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만 강조하면 여성 영화?
모성애만 강조하면 여성 영화?
  • 김기대
  • 승인 2017.12.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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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미씽], [희생부활자]의 주제는 하나- 모성애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7년에 상영된 한국 영화 중 여성영화(여성 감독 영화를 말하는지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인지 규정짓기 애매한 용어다)는 4편이다. 악녀(정병길 감독, 김옥빈 주연), 미씽(이연희 감독,공효진 엄지원 주연) , 미옥(이안규 감독, 김혜수 주연),  희생부활자(곽경택 감독, 김해숙 김래원 주연)가 그것인데 이 중 악녀를 제외한 세 편은 한결같이 모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희생부활자>는 사실 여성영화라기 보다는 스릴러물인데 눈물겨운 모성이 다른 여성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렇게 분류해 보았다. 죽은 사람이 원수를 갚기 위해 부활했다가 복수를 마친 후에 화염에 싸여 다시 사라진다는 설정이다. 일부 영화 평론가들이 황당한 소재라고 비판하지만 슈퍼 히어로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지구를 구하는 영화도 있는데 이 정도로 소재를 탓할 수는 없다. 이승에 한이 남아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라는 60년대 공포 영화 소재가 21세기스럽게 희생 부활자라는 용어로 거듭난 것 뿐이다.  

<희생부활자>에서 7년 전 강도 피해를 당해 죽었던 김해숙이 갑자기 살아 돌아 온다.  검사인 아들 김래원이 누나 집에 와서 실제로 살아 돌아온 엄마랑 조우하는 순간, 엄마는 아들을 공격한다. 이 기이한 일은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에 보고되고 정보기관은 원수를 갚기 위해 돌아 온다는 희생부활자의 속성으로 미루어 짐작해서 모자 지간을 의심한다. 희생부활한 엄마가 아들을 원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한 날 만취해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김래원의 과거가 밝혀진다. 술에 취했던 본인은 그 일을 전혀 기억 못하고 있다가 조금씩 그날의 비극이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그러면 엄마는 왜 그 어려운(?) 희생 부활자가 되어 '희생 부활자의 속성'을 포기하고 아들을 공격했는가? 말썽을 피운 아들에 대한 엄마의 한탄일 수도 있고 차라리 내 손에 죽으라는 엄마의 마음일 수도 있다. 실은 아들을 공격하기 위해 희생부활자가 되어 돌아온 뺑소니 피해자에게 읍소하며 그들로부터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엄마는 황당한 희생부활자가 되었던 것이다. 엄마 역시 뺑소니 사건을 덮은 죄 때문에 7년전 희생부활자에게 당했었기에 나 하나면 족하니 아들은 살려달라는 읍소다. 아 ! 찡하다. 귀신이 되어도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뜨거운 모성.  김래원은 살아 남고 죽이려는 귀신, 살리려는 귀신 모두 사라진다.  김래원의 감옥행으로 귀신은 '정의실현'에도 기여했다는 '윤리적(?)'메시지도 전한다. 감독이 보기에도 모성찬양이 너무 낯뜨거웠는지 슬쩍 사필귀정을 끼워 넣은 것으로 보인다. 

<미옥>에서 김혜수의 모성애 역시 눈물겹다. 조직 폭력배 보스의 아들을 낳은 김혜수는 2인자로서 보스 곁에 머물면서 온갖 궂은 일을 처리한다.  그 옆에는 김혜수에 대한 연민을 놓지 못하는 행동대장 이선균이 있다. 김혜수가 보스의 정식 아내도 아니면서 그리고 자신을 향한 이선균의 애틋함을 모르지 않으면서 냉혹한 조폭 2인자로서 모든 감정을 억제한 채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오직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선균의 구애에 대해서는 아들을 우리랑 똑같이 키울 수 없지 않느냐며 아들을 향한 엄마의 희생을 확인한다. 그러면 실제로 잔혹함을 배후에서 지시하는 보스의 아들인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죽이는 자신이 엄마인 건 아들에게 괜찮은가? 기업형 범죄가 되어 잔혹함만 가리워지면 아들이 잘 자랄 수 있다는 설정이 너무 우습다. 마침내 아들만 살고 모두 죽는다.  희생부활자에서 김래원만 살아남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씽>은 다른 모성 영화와는 차별된다. 자기 아이를 잃은 데 대한 복수심을 가진 엄마와 자기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모성이 충돌한다. 모성은 보편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그것은 폭력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두 엄마는 여성으로 희생자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모성은 다르게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 감독이 연출한 미씽에서는 오히려 모성에 대한 칭송이 유보된다. 오래 전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지적 장애 아들을 지키려는 모성 아닌 동물적 본능을 가진 김혜자가 보여준 '엄마다움'이야 말로 갈 데까지 다간 추한 모성의 모습이었다.

2017년 한국 영화에서 모성은 신파가 되고 말았다.  미옥과 희생부활자는 오히려 여성을 남성의 종속물로 여기는 남성영화에 가깝다. 공교롭게도 희생부활자의 감독은 ‘친구’같은 남성(?) 영화를 감독한 곽경택이다.

모성애란 과연 존재할까? 동물적 본능으로 자식을 지키려는 마음에 있어서는 아비 어미가 다 같지 않을까? 왜 사회는 여성을 모성애 안에 가두려는 걸까?

모성애란 오히려 근대 산업 사회 이후 여성들에게 부가된 개념이다.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남성들의 경쟁이 심화되자 여성들에게는 “삶을 아름답게 치유하고 거친 힘에 의해 상처 입은 곳을 어루만지는 것, 삶을 그 자체 안에서 화해시키는 것이 여성의 임무”(포이에르바흐)라는 짐이 지워졌다. 여성은 남성들을 위해 가정에 볼모로 잡혀있는 존재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 내야 했다. 즉 남녀간의 노동력, 학력의 격차는 있어도 그것을 어느 한 ‘성’의 고유 가치라고 하기는 어렵다. 반면 출산은 여성이 가진 고유한 기능이다. 사회는 이 가치를 더욱 칭송함으로써 여성의 다른 불만을 잠재웠고 여성들은 사회의 노련한 기획에 따라 스스로를 모성애적 존재로 규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모성애란 여성의 타고난 감성이 아니라 근대 사회 이후 교육되고 강요된 개념이다. 그런데 ‘여성’의 범주에 속한 영화들이 보여주는 난데 없는 모성 타령은 낯설다.

여성 대통령을 잃은 데 대한 그리움의 표현인가? 아니면 본래 여성에게서 모성애밖에 찾지 못하는 남성 감독들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인가? 어떤 의도이든 여성 영화가 불편하지만 그나마  <희생부활자>, <미옥> 모두 흥행성적이 좋지 않아 다행이고 모성을 자제한 <미씽>이 부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 2017년 여성 영화의 체면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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