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과 지도
내비게이션과 지도
  • 김종희
  • 승인 2008.05.20 13:3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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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굴종적인 믿음을 가질 것인가, 자율적인 믿음을 가질 것인가

한국에서 운전자들에게 내비게이션은 필수품이다. 한국에서는 주소와 지도만 들고 차를 몰아 목적지까지 무사히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내비게이션을 이용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손놀림 능력을 갖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내비게이션 하나도 ‘상품’에서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저 길 안내만 잘 하면 될 터인데, 우리는 그것만으로 절대로 만족을 못한다. 속도 측정기가 50미터 앞에 있다고 경고해준다. 내 차의 지금 속도도 빠른지 느린지 알려준다. 화면에 나타나는 총천연색 건물은 입체로 되어 있다. 남자 운전자를 위해서는 여자가 섹시한 목소리로, 여자 운전자를 위해서는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내한다. MP3는 물론이고 DMB 기능도 있다. 내비게이션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운전하다가 일어나는 사고가 제법 많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에 와서 남의 차를 운전하는 몇 개월간 그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길을 찾아다녔다. 가격이 한국에 비해 싸지도 않은데 왜 그리 투박한지 모르겠다. 말투도 친절하지 않고, 화면도 섬세하지 않다. 길 안내라는 원래 목적에만 충실한 편인 것 같다. 아무튼 물건 촌스럽게 만들기로는 미국 따라갈 나라가 없다.

지도에 의지하면 여러 갈래 길 중에서 자기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러려면 목적지까지 가는 단선 말고도 여러 다른 길도 찾아보게 된다. 그것이 반복되면 그 지역의 전체적인 윤곽을 보게 되고, 나중에는 가보지 않은 곳도 대충 어느 지점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내비게이션과 지도의 장점과 단점

내비게이션의 최대 장점은 편리함이다. 처음 가본 길이라도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문제가 없다. 가끔 엉뚱한 곳으로 안내를 해서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Reset 버튼을 누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이내 제정신을 차린다. 편리함은 동시에 안도감을 준다. 불안하지가 않다.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만 따라가면 된다. 의심할 필요도, 긴장할 이유도, 걱정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가장 빨리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비게이션의 장점이자 지도의 단점은 때로는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지도를 들고 길을 나서면 불편하고, 초행길의 경우는 불안하기도 하다. 중간 중간 표지판도 제대로 살펴야 하고, 지도상에서 내가 어느 정도 왔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체크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주 차를 세워야 한다. 따라서 내비게이션에 의지할 때보다 빨리 갈 수가 없다.

내 차를 운전하기 시작한 3개월 전부터는 내비게이션을 쓰지 않는다. 미국 전역의 지도가 담긴 두꺼운 책 한 권을 차 안에 비치해 놓고, 가까운 지역은 인터넷으로 검색한 지도를 프린트해서 갖고 다닌다.

이유가 있다. 내비게이션 없어도 주소와 지도만 있으면 목적지까지 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로와 주소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면 지도에 의지하는 것과 비교할 때 지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딱 그 길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안전하고 빠르고 편하다. 그러나 그 길밖에는 모른다. 반면 지도에 의지하면 여러 갈래 길 중에서 자기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러려면 목적지까지 가는 단선 말고도 여러 다른 길도 찾아보게 된다. 그것이 반복되면 그 지역의 전체적인 윤곽을 보게 되고, 나중에는 가보지 않은 곳도 대충 어느 지점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자동차 시동을 걸기 전 지도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면서 지도상의 거리를 눈으로 익힌다. 전체적인 윤곽을 머리로 익힌다. 그 다음 스스로 길을 떠나본다. 이것이 반복되면 웬만한 목적지는 한두 번 갔다 오면 지도 없이도 간다. 불안함은 사라지고, 도중에 나타나는 호수도 들르고 공원도 들를 만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나보다 훨씬 오랜 기간 이곳에 살면서 운전하는 사람 중에 이곳 지리를 나보다 더 모르는 사람이 있다. 내가 원래 지리(地理) 과목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은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서 운전하고, 나는 지도에 의지해 운전한다는 차이뿐이다. 공식을 암기해서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와 원리를 이해해서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 중에 누가 진짜 수학 실력을 튼튼하게 갖게 될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다.

▲ 설교에만 의존하는 신앙생활은 정말 편하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좌우를 둘러볼 필요도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불안하지도 않다. 믿음도 쑥쑥 자라는 것 같다. 반면에 지도와 같은 성경은 우리 삶의 여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보여준다. 그 많은 길 중에서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지 강요받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의지하는 믿음과 설교에 의존하는 믿음

일전에 누군가가 설교하면서 ‘하나님은 내비게이션’이라고 비유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목적지까지 틀림없이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기 때문에, 그것만 잘 따라서 믿음 생활하면 된다는 내용이다. 딱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 지도는 성경이고, 내비게이션은 설교라고 말이다.

한국 교회 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운전하듯이 설교에만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설교에만 의존하는 신앙생활은 정말 편하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좌우를 둘러볼 필요도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불안하지도 않다. 믿음도 쑥쑥 자라는 것 같다.

그러나 설교에 길들여진 사람은 자기 판단력이 빈약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나, 무엇이 더 좋고 더 나쁜지에 대한 분별력이 희미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판단력이나 분별력이 비뚤어진 채 너무 강하기도 하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그 길만이 천국으로 가는 바른 길이고, 나머지는 다 지옥으로 가는 틀린 길이라고 생떼를 쓴다.

한국 교회 설교가 교인 스스로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보다 마치 목사가 하는 얘기만이 정답인 것처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도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분별하기보다는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약하게 얽혀 있다.

지도와 같은 성경은 우리 삶의 여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보여준다. 그 많은 길 중에서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지 강요받는 것이 아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것은 말씀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자유는 때로 불안감과 불편함과 책임감을 동반한다.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서 가다가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느라 고생을 할 수도 있다. ‘좀 더 꼼꼼히 살필 걸’ 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근데, 좀 그러면 안 되나.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지도를 갖고 있다면 침착하게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다. 비록 돌아가더라도, 그런 경험은 대개 약이 되지 독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믿음이 튼튼해지고 건강해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내비게이션을 주셨을까, 아니면 지도를 주셨을까. 난 하나님이 지도와 같은 성경을 선물로 주셨다고 믿는다. 그걸 포기하고 내비게이션과 같은 설교에만 의지하는 인생은 굴종적이고 노예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중에는 지도도 내비게이션처럼만 써먹듯이, 성경을 읽을 때도 딱 한 길만, 오직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우도 있다. 지도의 가치와 묘미를 모르는 사람이다.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기가 불안한가. 그렇다면 그 신앙이 불안하고, 그 인생이 위험하다. 지도를 차 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보자. 한 길로만 가려 하지 말고, 이 길로도 가보고 저 길로도 가보자. 내 동네만 보지 말고, 옆 동네도 보고 저 먼 곳도 보자. 그렇게 넓게 보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세상 등지고’ 십자가만 보려 하지 말고, ‘세상을 앞에 놓고’ 십자가를 볼 수 있을 때 하나님나라도 제대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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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 2008-05-23 22:12:54
기자와 소설가의 차이점은 기자는 객관적인 사실에 토대를 두고, 소설가는 가정과 상상력으로 글을 쓴다는 데 있죠, 적어도 이글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대표적인 어느 교회를 대상으로, 몇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교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통계상의 이러한 의미있는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성경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식으로 얘기해야 기사다운 글이되겠죠.

바두기 2008-05-23 17:51:38
이단에 빠지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목사님 설교만 듣고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이거나 읽어도 목사님이 시키는 부분만 읽는 사람들입니다.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에 속는다고 했습니다. 이단이 아닌 목사라도 자기의 이익만을 위한 설교를 할 때가 있습니다. 김홍도, 조용기 목사를 보세요. 또 그들의 비성경적인(?) 삶을 지지하는 수많은 성도들을 보세요. 우린 세상 모든 것을 성경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바두기 2008-05-23 17:35:47
건강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이 글은 목사님의 설교에만 의존하고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같은 목사님의 설교도 평소에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더욱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절대 목사의 설교를 믿지 말라는 뜻의 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reader"라는 분의 답글에 대한 저의 반론입니다.

reader 2008-05-21 21:34:48
결국 설교에 의지하지 말고 성경에 의지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는 주장인데,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객관적인 근거에 기인한 것이며,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그가 주장하는 설교자는 과연 어느정도의 범위를 포괄한 것이며, 개인의 성경이해의 정도는 어느수준을 말하는 것인가? 이런 류의 글이야말로 무책임한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올바른 설교의 방향과 건전한 성경 이해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reader 2008-05-21 21:25:34
대표적인 기자가 쓴 글인데, 그것이 뉴스보도인지, 아니면 시사논평인지, 칼럼인지 분별할 수 없다. 이 글을 읽고난 소감은 꼭 개인의 신변잡기같은 느낌을 준다. 적어도 기자가 쓴 글이라면, 사실에 입각한 내용과 객관성과 논리를 담보해야 한다. 그런데 본인의 네비게이션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문득 그것을 설교에 연관시킨다. 그리고 성경은 지도에 비교하는 기발함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