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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갖춘 스승 만나면,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나요"[이한기의 뷰] 세계 지성들과 만났던 인터뷰어 안희경의 '키워드'

"세계의 석학들은 생존 가능한 사회, 억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답을 한국인이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성취해온대로 또다시 다수의 삶을 지켜낼 변화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창을 열어 밖을 바라보려고, 더 멀리 보려고 안경알만 닦아왔던 내게 석학들이 꺼내준 것은 거울이었다. 내 안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결국 답은 내 안에 있었다."|<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오마이북, 2013)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관념,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습관이 된 희망 속에서 더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성장의 동력으로 격려받았다...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의 숫자가 높아진 동시에 빈부의 차이가 커지면서 우울한 국민도 함께 늘어나는 이 진행 방향을 성장과 발전이라고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문명, 그 길을 묻다>(이야기가있는집, 2015)


"'다수의 약자들은 왜 강자를 위한 선택을 할까?'라는 물음을 떨칠 수 없었다. 답은 '내 마음을 흔드는 힘의 실체를 살피지 못해서가 아닐까'로 모아졌다... '나'의 삶이 가능한 조건을 보다 깊이 살핀다면 '나'는 세상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보살핌을 받는 존재라는 자각도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나'의 안녕을 위해 지구 전체가 안녕해야 한다는 각성은 공존의 미래를 건설하는 진전이리라. 이성의 동물이라는 우리가 그 이성을 하루에 몇 분이나 써가며 사는지 점검해보고 싶었다."|<사피엔스의 마음>(위즈덤하우스, 2017)


꾸준히 세계 지성들과 만나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오마이뉴스>와 <경향신문> 등 미디어를 통해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건넸다. 못다한 이야기는 인터뷰어의 시각이 담긴 글로 다듬어, 호흡 긴 독자들을 위해 단행본 책으로 펴냈다. 이처럼 혜안을 갖춘 지성과 눈 밝은 독자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이가 있다. 재미작가이자 전문 인터뷰어 안희경씨다. 

세계 지성들과의 대화로 엮은 '문명 3부작'

안희경 작가. ⓒ Adam Singsinthemountain


지난 2013년부터 2년 주기로 펴낸 세계 지성들과의 인터뷰 책은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등 3권. 안희경은 이를 '문명 3부작'이라고 부른다. 이와 별도로 지난해 12월에 펴낸 <어크로스 페미니즘>(글항아리)은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주제별 대화를 담았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SBS와 불교방송(BBS) 리포터로 활동했던 안희경은 8년 동안 불교방송 PD로 일했다. 1998년과 2000년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을 받으며 잘나갔던 그는 지난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번역 일과 본격적인 취재 활동에 나선 건 지난 2009년부터다. 큰 범주에서는 언론 활동이지만, 팀 플레이를 했던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단독 플레이어로 뛴 셈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안희경은 한 해에 두 번 정도 한국을 방문한다. 지난해에도 12월 초에 들어왔다 올해 1월 초에 돌아갔다. 그 기간 동안 <사피엔스의 마음>과 <어크로스 페미니즘> 등 새책을 주제로 서울과 대구 등에서 독자들과 '북 토크'를 가졌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작가 안희경을 만났다. 독자들에게 에너지를 주기 위해 본인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탓일까? "이번엔 약간 번아웃(burnout)된 상태에서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자주 쓰는 키워드가 있다. 그 키워드를 좇다보면, 그 사람의 관심사와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나와 우리, 약자와 사회, 개인과 망(網), 문명과 미래, 왜(Why)... 안희경의 글과 말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다. 

기자가 생각하기엔, '안희경의 키워드'에 등장하는 '나'는 객체이자 주체다. '우리'는 뜻을 함께 하는 공동체이자 사회다. '약자'는 말 그대로 공동체 안의 마이너리티다. '망(網)'은 네트워크로 직역하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를 담고 있다. 점선일 수도 있고, 실선일 수도 있지만, 눈에 띄거나 손에 잡히는 개념은 아니다. '문명'과 '미래'는 성찰이자 지향이다. 그 모든 것에는 '왜?'라는 꼬리표가 달린다. 그리고 그 말과 글은 마치 망과 같은 '생각 기차'로 연결된다. '조합'이 아닌 '결합'의 형태다. 그 안에서 사유가 똬리를 튼다.

"지혜를 갖춘 스승을 만나면, 머릿속에서 지진이 나요"

노암 촘스키와 인터뷰하는 안희경 작가. ⓒ 김아람


"저도 미국에선 마이너리티에요. 한국에 사는 동남아 사람들을 보면 자매같은 느낌을 받아요. 나도 미국에서는 이방인이자 여성이고 사회적인 약자이니까요. (미국 생활) 처음에는 미소를 많이 지었어요. 약자는 미소를 많이 머금게 돼요. 아이들이나 강아지도 귀여운 얼굴이 우성이듯. 오래 살다보니 지금은 (그런 강박에서) 조금 벗어났어요. 남들이 그렇게 보거나 말거나 (신경을 덜 쓰게 됐지요.)"


안희경의 키워드에 등장하는 '약자(마이너리티)'는 탐구 대상일뿐만이 아니라 본인의 처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조건의 다름에 따라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소중한 공동체의 일원이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책을 읽다가 '머리 속에서 팝콘이 터지듯'이라는 표현을 봤어요. 맞아요. 지혜를 갖춘 스승들에게 만남을 청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팝콘이 터지듯 머릿속에서 지진이 나요. 이 분들을 섭외해서 만나는 게 중요하지만, 만나서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가 더 어렵고 중요해요. (누구나 물어봐서) 이미 답변했던 이야기를 나누려면 뭐하러 찾아가겠어요. 현장과 밀착된 이야기, 내 질문을 던져야지요. 내가 느끼는 아픔이 무엇인지, 막막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내 것으로 꽉 차서 가지 않으면 그 분들에게 지혜를 얻기가 어렵죠."

안희경의 '인터뷰 로드'는 고단한 여정이다. 지난 2014년 <경향신문>에 '문명, 그 길을 묻다'를 연재할 때 재레드 다이아몬드, 노암 촘스키, 지그문트 바우만, 장 지글러, 원톄쥔, A.T. 아리야라트네 등 시대의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는 길을 나섰다. 같은 이름의 책 서문에서 안희경은 20만리가 넘는 그 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과 부산의 겨울에서 영국 리즈의 겨울로, 다시 파리의 겨울을 거쳐 혹한의 폭설주의보가 내린 보스턴의 겨울까지 옷깃 여미며 가슴 데우는 시간을 가졌다. 봄, 2월부터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캘리포니아 꽃의 향연을 4월 대륙의 동쪽 끝 뉴저지에서 망울 터지는 벚꽃으로 다시 맞았다. 남부 캘리포니아, 서울, 타이베이, 일본 시나노 오오마치의 여름에서 뉴헤이븐 예일대 고즈넉한 가을의 문턱까지, 그렇게 사계절 내내 마음을 품으며 순례했다."

"아, 대화의 또다른 심도는 쉼표에 있구나"

▲ 마루야마 겐지. ⓒ 안선영


궁금했다. 얼굴 한 번 마주 보기조차 힘든 지성들을 어떻게 만나서 속내를 끄집어냈을까. 그 비결은 무엇일까? 결론은 '공짜 점심이나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공을 들였는데도 인연이 안돼 못 만난 이들도 있고, 대부분 만남을 청한 뒤 최소 수개 월이 지나야 만날 수 있었다. 한 가지 명확한 건, '역지사지' 해서 그들이 지금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를 심도깊게 고민하는 정지작업이 중요하다는 것. 그런 뒤 온 힘을 다해 '내가 왜 당신을 만나야 하는지, 만나려고 하는지'를 편지(이메일)로 띄웠다.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등 다수의 책이 소개돼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 그는 독설(직설)과 은둔의 작가로 불린다. 안희경은 마루야마 겐지를 만날 때도 출판사를 통해 그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집단의식을 드러내보고 싶다"고. 마루야마 겐지는 일관되게 국가라는 허상과 허울 속에서 잠든 개인의 이성을 흔들어 깨우는 일을 해왔기에,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만나지 못하면 인터뷰는 성립되지 않는다. 핵심을 꿰고, 마음을 담은 제안이 아니면 움직이기 어렵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도 역설적으로, 부처를 만나야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안희경이 세계 곳곳을 다니며 지성들과 '면대면 인터뷰'를 추구하는 까닭은, 그들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눈을 마주치고 호흡을 살피는 것도 인터뷰의 중요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분과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쉬움이 많았단다. 그건 네이티브가 아니라서 갖는 언어의 한계만은 아니다. 오히려 교감의 제약 탓이 더 컷다.

지성들과 '면대면 인터뷰'를 하면서 안희경은 '쉼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인터뷰를 할 때 질문이 매끄러운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은 예전보다 영어가 늘어 질문도 길어졌지만, 처음에는 머리 속에서 번역기가 작동하니까 '포즈(pause)'가 발생해 오래 걸리는 거예요. 예전에 한국에서 방송할 때는 매끄러웠는데. 그래서 고민을 했죠. 내가 호응을 잘 하면 저 분의 답변 내용이 더 깊어질까? 그런데, '포즈' 때문에 질문이 매끄럽게 쑥 들어가지 못하니까 오히려 상대(인터뷰이)가 더 깊게 내려가더라구요. 아, 대화의 또다른 심도는 '포즈'구나. 침묵이 끌고가는 심도가 있구나. 이걸 배운 거죠." 

반전이 숨어 있었던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인터뷰

지그문트 바우만과 인터뷰하는 안희경 작가. ⓒ 안선영


다른 일도 그러하듯 인터뷰도 종종 뜻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가벼운 답변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인데, 예상 외로 답변이 길어질 때도 있다. 더 난처한 건,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렵사리 잡은, 분초를 다투는 지성들과의 인터뷰 때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상황은 노력한다고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애초 예상했던 상황과 다르게 진행됐던 인터뷰에 대해 물었다. 안희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영국 리즈에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을 만났을 때 그랬어요.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학자에게 사랑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어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5분쯤 지나자, 한 여성 분이 들어왔어요. 그러더니 바우만이 '진짜 사랑 얘기는 이 사람이 전문가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난감했어요. 바우만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 건데, (인터뷰를) 망친 거잖아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분도 사회학에서 이름난 석학이었어요. 폴란드 초대 대통령의 딸인 알렉산드라 야신스카 카니아는 바우만의 부인이었어요. 알렉산드라에게서 사랑의 객체와 주체의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뜻 깊은 이야기였고, 완전 반전이었죠. (지성들과 인터뷰를 계속하다보니) 예상했던 인터뷰 각이 종종 틀어진다는 걸 알게 됐죠. 그 분들과 인터뷰를 할 때는 (질문을 다 못한다고 해도) 고민해간 키워드 서너 개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지난 2017년 1월 9일 바우만은 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고작 두 번의 만남을 가졌을 뿐이지만, 매번 내 무지의 더께를 쪼개어 세상을 한 뼘 더 깊숙이 들어가 통찰하도록 해줬던" 바우만의 별세 소식을 듣고 안희경은 무릎이 꺾였다. 그리고 바우만이 전해주려고 했던 사랑의 진실을 떠올렸다. 바우만, 촘스키, 반다나 시바 등 우리시대 사상의 거장들은 "처음부터 바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라고 안희경은 말한다. 그러나 바우만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심연으로 사라졌다.

"아, 목숨 값을 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재미작가 안희경. ⓒ Corky Lee


"밥상의 사회주의화요."

앞으로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는 무엇이냐는 물음에 안희경은 이렇게 답했다. 기회가 되면 '유기농 투어'를 하고 싶단다. 왜? "가장 중요한 복지는 누구에게나 양질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사슴이나 코요테도 스스로 자기 먹을 것을 찾는데, 자본의 질서 아래서 인간은 돈을 벌어야 먹고 살기 때문에 정작 스스로 먹고 사는 방식을 잃어버렸다는 거다. '문명 3부작'의 후반부에 마음을 좇다보니, 진짜 중요한 게 몸이라는 걸 깨달았단다. 자본주의의 질주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흙에서 찾아보겠다는 안희경은 요즘 '자립'이라는 키워드에 골몰하고 있다.

안희경의 이런 고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든 게 아니다. 몇 해 전, 안희경이 '365일 우주로 향해 열린 키친'이라고 불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걸치 선원(Green Gulch Palm Zen Center)'에 갔을 때였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그 곳에서 모종을 심어놓은 모판을 봤다. 모판에 붙여놓은 테이프에 수많은 벌레들이 달아붙은 채 죽어 있었다. 그걸 보고 깨달았다.

"내가 먹고 사는 것에는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연결돼 있구나. 아, 목숨 값을 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마지막으로 물었다. '안희경에게 글쓰기는 무엇이냐'고? 잠시 머뭇거리다 답이 돌아왔다. 

"쥐뿔도 못 쓰는데 무서워요. 그래서 나를 다독여요. '글은 지웠다가 다시 쓰고 고치면 되잖아'. 고치고 고쳐서 쓴 글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고치고 바꿀 수 있다면... 내 아이가 웃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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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기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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