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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고민과 문재인의 고민김삼환의 세습 따위에 종교 개혁 500년 운운하지 말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대부분의 행사는 모두 '종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여기서 루터의 역할은 개신교라는 종파의 교조로 축소된다. 고작 김삼환 따위의 세습을 비판하는데 500주년을 들먹이며 1517년 그날의 사건을 불경스럽게 다루기까지 한다.

2009년 시사 주간지 타임은  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친 100대 인물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그 중에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1위로 뽑혔다. 뉴턴, 루터, 다윈, 셰익스피어 등이 뒤를 이었다.

일개 종파의 교조에게 3위는 과분하다. 그럼에도 3위에 부각된 이유는 그것이 종교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인문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그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종교 개혁이 아니라 혁명, 아니 대혁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을 뜻하는 revolution은 1559년 프랑스에서 처음 쓰였다. 그전에는 혁명이라는 말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루터의 개혁 Reformation은 혁명으로 불러야 하며 그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게 사사키의 주장이다.

앞서 말했듯이 종교개혁은 신구교의 갈등에서 우연히 파생된 사건이 아니라 근대를 여는 사건이었다. '오직 믿음'은 '주체'에 대한 자각을 가져왔고,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도 이 맥락에 서 있다. 칼뱅이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강조하면서 믿음과 주체의 관계가 논외로 밀려 났지만 루터가 발견한 '개인'은 분명 혁명적 각성이었다. '오직 은혜로'와 만인 사제설은 교회 중심으로 흘러가던 중세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켰고 사사키가 강조하는 부분 즉 성서 읽기의 혁명은 들음에서 읽고 쓰는 것으로 전환시켰고 이것이 근대를 열었다.

'대혁명'은 법치를 기본으로 하는 근대 국가의 초석을 놓았고,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1세기 뒤에 일어난 30년 전쟁과 그에 따른 베스트 팔렌 조약으로 국민 국가가 출범하면서 오랜 로마제국(서로마, 동로마, 신성로마)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혁명은 혁명이다.

하지만 혁명가 루터에게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것은 농민 전쟁이다. 그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그 결과 수많은 농민이 피를 흘렸다. 제후와 주민들을 먼저 고려했던 루터는 이 때문에 혁명가라기 보다는 소심한 개혁가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개혁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를 지지하는 제후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루터의 처지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루터를 혁명가로 보는 사사키 아타루는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는다. 농민혁명군이 주장한 12개 조항 역시 성서에서 준거를 찾았으므로 루터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또한 12개 조항 중 대부분이 이후 십수년내에 해결되었으므로 농민전쟁을 꼭 실패로만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혁명이 급격한 전환을 겪지 않고서도 텍스트에서 출발해  오랜 시간 걸려 완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지금 안고 있는 고민도 500년 전 루터의 고민과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중도적 성향의 소시민을 안고 가자니 '노동'과 '통일'의 행보가 휘청거린다. 결국 촛불 1주년 기념 집회에서 청와대로 가자는 세력과 국회로 가자는 세력이 대립했고, 청와대 만찬에 불참한 민주 노총 지도부에 대한 성토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노동과 북한에 대해 모호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루터가 농민 전쟁을 외면했던 역사와 겹쳐 진다.

저마다 자신들이 촛불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중도 자유주의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한편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미진한 부분을 더 강하게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수자는 늘 외롭듯이 '중도'의 목소리가 '소수'를 압도하기에 전통적인 노동 운동계와 통일 운동계는 수세에 몰려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하자. 진정한 촛불 정신은 소수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거다. 그들의 방법론이 틀릴 수는 있을지 몰라도 김규항의 지적처럼 자신들이 노동자이면서 노동계를 비판하는 현실은 서글프다. 트럼프라는 '늙다리' 때문에 한반도 상황이 안 좋아 졌고 미국의 눈치를 더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 동안 꾸준히 통일과 평화, 그리고 자주를 이야기 해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문재인 정부의 정당성도 확보된다. 문재인 정부의 열성 지지자들이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루터는 비텐베르크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이렇게 연설했다.

 

남자들은 술과 여자로 몸을 망칠 염려가 있다.

그렇다면 술을 금지하고 여자를 죽이라고 할 것인가?

태양과 별이 우리를 속인다고 한다면  

그것을 하늘에서 떼어내야 하는가?

그런 성급함이나 폭력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결여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이 나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라.

말이 그 모든 것을 이루었던 것이다.

 

루터의 이 연설은 태양과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사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는 이단에 대해서도 폭력을 쓰지 말라고 했다. 다만 말은 여전히 힘이 있다.  

중도자유주의자들의 눈에 문재인 정부의 반대 세력으로 보이는 노동 통일 운동가인 '저들'의 말이 지난 세월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 온 일들은 무척이나 많다. 그러기에 촛불 모두는 그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성공했듯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도 여기에 달려 있다.  

김기대  newsm@new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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