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카탈루냐에는 헤밍웨이도 오웰도 없다
지금 카탈루냐에는 헤밍웨이도 오웰도 없다
  • 김기대
  • 승인 2017.11.04 05: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으로 읽는 카탈루냐 사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게리 쿠퍼가 주연한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헤밍웨이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이 한창일 때  종군기자 겸 작가로 참전하면서 공화파의 입장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당시 스페인은 ’20세기 모든 이념의 격전장’이라고 불릴만큼 전세계 이념들이 다 모여 서로 투쟁하고 연대했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자들, 유럽의 민주주의를 이식하려고 했던 ‘공화파’, 무정부주의자들인 ‘아나키스트’, 팔랑헤 당이 주축이 되었던 국민진영(왕당파) 등이 이합집산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 시기에 돌입했다.

스페인 내전을 가장 깊이 있게 정리한 책은 '스페인 내전'이다. 역사 작가인 영국의 앤터니 비버는 '20세기 모든 이념의 격전장'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당시의 모든 정파를 정리해 냈다. (김원중 옮김, 교양인 발행). 이 책 한 권이면 스페인의 현대사가 모두 정리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카탈루냐의 중심지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는 당시부터 서로 잘 안맞았다. 아라곤 왕조의 후예인 카탈루냐 지역과  라틴계라고 할 수 있는 마드리드 중심의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필연일수 밖에 없었다.  두 지역 간의 축구가 거의 사생 결단에 가까운 것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마드리드가 공화파의 중심지였다면 바르셀로나는 무정부 주의자 즉 아나키스트들의 본거 지 같은 곳이었다. 이 내용은 킴과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만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길찾기 발행)이 잘 다루고 있다. 아나키스트는 처음에는 공화파와 연대했지만  결국은 이쪽 저쪽으로부터 다 버림받은 한국 전쟁 당시 남로당이 주축이 된 빨치산들 같은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카탈로니아 찬가'(정영목 옮김, 민음사 발행)를 빼 놓을 수 없다. '1984년',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1936년  공화파를 지지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조지 오웰은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독립노동자당의 간부였던 존 맥나이르를 만나자마자 "나는 파시즘에 대항해 싸우러 왔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투철한 전사였다. 오웰은 아나키스트적 입장을 갖고 있었는데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2공화국 인민전선 정부에는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  아나키 신디칼리즘을 표방한 전국노동자연합, 소련의 지원을 받는 스페인 공산당의 일원이었던 카탈루냐 사회주의당 등이 섞여 있었다. 레닌 부대로 예속받은 오웰은 전투를 거듭하면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지만 노선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그를 향해  트로츠키파라는 비난이 이어지자 환멸을 느껴 스페인을 빠져 나왔다.

비록 그는 분파주의에 환멸을 느꼈지만 '카탈로니아 찬가'는 그런 비판을 담고 있는 동시에 스페인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좌파, 공화파, 아나키스트들이 분열로 치닫고 있을 때 팔랑헤당(팔랑헤는 라틴어로 보병부대를 의미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우파 세력인 국민회의쪽이 정권을 잡아 프랑코의 철권통치가 40여년간 이어지게 된다.

스페인 내전기간 동안 이념의 중심지였던 카탈루냐 지역이 다시금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스페인이 혼란에 접어 들었다. 체포령이 떨어진 독립정부 수반들은 망명한 상태고 스페인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절대로 이 지역을 포기할 리가 없기 때문에 결국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하나의 독립국가인지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 신성로마 제국에 속한 나라인지 애매하던 유럽이 17세기 개신교와 가톨릭의 전쟁이었던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현재의 국민국가 형태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인해 출범했다. 즉 오늘날의  주권 국가 개념은 이 때 시작된 것이다. 당시 유럽은 지역적 정서보다는 국민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을 중심으로 국경을 설정했다. 이 수법은 많은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던 유럽의 국가들이 20세기 들어 아프리카나 중동의 국경을 나눌 때도 사용되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 강국 앞에서 유럽의 국민국가 체제가 '하나의 유럽'을 위한 경제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들은 결국 유럽연합이라는 초국가 체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초'라는 거대한 세력에 의해 지역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지역 독립요구가 드세어 졌다.  분리독립을 바라보는 시각들도 스페인 내전 당시의 정의와 평등 이념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것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차원에서만 현 상태를 바라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유럽이 약화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내심 분리 독립을 지지하지만 유럽의 국민국가들은 유럽 연합이 붕괴될까 반대한다. 유럽의 좌파들은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선언을 지지하지만  20여젼 전 유고 연방이 해체될 때 그들은 유고 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의 독립을 반대했었다.

지금 카탈루냐에는 헤밍웨이도 오웰도 없다. 스페인 내전 당시 그들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던 레닌도 트로츠기도 아나키즘도 없다. 독립하려는 쪽이나 막으려는 쪽이나 권력과 경제 논리에만 매몰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것이  2017년 카탈루냐의 비극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