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아, 사랑해. 요즘 어떻게 지내?
지선아, 사랑해. 요즘 어떻게 지내?
  • 박지호
  • 승인 2007.02.04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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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옅어지는 흉터, 짙어지는 하나님의 흔적

 

지선이가 말하는 지선이
 
저는 이지선입니다. 78년 5월 24일에 태어났습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두 번째 생일(2000년 7월 30일)을 갖게 된 이후로, 아픔도 많았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너무나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전에는 몰랐던 작은 행복들까지 누리며 기쁘게 살고 있답니다. 계속되는 수술로 성형 중독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면서 날마다 좋아지고 있어요. 이젠 양손잡이가 되었고, 혼자서도 운전을 하고 다닙니다. 요샌 좋아졌다는 말보다 ‘예뻐졌다’는 말이 더 듣기 좋답니다. 이때까지 과분하게 받아온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지선이가 궁금했다. 공부하러 보스턴으로 떠난 지 2년, 어떻게 지내는지. 한국에 방문했다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뉴욕에 들른 지선이를 만났다. 다행히(?) 항공사 직원의 실수로 비행기를 놓쳐 좀더 길게 지선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공항에서 나온 지선이는 비행기를 놓친 이유를 설명하며 식식댔다. “그 많은 얘기를 다 영어로 했어? 영어 잘하네” 하니까 “뭐 똑같은 말만 계속했죠” 하면서 씩 웃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고, 기다려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연신 생글생글 웃음을 흘린다. 그러면서 비행기에서 옆에 앉았던 어떤 목사님 얘기를 해준다.

▲  지선이가 비행기를 놓친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뉴스앤조이 박지호
“비행기에서 옆에 앉았던 분이 목사님이었는데, 앉자마자 성경책을 턱 꺼내시더니 계속 읽더라고요. 근데 좌석 탁자가 좀 기울어져서 불편했는지 승무원이 올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데 승무원은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고. 나중엔 기장이 나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더라고요. 비행기를 몰아야 할 기장이 비행기 조종 안 하고 삐뚤어진 탁자 때문에 사과하러 나오라면 비행기는 어쩌라는 건지. 호호호.”

지선이는 여전히 유쾌했다. 지선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건 2000년 7월이다. 한 음주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지선이가 타고 있던 차에 불이 나서 지선이는 전신 55%의 화상을 입고 의사들도 포기해버린 중상 환자가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났지만 무릎 위로 화상을 입어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양손의 손가락까지 절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선이는 ‘홀라당 탄 여자’, ‘화상둥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는 당당함과 유쾌함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후 치료만큼 재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선이는 2005년 9월, 보스턴대학교에서 재활상담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서 보스턴으로 떠났다. 오래전부터 찜했던 학교에, 그것도 장학금 받고 가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공부는 재밌니?” 하고 물었더니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는 듯 잠깐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음, 처음 1년 동안은 내가 여기 왜 왔나 싶었죠. 재미도 없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수업 시간마다 투명인간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 나오고 하니까 힘들었어요. 공부하러 간다고 하고 왔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호호호. 근데 1년 정도 지나니까 이제 조금씩 알겠어요. 이젠 재밌어요.”

재활상담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한국에서 건너와 재활상담가가 뭐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공부를 시작했던 지선이. 유학 생활 초기의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을 특유의 유쾌함으로 바꿔갔다.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이다.   

“머리에 쥐가 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체험했습니다. 소리는 들리는데, 알아듣지는 못하는 말들…. 그걸 눈치로라도 끼워 맞춰서 이해해보려니 혈액 부족으로 뇌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수업 시간 내내 도통 무슨 말인지…. 영어 단어들이 슝슝 날아다닙니다. 참 큰일입니다. 3시간 동안 이어지는 연기 수업. 알아듣는 척 연기는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재활상담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현재까지 지선이는 연극영화과 전공 모드로 수업에 임하고 있답니다. 하핫.”

요즘 지선이는 인턴 활동에 여념이 없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재활상담은 실제 경험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인턴 활동이 중요하다. 석사를 마친 후 재활상담가 자격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자격증을 가진 재활상담가 밑에서 지도를 받아야 한단다. 매사추세츠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재활상담 에이전시 중 한 곳에서 일하게 된 지선이는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는 상담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인턴 활동은 어떠냐”고 물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 상담하면서 아무것도 도울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할 때도 있지만 처음보다는 덜 두려워졌어요. 각기 저마다의 사연과 인생이 있는 클라이언트들의 얘기를 듣는 것도 너무 재밌고요. 인턴을 하고 있긴 한데 제가 상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절 상담해줘요.”

지난해 12월엔 한국의 환경재단에서 선정한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지선이가 포함되었다. 지선이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셨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소식”이라며 기뻐했다.

요즘 교회 청년부 소그룹 조장까지 맡아서 더 바빠졌다는 지선이. 공부하랴 일하랴 교회 후배들까지 챙기며 그렇게 부지런히 보스턴 땅을 누비고 있다. 말랑말랑한 새살이 올라오길 기도한다는 지선이의 영혼은 이미 예쁘고 건강한 새살이 늘 돋아나고 있었다.     

▲  절망의 순간에도 외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기뻐하는 지선이. ⓒ 사진제공 뉴욕밀알선교단
이전에 다니던 교회 청년부 후배였던 지선이. 9년 전에 처음 만났다. 정신없이 까불던 귀여운 후배들 중 한 명이었다. 유난히 밝고 유쾌했던 지선이의 첫인상은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한’ 아이다. 왜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하다. 일류 대학에 다니면서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으니까 그랬나? 사고 이후 지선이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빛은 어두울 때 진가를 발하는 법. 절망의 순간에도 외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기뻐하는 지선이의 건강함이 그 이유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했던 화상 자국은 옅어지고 지선이의 삶 속에 새겨지고 있는 하나님의 흔적은 더욱 뚜렷하고 아름다워진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선이의 힘인 듯싶다.

나는 아저씨로 변해가고 있는데 지선이는 수술을 거듭할수록 예뻐지고 있다. 10년 뒤엔 내가 처음 만났던 지선이가 되어 있는 거 아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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