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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 타령 속에 '김삼환'은 세를 키웠다학자와 언론, 교회 개혁가들의 상투적 분석이 안타깝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를 분석하는데 서북 세력은 늘 키워드가 된다. 평안도 지역을 의미하는 서북 기독교라는 용어를 처음 학계에 정착시킨 사람은 교회사가인 민경배(전 연세대 교수)였다.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민경배 교수는 서북세력을 한국 교회의 주류로 분석하면서 별다른 가치 판단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경배 이후 서북은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비판하는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서북 기독교가 한국 기독교에서 차지한 비중을 무시할 사람은 없다. 특히 한국 최초의 대형교회였던 영락교회의 설립자인 한경직 목사와 서북청년단의 관계 때문에 한국 교회=영락교회=반공=주류라는 등식이 21세기의 연구자들에게 까지 비판없이 사용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영락 교회는 한국 기독교의 대표교회가 아니다. 이미 1980년대부터 한국 교회의 주류 권력은 옥한흠 하용조 이동원 같은 신흥 복음주의자들에게 넘어 갔다. 언제적 영락이고 언제적 한경직인데 아직도 그것을 키워드로 삼아 한국 교회를 분석하는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가? 시선이 이처럼 애먼 데 머무는 사이에 김삼환은 멋지게 엎어치기 한 판을 성공시켰다.

한국 교회에서 반공정서가 큰 역할을 해 온 것은 맞지만 거리에서 천박한 반공구호를 외치는 무리들 중에 주류 교회의 교인들은 별로 없다. 그들은 그렇게 몰지각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존재들이 아니다. 반공 구호의 현장에는 고작 김홍도 시절의 금란이나 조용기 시절의 순복음 소속의 교인들이거나 '듣보잡'에 가까운 선교단체에 소속한 사람들만 동원된다.    

서북세력이란 평양신학교(현재 거의 대부분의 장로교 계통의 신학교들이 평양 신학교의 적자임을 내세운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력이다. 일단 장로교 양대 산맥인 합동과 통합만 놓고 보자면 서북세력은 한경직의 영향으로 주로 통합측에 많이 포진했었다. 복음주의 강자들의 교회가 성장하기 전 한국의 3대 교회(사실은 통합의 3대 교회이지만 당시 영향력을 고려할 때 한국의 3대 교회라고 해도 무리는 없다)는 영락 새문안 연동이었다. 영락은 당연히 서북세력이었지만 새문안은 민경배가 '기서 지역'으로 분류했던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모인 교회였다. 평양신학교 1대 학장인 마펫 선교사와는 다른 성격의 언더우드가 세운 교회였기 때문이다. 새문안을 대표교회로 발전시킨 3대 목사 강신명은 경북 출신으로 서북세력이 아니었다. 연동교회 역시 캐나다 선교부에서 세운 교회로 서북세력의 주류는 아니었다. 연동 교회는 성결교 신학교인 서울신학대학 출신의 김형태(경북 출신)가 부임하면서 더더욱 서북세력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강신명과 김형태는 진보인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나름 서북세력과 차별화하면서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를 중심으로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목회를 지향했다. 1980년대 거리의 저항이 드세었을 때 명동성당으로 피신 못한 시위대들이 연동 교회로 와서 피신할 정도로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반면 한경직 이후 목회를 이어받은 박조준의 외화 밀반출 기도사건으로 영락은 퇴조의 위기에 처한다(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사건에는 정권과 결탁한 통합내 대구경북세력의 협조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박조준 이후 영락은 구태를 벗어나기 위해 신학자 출신의 김윤국을 청빙했으나 영락의 뿌리 깊은 정서는 김윤국을 오래 두지 않았다.  

이처럼 한경직 이후 서북세력은 퇴조했는데 아직도 학계나 언론에서는 서북타령을 하고 있으니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 얼마나 일천한지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

황해도 출신의 곽선희(소망교회)를 넓은 의미의 서북세력으로 볼 수 있으나 그는 서북 주류들과는 달리 대북화해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아들 곽요셉에게 소망을 물려 주고 싶었지만 은퇴(2003년)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조선기독교 연맹 목사를 강단에 세운 사건으로 말년에 교회내 영향력을 상실하고 세습에 실패한다. 결국 다른 지역에 소망교회를 세워 변칙으로 세습한다. 이 사건을 두고 한국 교회의 반공정서를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당시 정서로 그 시도는 어느 교회에서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만큼 파격적이었다. 다른 여러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곽선희의 대북 화해 노력만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렇게 서북세력이 퇴조하는 동안 강신명과 김형태 밑에서 세를 키워가던 연대장급들의 대구 경북 출신들이 한국 교회의 주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은 강신명과 김형태에 미치지 못했기에 이들은 정치세력화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3대 교회에 눌려 있었고 신흥 복음주의자들이 부상하던 시기에 통합 내 대구 경북 세력들이 권력을 차지하기에는 역부족인 점이 많았다.  이 때 그들은 안동출신의 김삼환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김삼환은  장로회 신학대학 즉 주류 신학교 출신이 아니었다. 안동성서학원 출신이었기에 중견 대구 경북 세력들은 김삼환 카드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교회는 키웠지만 서자 취급을 받던 김삼환을 픽업했고 김삼환은 대형 교회 목사답지 않게 대구 경북 선배들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적자의 반열에 올라선다. 마침 정치적으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전두환 시절에 차마 대놓고 못하던 권력과의 결탁이 노골화된다. 직선제 대통령을 지지하는 데는 그만큼 위험성이 적었다. 실력있는 조직 신학자이기도 했던 이종성(경북출신)은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수들을 중심으로 선거 과정에서 대구 경북의 대표주자 노태우 지지 선언을 이끌어 냄으로써 학생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대구 경북 세력은 이때부터 한국 교회의 주류 세력으로 부각한다. 이들은 이덕일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지적한 노론의 형태와 많이 닮아 있다. 그들의 정치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그런 형태 말이다. 그들은 ‘반공’, ‘경제발전과 신앙’, ‘반동성애’  등 어디든 개입한다. 그러면서 각 기관에 자기 사람을 배치하고 교회정치를 장악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실 정치에 지분을 요구한다. 박근혜가 퇴진 직전 김삼환을 청와대로 불러 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삼환의 배후에 있는 그들에게 박근혜가 퇴진하고 안하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김삼환이 소환된 것만으로 그들은 만족한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의 입에서 천박한 반공 구호가 안 나왔다고 괜찮은 교회가 되고, 세습 때문에 평가가 구겨진 교회 정도로 인식된다. 손봉호가 세습만 안하면 명성은 더 좋은 교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 내용이 복음주의자들의 낮은 인식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발언이다. 

그들은 신앙과 사회적 성공이라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지역 패권주의로 이미 거대 세력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낡은 축음기를 트는 듯한  분석가들이 서북 반공타령을 하는 동안 이들은 마치 노론처럼 그들의 세력을 키워 왔다. 명성교회의 세습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김삼환의 세습 사건은 그의 탓만이 아니라 아직도 서북타령하고 있는 이들, 복음주의 이름으로 교회를 키워온 1세대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그 후예들, 목회자만 민주적으로 교체되고 교회 재정만 건전하면 좋은 교회라고 인정해주는 교회개혁가들, 이미 자본주의 세계관이 깊이 물든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지금 누가 누구를 탓하고 있는가? 

김기대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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