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동조 했던 개신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공동정범'
암묵적 동조 했던 개신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공동정범'
  • 지유석
  • 승인 2018.01.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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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삿된 권력과 한 패였던 개신교, 기록으로 남겨야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지난 2011년 3월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3회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의 요청에 따라 참석자들과 함께 합심기도를 했다. ⓒ 출처 = 국가조찬기도회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향후 거취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 전 대통령은 17일 성명을 발표하고 자신을 향한 수사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보수 결집을 노렸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노림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한때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종쳤다'는 격한 표현을 써가며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여론도 이 전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현 시국을 보면서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대형교회를 주축으로 한 보수 개신교계가 그를 전폭 지지했고, 당선 이후에도 우호적이었던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유착이 비단 목회자들 수준에서 이뤄진 건 아니다. 일반 성도들 역시 이명박 전 정권을 측면 지원했다고 본다. 아래에 두 장면을 적어 본다.

장면 1.

이명박 전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1년 선배의 초대로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이 전 대통령이 화제로 올랐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이명박 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기독교 편향 정책을 펼쳤고 이 와중에 타종단, 특히 불교계를 자극하는 조치를 자주 취했었다. 2월 발표된 새 정부 인사에서 이 전 대통령이 장로로 있던 소망교회 인사들이 중용된 반면 불교 인사는 배제됐다. 취임 직후인 3월엔 '기독교 도시화' 계획을 추진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을 중앙공무원연수원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 전 정권의 개신교 편향 정책은 계속됐고, 이에 불교계는 8월 서울광장에서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열었다.

이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배는 뜻밖의 말을 했다. '개신교 장로가 대통령에 올랐으니 당연한 일'이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이참에 불교를 싹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선배는 진보 성향의 장로교단에 속한 교회에 다니고 있었으며, 이전부터 올곧은 성격으로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그랬으니 난 이 선배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장면 2.

지난 2009년 7월 온라인 개신교 동아리 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이 시기 난 동아리 회원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당시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겪었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4대강 사업 등으로 논란이 들끓었었다. 난 동아리 게시판에 이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자주 올렸다. 울분을 이기지 못한 이유도 있었지만,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동아리 회원들의 각성을 촉구하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그러나 동아리 회원들은 이런 날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한 번은 신학교에 다니던 후배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명박 장로의 권세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미리암에게 내린 것과 같은 저주를 내릴 것'이라고 적었다. 참고로 미리암의 저주란 구약성서 <민수기> 12장에 나오는 기록이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로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하자 미리암이 모세를 강하게 비판했고, 이러자 여호와가 미리암에게 한센병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이 미리암의 저주는 목사들을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도들을 향해 즐겨 인용하는 고사이기도 하다.

이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작심하고, '만약 내가 터무니없이 이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그런 형벌은 달게 받겠노라'고 받아쳤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프 모임이 있었다. 이때 한 동아리원이 작심한 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보수 교단 신학교 출신인 이 동아리원은 내게 드러내놓고 '신앙관이 잘못됐다', '성경을 더 공부해서 바른 신앙관을 가지라'고 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되묻자 "기독교인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잘못이다. 설혹 대통령이 잘못을 했더라도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게 기독교인으로서의 도리다"고 답했다.

목회자들은 장로 대통령 찬양, 성도들은 비리에 침묵 

이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하나하나 드러나는 지금, 위에 적은 두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나만 지닌 오로지 개인적인 기억만을 근거로 모든 기독교(개신교)인들이 이 전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 전 대통령 집권 기간에도 그의 잘못을 지적하며 거리로 나선 개신교 목사와 성도도 많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았고, 성도들은 그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할 수는 있다. 다시 말하면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이 전 대통령을 찬양하기 바빴고, 신도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장로 대통령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계율에 충실했다는 의미다.

난 이 전 대통령이 거리낌 없이 국가권력을 이용해 제 잇속을 챙길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개신교계의 암묵적인 찬동과 기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아우르는 그리스도교는 삿된 권력과 절대 어울릴 수 없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당대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들을 향해 거침없는 어조로 질타를 가했다.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 당대의 종교권력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수위 높은 욕설로 비판을 가했다.

성서 기록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치욕적인 역사를 더 하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은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라고 생각한다. 이 암흑기에 개신교는 삿된 권력과 한 패거리였다.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행한 일이다.

이런 불행한 역사를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불행했고 부끄러웠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될 여지가 줄어든다. 그리스도교인으로서 그저 역사와 국민 앞에 죄인 된 마음일 뿐이다. 

끝으로 꼭 한 줄 적고 싶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명박 장로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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