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사단의 궤계로 생겨난 거짓인가요?
진화론은 사단의 궤계로 생겨난 거짓인가요?
  • 권영석 목사
  • 승인 2018.10.18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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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진화론은 사단의 궤계로 생겨난 거짓말로 보아야 하나요, 아니면 과학적인 진리로 보아야 하나요?

A. "진화"란 말 자체가 시사하듯이, 우주만물이 점진적이고도 점증적인 변화 과정을 거쳐서 생겨났다고 보는 견해를 진화론이라 하겠습니다. 이 이론은 다윈이 화석 등을 통해 관찰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내린 [새로운] 가설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관찰하고 발견한 사실들은 생물들이 오랜 세월 점진적인 변화 과정을 거쳐서 오늘의 [진보된]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을 일관성 있게 증거한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역시도 자신이 지금껏 배우고 믿어왔던 프레임, 곧 하나님의 창조와 그분의 창조 방식에 대한 선 이해로 인해 적지 않은 의구심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발견과 새로운 통찰이 성경의 창조 기사가 우리에게 각인시켜 놓은 기존의 프레임에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창조주 하나님이 [특히]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을 "친히" 창조하셨다고 믿어 왔는데,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는 '반골적인' [새로운] 프레임을 돌발적으로 생각하기란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적인 신앙은 현대 과학이 발달하기 훨씬 이전에 형성된 것인 만큼, 세월의 길이로만 보면 과학의 역사는 [아직은] 아주 짧다(진화론의 역사는 불과 150년 남짓)고 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과학과 신앙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실은 불경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지성에 기반한 발견이나 진리를 정면으로 거스르거나 부정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강요하신다면, 이런 하나님은 그야말로 '비과학적인'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며, 일관성 있는 증거를 무시하면서까지 믿음을 고집하는 신앙은 [더 강한] 신앙심의 발로이기보다 '반지성적' 교조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자가당착적인 하나님, 곧 인간적이지도 또 하나님적이지도 않은 모순적인 하나님 상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에게 친히 지성을 부여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문제는, 과연 다윈이 전제하고 있었던 그리고 지금 우리도 동일하게 전제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창조' 개념/사상이 얼마나 성경의 계시에 부합한 것이며,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의 '창조' 사상이, 다윈이 전제하고 믿어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이 진화(=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 우리가 보는 이런 모습을 띠게 된 것이 결코 아니며,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접하는 만물 그대로를 직접 창조하신 것이라고 하는 "반-진화" 방식을 그 핵심 내용으로 포함한다고 하면, 우리 역시도 다윈처럼 양당 간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오류(적어도 이 부분에 관한 한)라고 하던지, 아니면 현대 과학이 오류라고 하던지 말입니다.

작금의 "유신진화론" 대 "창조과학"의 논쟁이 비록 서로 대립되는 주장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 그러나 그 핵심은 결코 진화냐 창조냐 하는 해묵은 문제가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을 먼저 주지하여야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창조를 의심하자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방식이 과연 어떠했느냐 하는 '지엽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엽적'이라고 과소평가하기엔 아직은 통합의 기미가, 특히 한국 교계에서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 단계라 하겠습니다만.] 즉, 성경의 하나님은 무엇보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신데, 창조 과정에서 그분이 점진적인 진화의 방식을 사용하셨던 것인지(심지어 지금도 계속 창조의 작업을 계속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지금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인지(이 경우에도 현재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시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섭리]라 할 수 있겠으나), 혹은 아니면 이 두 방식을 혼용하셨던 것인지, 어느 쪽을 가정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은 상당 부분 달라질 것입니다. 예컨대, 만일 하나님이 [먼저] 계셨으며,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인데, 다만 진화(= 점진적인 변화)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하신 것으로 이해한다면 "[유신]진화론"은 얼마든지 창조의 하나님과 통합적으로 이해해 볼 여지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그 창조의 과정에서 진화의 방법론을 결코 사용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점진적인 진화의 과정을 창조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이는 진화론(유신진화론을 포함해서)은 마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불경 내지 신성모독으로 비쳐질 것이며, 따라서 어떻게든 배척하고 대적해야만 할 사탄적인 가설로 대두될 것입니다.

이처럼 창조와 진화를 대비 내지 적대되는 개념으로 보려는 작금의 논쟁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창조의 주체와 창조의 방법을 혼동함으로 우리를 더욱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이 모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체임을 믿고 인정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 유신론과 무신론의 차이를 야기하는 문제라면, 하나님이 창조 시에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는 진화적 창조냐 아니면 비진화적 창조냐 하는 차이에 불과한 [사소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유신론자들 가운데 그 하나님께서 진화라고 하는 방법론을 사용하셔서 창조하신 것으로 보든지(유신론적 진화론, 정확히는 진화-유신론), 아니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고 [직접] 창조하셨다고 보든지(유신론적 비 진화론, 정확히는 비진화-유신론)에 따라 두 가지의 조합이 생겨날 수 있으며, 반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는 무신론자들 가운데서도, 진화의 과정으로 만물이 생겨났다고 보든지(무신론적 진화론), 아니면 비진화의 과정으로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보는지(무신론적 비진화론)에 따라 역시 두 가지의 조합이 가능할 것입니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이런 4가지 조합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창조과학회"에서 말하는 '창조과학'이란, 이렇게 보자면, 다분히 창조와 과학을 통합하려는 쌈박한 명칭으로 들리지만, 실제는 위의 4가지 조합 가운데서 유신론적 비진화론, 곧 비진화적 유신론이란 한 가지 흐름을 대변하면서 마치 창조의 하나님을 홀로 옹호하는 것처럼(의도적지는 않았다 해도) 비쳐왔다 하겠습니다. [이 점에서 '창조과학'이란 명칭은 이미 사실을 호도 내지 왜곡할 소지를 배태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게다가 창조과학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은 과학이란 명칭을 쓰면서도, 실상은 '젊은 지구론'처럼 천문학이나 생물학계의 과학적인 발견을 통해서 나온 보편적인 사실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생뚱맞은 주장을 고집하고 있어서, 성경의 하나님이 마치 반지성적이고 막무가내 식 믿음을 강요하는 고집스런 하나님으로 비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윈이 진화[가]설을 처음으로 발표했을 때 당시 영국 사회는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하는 가설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의 유일성/독특성을 폄훼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아마 다윈 자신도 역시 엄청난 번민의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충격과 번민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애초에 형성한 프레임 때문에 야기한 것이지 굳이 없어도 되었던 불필요한 것이었다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방식에 대해 극단적이고 교조적인 프레임을 이미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신앙의 차원(유신 대 무신)과 창조 시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식 곧 창조 방식의 차원(진화 대 비진화)을 뒤섞으려 들지 않았더라면 창조와 진화는 처음부터 불필요한 적대관계가 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주체와 방법론은 결코 동일선 상에 놓을 수 있는 대상/차원이 아니며, 더구나 이 둘을 함께 뒤섞어서 주체가 방법론을 대변하게 하든지 아니면 방법론이 주체를 대변하게 만든다면 이는 명백한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이제 애초에 제기했던 질문으로 되돌아 가 봅시다. 과연 성경의 하나님, 만물의 창조주이신 우리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진화적이 아니라 비진화적으로 만드셨던 것일까요? 그렇기에 진화를 주장하는 것은 무조건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진화는 당근 금기일 수밖에 없는 건가요? 그래서 창조론과 진화론은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요? 따라서 유신론과 진화론의 생뚱맞은 결합(유신진화 또는 진화적 유신) 같은 설명은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그래서 원숭이에게나 주어 버려야 할 [사탄의 ]궤변에 불과한 것일까요?

잠정적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오랜 세월 성경은 천동설을 가르친다고 믿어오던 교회가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대한 가설로 인해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것에 비견하여 결코 덜하다고 할 수 없는 유신진화론(말하자면, 진화창조론)을 둘러싼 논쟁 역시도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결국은 현대 과학의 발견에 근거한 진리를 인정하고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가 '비진화'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특정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는 사상을 명확하게 뒷받침해 주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성경 계시가 명확히 천동설을 증거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과 매한가지로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가 비진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명확히 증거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작용하는 논리적인 정당성으로 무엇보다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성경의 독해 방식의 문제입니다. 성경[의 계시]은 과학 교과서처럼 읽어서는 안 되며 더더구나 Proof Text로 읽어서는 안 되는 책(= biblia)이라 하겠습니다. 창세기 초입의 창조 기사가 일종의 서론 격으로서 성경 전체의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오래된 기록/문서의 성격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마치 과학 교과서 읽듯이 읽는다면 도리어 그 계시가 본래 의도하지도 않은 불필요한 논쟁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동설을 반대하고 지동설을 따른다는 이유로 무고하게 화형당해야 했던 당대의 '과학자'들에게 교회는 사실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한 것이며 그것도 신앙의 이름으로 그리하였으니, 오늘날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일부 과학자들이 교회나 기독교 신앙을 혐오하게 된 것도 우리 기독교[인]의 책임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을 중세 교회[시대]보다도 훨씬 더 과학적인 눈으로 읽으려 드는 현대인들에게 '유신진화'라는 프레임은 명백히 창세기의 서사 나아가서 성경 전체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명백히 드러난 과학적인 증거까지도 거부해 가면서 성경의 독해 방식을 고집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시 코페르니쿠스 시대의 웃지 못 할 과오를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는 진화론이 무서움과 두려움을 동반한 '적그리스도적'인 대안-관점으로 대두되어서 부모-자녀 간의 불필요한 불화를 야기하고, 나아가서 [창조]신앙이냐 [불신]과학이냐 하는 양단 간의 선택을 강요받는 웃픈 현실은 하루라도 더 서둘러 종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이어지지 않는 논리/증거의 고리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을 '통 크게' 믿고 기다리는 자세로 우주 만물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고, 그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더욱 높이고 찬양하면서 신학적인 통합성과 온전성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이성에 기반하여] 과학하려는 자세이자, 하나님을 신앙하려는 고상한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저주해야만 했던 교회의 '선한' 의도를 의심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무지와 편견을 답습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한 마디로 진화론 자체는 창조론에 대한 반대 개념이 될 수조차 없음에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신앙의 자세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신론적] 진화론을 들먹이게 된 것이 문제였다고 하겠습니다. 목욕물 버리기 위해 아기까지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닌 만큼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되 진화라는 방식을 통해 창조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유신 진화적 가설 자체를 사탄의 궤계로 낙인찍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물론이거니와, 무지와 편견의 한계에 갇혀서 불가불 지동설을 신성모독으로 정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 역시도 이런 매카시즘의 반복을 결코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동원하셨다고 해서 그분이 창조주의 지위와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

권영석 목사 / 전 학원복음화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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