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2.7 목 02:49
상단여백
HOME 뉴스 정치
'장준하 목격자'라던 김용환씨 사망... 끝내 묻힌 진실'실족사 목격했다' 일관되지 않은 주장 펴던 김씨... 장준하 사건 진상규명 필요한 이유
1973년 12월 24일 서울 YMCA 2층 총무실에서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발표하는 장준하. ⓒ 장준하기념사업회

누구의 '부고' 소식을 듣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번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전해 들은 때는 지난 11월 13일(월)의 일이었습니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님이 실족 추락사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해 온 '유일한 동행자' 김용환씨가 지난 9월 20일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해 준 이는 1949년 백범 김구를 시해한 안두희를 지난 1996년 정의봉으로 단죄한 박기서 선생님이었습니다. 박기서 선생님에 따르면 지난 11월 12일 김용환씨를 만나고자 그의 집이 있는 충남 당진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김용환씨의 집은 비어 있었고 대신 그의 집 뒤편 언덕에 새롭게 조성된 묘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가가 보니 다름 아닌 김용환씨 묘였다며 저에게 전해 왔습니다.

 
'목격자'를 주장해온 김용환씨와의 기억

전화를 끊으며 마음이 스산해졌습니다. 지난 2003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담당한 조사관으로 일하며 그분을 20여 차례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기구하다며 한탄하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날, 자신이 장준하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는지 후회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장준하 선생님의 최후를 목격했다고 '주장해 온'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장준하 선생님이 등반 중 실족 추락사했다'는 모든 이야기는, 사실 이분에게서 기인한 것입니다. 1975년 8월 17일, 일요일이었던 그날 포천 약사봉으로 등반 간다는 호림산악회를 우연히 따라나섰다는 김용환씨.

그날,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장준하 선생님이 혼자 산으로 올라가신다는 말을 듣고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만 사고 지점에서 장준하 선생님이 추락사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그는 '장준하 선생님이 하산하기 위해 낭떠러지 계단에서 소나무 가지를 잡고 뛰어내렸으나 잡은 소나무가 휘면서 아래로 추락했다'며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목격 주장은 이후 끊임없는 의혹을 샀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유족은 물론이고 평소 장 선생님과 함께했던 분들이 그의 주장을 두고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분이 고 문익환 목사님과 김대중 대통령님이었습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 조사관인 저를 만나 "그때나 지금이나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장준하 선생님이 타살되었다고 확신한다"며 단호하게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가 제기될 때마다 김용환씨는 그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해명해야 하는 운명을 지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당신이 본 것이 정말 무엇이냐'는 질문이 반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런 반복이 거듭될 수밖에 없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용환씨, 바로 스스로 자초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김용환씨는 자신이 본 목격 사실을 일관되게 설명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라고 하면서, 그래서 자신이 본 사실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봤다는 그것이 무엇인지 누구도 납득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의 사실에 수없이 바뀌는 증언, 안타까웠다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이 사망한 후 목격자를 자처해온 김용환씨가 처음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한 것은 동아일보 장봉진 기자였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는 1975년 8월 18일, 사건 다음날 의정부지청 서돈양 검사로부터 조사 후 풀려나오면서 검사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장봉진 기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장 기자에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산 도중 잡은 소나무가 휘면서 추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김용환씨의 주장은 이후 역사적 사실로 굳어집니다. '장준하는 실족 추락사'라는 공식이 굳어진 계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김용환씨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국회의원의 지적에 따라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게 되는데 그때가 1988년의 일이었습니다. 사건 발생 13년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김용환씨는 그야말로 놀랍고 충격적인 새로운 기억을 또 말합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포천경찰서 한희권 경찰관이 김용환씨에게 "사건 당시 장준하씨가 소나무 가지를 잡다가 실족사했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는 물음에 대해 그가 답한 진술입니다. 

"저는 장준하씨가 실족 추락할 때 소나무를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보지 못하였는데 며칠 후 동아일보 신문에서 소나무를 잡고 내려오다 떨어졌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봤다'고 한 실족 추락사를 부인한 것입니다. 자기가 직접 봤다고 하더니 '사실은'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김용환씨의 새로운 진술을 확인한 후 저는 문제의 동아일보 기자를 찾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또 듣게 된 장봉진 기자의 증언.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날 서돈양 검사실 앞에서 목격자인 김용환씨를 만나 사건 경위를 물었고, 그때 김용환씨가 저에게 해 준 말을 그대로 받아써서 기사화한 것인데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이런 장 기자의 반박을 들어 저는 다시 김용환씨를 추궁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결국 김용환씨는 자신의 주장을 다시 철회하게 됩니다. 2003년, 모두 15번 작성된 진술조서 중 12회째 진술에서 김용환씨는 그동안 자신이 분명 봤다고 했던 장준하 선생 실족 추락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장준하 선생이 추락하는 것을 내가 못 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제가 나무를 잡고 내려왔기에 선생님도 그러셨을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1975년 8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장례식에서 장호준 목사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장호준

장준하와 김용환, 과연 저세상에서 만날까

김용환씨의 부고 소식을 들으며 저는 그때 그 일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분과의 기억도 났습니다. 그의 어눌한 말투도 생각이 났고 또 무섭게 저를 노려보던 눈빛도 떠올랐습니다. 그분에 대한 기억이 전부 다 나빴던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한사코 마다하는 그분을 설득하여 김치찌개 집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막걸리 한잔 따라 드리며 권하기도 했고 사람들의 의혹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간청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김용환씨는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여 논쟁이 거듭되자 자기도 답답하다며 화를 내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장준하 선생은 지금 이대로가 더 나은 것"이라는 묘한 말을 한 후 내내 입을 닫기도 했습니다. 

1930년대 초반생. 제 아버지와 같은 연배셨던 그분을 마주하며 저 역시 때때로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지난 2002년에 일찍 돌아가신 제 아버지 이야기를 전하며 김용환씨에게 "웃는 모습이 제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전하자 저를 바라보던 김용환씨의 눈빛은, 적어도 그때만은 자식을 바라보는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선한 눈빛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심으로 그분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저 세상이 정말 있다면, 생전 자신이 가장 존경했다고 열변을 토하던 장준하 선생님을 그분이 꼭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두 분만이 알고 있을 그날의 진실을 두고 이야기 나누는 상상을 해 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적어도 두 분은 분명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김용환씨께 저도 드릴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 진실을 밝혀낼 것입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마지막 그날, 그러니까 1975년 8월 17일 그날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끝까지 밝힐 것입니다. 이는 제가 김용환씨에게 생전 드렸던 약속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생전, 저는 김용환씨 앞에서 분명하게 약속한 바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다 할지라도 진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는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면서 얼마 전 기무사령부 문서고를 방문했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이 숨진 당일, 사건 현장을 방문한 인근 보안 부대장이 진종채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보낸 극비 문서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적폐청산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석구 신임 기무사령관이 임명된 후 기무사령부 또한 적극적으로 이런 기조를 따라가며, 문제의 문서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곧 진실의 일부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진실 규명은 꼭 장준하 선생님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나는 장준하 선생님의 실족추락사를 본 단순 목격자'라는 그의 주장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밝히는 것은 김용환씨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를 밝히지 않는다면 김용환씨는 영원히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진실이 밝혀지는 날까지 편히 쉬소서. 고 김용환 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상만  newsm@newsm.com

<저작권자 © NEWS 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의견나누기(0개)
코드를 입력하세요!   
0 / 최대 3200바이트 (한글 1600자)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상세보기]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