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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살해해 드립니다!헐리우드 죽음의 박물관을 찾아가다
Museum of Death ⓒ <미주뉴스엠 브라이언 정 기자>

[미주뉴스엠(LA)=마이클 오 기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하였다. 인간이 죽음을 직면할때 비로소 자신의 참존재를 깨닫고 미래로 향해 나갈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삶은 마치 죽음이라는 스위치를 제거해 버린듯, 온통 인공적인, 살아있음에 관한 것으로 가득차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삶을 가리켜 비본래적인 (Unauthenticity) 삶이라고 명하였다. 자신의 고유한 삶으로 부터 소외되고, 온통 주입되고 강요된 것들로 채워진 삶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본래적 삶에 죽음을 처방한 하이데거를 생각나게하는 장소가 있다. 캘리포니아 헐리우드에 위치한 죽음의 박물관 (Museum of Death)이다. 

‘죽음은 모든곳에’라는 네온싸인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는 이곳은 온갖 종류의 죽음의 흔적들과 상징물들로 채워져있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살인사건의 기록들과 사진들, 사형수의 마지막 흔적을 담고 있는 편지와 옷가지들, 교통사고, 전쟁과 테러 등으로부터 남겨진 다양한 죽음의 파편들이 방문객과 마주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Museum of Death ⓒ <미주뉴스엠 브라이언 정 기자>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묘사와 기록들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문화와 풍습에 따라 행해지는 다양한 장례방식, 죽음이 남긴 시신을 처리하는 장면, 남겨진 자들의 반응과 모습 등, 죽음이라는 사건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과 삶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의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경험하는 죽음은 대부분 시각적인 것이다. 죽음을 담은 자료들에서 흘러나오는 음산한 선율과 나레이션이 방문객의 뒤를 따라다니고, 오래된 죽음의 퀘퀘한 향기가 부유하는 이 공간 가운데에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이미지들의 향연은 단연 압도적인 것이다. 절단되고 분해된 죽음의 육체들은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 사방에 펼쳐져 있다. 흩뿌려진 핏자욱들과 육신의 파편들은 마치 초현실주의자의 그림처럼 실재라는 캔버스위에 굿판을 벌인 듯 하다. 

Museum of Death 내부 ⓒ <미주뉴스엠 브라이언 정 기자>

해체된 육신을 재료로 연출해내는 죽음의 이미지는, 죽음 그 자체를 현실의 너머로 쫓아낸다. 이미지의 과도한 에너지가 노숙하던 죽음을 깨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린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늘 끔찍하고 기괴하다. 죽음 그 자체가 댄디한 신사도 요조 숙녀도 아닐터이지만, 그렇다고 거리에 죽은 개도 아닐텐데, 이미지의 광기는 죽음의 발가벗은 육체를 난도질하여, 기여이 피투성이를 만들고 만다. 죽음의 스펙타클을 만드는 것이다.  

스펙타클로서의 죽음은 단순히 본연의 죽음을 현실의 경계 너머로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삶 또한 스펙타클과 충동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죽음이라는 존재의 닻이 제거되어버린 삶은, 이제 저 광활하고도 적막한 우주로 떠내려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남은 것은 오직 박제화되어버린 삶이라는 이미지와 스펙타클, 그리고 충동 뿐이다. 

이미지에 포섭된 죽음과 삶은 소비를 통해서만 존재를 부여받게 된다. 따라서 소비에 합당하지 않은 삶과 죽음의 요소들은 어떠한 존재도 얻지 못하고 거세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서 이미지로서의 삶과 죽음이 상품으로 거듭나는 목숨을 건 도약에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박물관이 대담하게도 헐리우드에 위치하게 된 이유인 것이다. 비본래적인 삶을 전복시키고 본래적인 삶을 해방시킬 레지스탕스로서의 죽음이 이미지에 사로잡혀 장기를 적출당하고 껍데기만 남겨져 전시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죽음의 박물관은 죽음이 살해당한 장소이며, 죽음의 무덤이며, 죽음의 고기덩이를 파는 푸주간이다. 

이러한 연유로 죽음의 박물관은 본래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불안과 결단 대신, 기괴한 카타르시스와 오르가즘만을 제공한다. 죽음의 박물관을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고도 시원한 이유인 것이다. 한편의 포르노처럼 죽음의 박물관은 죽음의 적나라한 속살을 보여줌으로서 진정한 삶과의 사랑을 은폐시켜 버린다. 

헐리우드에서 이반 일리치를 만날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본이 어떻게 이미지를 통해서 삶을 왜곡시키고, 죽음조차도 살려내는지 목격해보고 싶다면, 죽음의 박물관을 추천한다. 이반 일리치의 시신이 적어도 $15 정도의 쾌락은 선사해 줄것이다.    

입장 안내 ⓒ <http://www.museumofdeath.net>

마이클 오  michaeloh@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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