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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반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 이번에는 정말 다를까?
워싱턴포스트 애나 파이필드(Anna Fifield) 도쿄 지국장이 쓴 칼럼입니다.

전쟁을 잠시 멈춘 지 65년 째. 전쟁은 끝난 적이 없기에 남북은 계속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고, 이따금씩 국지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겪어 온 한반도 사람들에게 지난 금요일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평화를 약속하는 모습은 정말 꿈만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 묻게 된다. 이번에는 정말로 진짜 평화가 찾아올까?

한국의 신문들은 물론 놀랍게도 북한 매체들까지 온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에 관한 소식으로 도배됐다. 두 정상이 만난 장소는 분단의 애환이 서린 판문점이었다.

서울신문이 이튿날 아침신문에 “전쟁 없는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이라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속보에 특화되지 않은 조선노동당 기관지 북한 로동신문마저 이튿날 곧바로 정상회담 소식을 평양 시민들에게 상세히 알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로동신문은 네 면에 걸쳐 정상회담 소식을 전했다. 관련 사진은 모두 컬러로 인쇄해 실었다.

“민족의 화해단합과 평화번영의 새시대를 열어놓은 력사적인 만남”이라는 제목을 1면에 달았다.

조선중앙TV도 가장 권위 있는 방송원(아나운서) 리춘희를 불러내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에 관한 소식을 30분 동안 상세히 보도했다. 리춘희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를 말하기도 했다. 북한 매체가 실시간으로 이 소식을 보도한 것은 북한 사람들에게 이번 정상회담과 평화 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강력한 의지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북한을 향해 항상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 온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번에는 어쩌면, 정말 어쩌면이지만 다를 수도 있다는 메시지다.

사실 남북한이 손을 맞잡고 평화를 약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전에도 평화와 비핵화를 약속했었다.

1992년 남북한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1994년에는 미국에 같은 약속을 했었고, 2005년에는 6자회담 참가국이 함께 관리하는 비핵화 로드맵이 타결되기도 했다. 이어 2012년에도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논의에 어느 정도 진전을 보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약속은 단 한 번도 끝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과거를 생각하면 이번에는 혹시 다를까 하는 기대보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북한은 이번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또한, 세계에서 유일한 사회주의 세습 국가 북한의 3대손인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정권과 자신의 권력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볼 여지도 상당히 많다. 이번 만큼은 회의론을 잠시 접어두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버지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무척 다른 유형의 지도자다. 외향적인 성격에 과거 기준으로 보면 파격적인 행동도 개의치 않는 인물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쏘거나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을 때 예정에 없던 ‘월경(越境)’을 제안한 데서 이런 김 위원장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한을 “대한민국” 또는 “한국”이라 부르거나 북한을 조선이라는 공식 명칭 대신 한국에서 부르는 대로 “북한”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원래 한국을 남조선 괴뢰 정권으로 부르며 인정하지 않던 공식적인 관행에 비춰봤을 때 이 또한 파격이자, 남측과 전 세계를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북한의 도로나 철도 사정이 좋지 않고 한국의 인프라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도 했으며, 탈북자들이 있다는 점이나 연평도 포격 등 최근 군사적 마찰로 인해 한국인들이 희생된 데 유감을 표하는 등 예전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시선을 남쪽으로 돌려보면, 취임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도 지지율이 좀처럼 70% 아래로 내려올 생각을 않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현 정권의 의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전략적 인내를 기본 방침으로 삼고 조심스레 접근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면 미국이 가장 위험한 적대국가 가운데 하나인 북한 정상과 그렇게 성급히 정상회담을 결정하는 결단을 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가 알다시피 “전략적 인내”라는 말과 절대 어울리지 않는 충동적인 성향의 지도자다. 이런 스타일이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그대로 반영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당장 이루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북한 핵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동결하는 데 합의만 하더라도 지난해 모두가 걱정하던 강대 강 대결 구도를 떠올리면 대단한 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인이 적지 않지만, 이런 여러 정황과 여건은 냉소적인 시선마저 일부 누그러뜨리는 듯한 모습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만찬 메뉴로 평양냉면을 특별히 공수해 온 덕분에 한국 전역의 평양냉면집은 정상회담 당일과 이어진 주말 내내 문전성시를 이뤘다. 어디를 가나 온통 대화 주제는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TV 스크린이 있는 공공장소에서는 물론이고, 사람들은 각자 스마트폰으로도 관련 뉴스를 보고 또 보는 듯했다. 아직 군 복무를 마치지 않았다는 젊은이는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데 남과 북이 합의하게 되면 현행 징병제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딱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한 20대 청년은 애초에 정상회담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막상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평화나 종전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감동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지나치게 모호한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며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거리로 나선 보수단체 회원들은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했고, 보수 정치인들도 성과를 깎아내렸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만 하고 왔다”며, “위장 평화 쇼”에 불과한 회담이었다고 정상회담을 맹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한다고 수차례 밝히기도 한 평화 체제가 정말로 정착되는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는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사실 한반도 분단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대단히 비정상적이었다. 미군의 두 차례 원자폭탄 투하 이후 일본 제국주의가 ‘무조건 항복’할 날이 머지 않아 보이던 1945년 여름 어느 날, 미군 소속 젊은 대령 두 명은 한반도를 분할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낸다. 이들은 동아시아 지도를 펼쳐 놓고는 위도 38도선을 따라 (천 년 넘게 단일 국가였던) 한국을 분할해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해방의 혼란이 수습될 때까지 관리하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둘 중 한 명은 훗날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딘 러스크였다.

임시로, 잠깐 나누어 통치할 것이라던 말은 이어 1950년부터 3년 넘게 계속된 한국전쟁과 함께 없던 말이 되었다. 남과 북은 이어 반세기 넘도록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를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했다. 1953년 7월 휴전 협정(armistice)에 서명한 당사자는 중국의 지원을 업은 북한과 미국이 주도하는 UN이었다. 협정문에는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을 명시했다. 하지만 전쟁을 끝낸다는 표현은 없었고, 이어진 65년 동안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반 세기 넘는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가 계속된 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했다. 우상 숭배와 정치범 수용소는 전체주의 정권을 지탱하는 상징으로 남았다. 수십 년간 권위주의 독재자가 통치한 한국의 상황도 암울했지만, 마침내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 국민은 지난해 평화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을 탄핵하며 성숙한 민주주의의 본보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분단 세월이 7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남과 북은 닮은 구석이 많다. 필자는 취재차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는데, 그 때마다 남북의 문화에서 닮은 점을 발견했고, 북한 사람들도 똑같은 한국인이라는 점을 절감하곤 했다. 남들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점이나 농담을 할 때 웃음이 터지는 지점 등 미묘한 부분에서 남북한 사람들은 특히 비슷하다. 또 자식 세대가 어쨌든 자기보다 더 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적극적으로 상기시키려 했던 부분도 바로 이렇게 두 개의 한국이 실은 닮았다는 점이었다. 김 위원장은 언어도, 역사도, 문화도 모두 같다는 말을 했다. 한미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고 민족의 이름으로 단합을 호소하는 북한의 오랜 전략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같은 민족이니 닮은 구석이 이렇게나 많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핵무기와 미사일 발사, 서로를 없애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설전 등 군사적 긴장만 자꾸 부각된 탓에 분단이 빚은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인 이산가족 문제는 종종 잊혀지곤 한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다. 최소한 65년 동안 혈육의 생사도 모른 채 지내 온 이산가족 수백만 명이 아직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다를지도 모른다.

(워싱턴포스트, Anna Fifield)

Anna Fifield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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