일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머물고 진실을 밝히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본다.

 

언론의 역할은 힘없는 소수를 위하여 또는 진실을 위하여 기존의 기득권 견제 세력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득권이란 평등하지 않은 권리를 소유한 단체나 개인으로 그들이 옳지 않은 행동으로 권리를 남용하면 언론은 이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바로잡으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법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잘못된 법이 있으면 개정을 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하며 법의 결정이 올바르지 않았다면 언론은 그 진실성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언론도 생존의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안에서 수익모델을 창출하지 못한 언론은 그 생명을 다하게 된다. 광고를 유일한 수익모델로 삼은 언론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했거나 변화를 택한 언론마져도 써치 엔진과 소셜미디어에 수익모델을 빼앗기고 점점 줄어져 가는 광고 수익에 연연하여 자본을 가진 광고주에게 생명줄을 내어주고 기득권의 견제 역할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이 박해 받는 자와 소외된 자들 편에서 또한 정의와 평등을 위해서 사회 기득권을 고발하고 견제하는 막중한 임무를 자본에 의해 져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Brian Jung 기자  brian@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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