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끊어진 거장의 바이올린 줄...객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툭' 끊어진 거장의 바이올린 줄...객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 문하연
  • 승인 2019.01.17 0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작은 아들은 피아노를 좋아했다. 7살부터 시작했다. 3, 4학년이 되자 아이는 피아노와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졌다. 학교 다녀오면 신발을 허공에 뿌리며 허겁지겁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다른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을 나이에 아들은 피아노에 빠져 그 좁은 의자에 누워 낮잠을 자고, 피아노 뚜껑 위에서 밥을 먹었다. 일단 필이 꽂히면 귀로 들리는 대로 막 치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유료 사이트에서 악보를 뽑았다. 밤이면 피아노를 칠 수 없으니 악보를 보며 마음으로 치느라 잠들 때까지 악보를 내려놓지 않았다.

 
6학년이 되자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했다. 걱정이 앞섰다. 전공을 고려한다면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남자 애가 피아노 쳐서 먹고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머뭇거리던 중 우연히 열린 방문 사이로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책상에 앉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틀어놓고 책상에 손을 올린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미친 듯이 연주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가볼 때까지 가보자.
 
가볼 때까지 가본 후 아들은 피아노에 대한 꿈을 접었다. 지금은 다른 꿈을 꾸는 중이다. 원래도 클래식을 좋아했던 나는 그 날 이후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깊어졌다. 재능만으로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 그 길고 긴 인내의 시간들을 깊이 이해하는 까닭이다.
 
음악도 감동도, 오롯이 다 느끼고 싶은 욕심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스틸컷ⓒ 영화사 진진

이차크 펄먼. 내가 가장 애정하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를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 <이자크의 행복한 바이올린>이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극장을 찾았다. 나는 이런 영화는 꼭 혼자 본다. 음악도 감동도 오롯이 다 느끼고 싶은 욕심이다.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테라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 옆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반한다. 그즈음 불행히도 그는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가 마비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발사였다. 그가 바이올린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부모는 음악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다. 때문에 아버지는 이발소 일을 계속 다닐 수 없게 되었고, 그를 가르치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아버지는 동네 이웃들의 빨래를 했다. 가난한 그가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그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다들 돌아섰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만 보았다."
 
이번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던 날, 여느 때와 같이 목발을 의지해 무대에 오른 그는 의자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갑자기 '툭'하고 바이올린 줄 하나가 끊어졌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순간 단원들도 관람객도 놀랐고 당황스런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지휘자에게 계속 연주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연주는 계속 되었고 그는 남은 세 개의 현으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곡이 끝나자 환호가 쏟아졌다. 지휘자도 단원들도 감동을 주체하지 못할 때 그가 좌중을 토닥이며 말했다.
 
"때로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일, 그것이 예술가가 하는 일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이야기는 단지 끊어진 현 한 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계단 올라설 때마다 그가 가진 장애 때문에 눈물을 삼켜야 했던, 그리고 그런 채로 주저앉지 않은 위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먼이 물었다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스틸컷ⓒ 영화사 진진

다큐 안에서 그가 묻는다. "어떤 연주는 좋은데 좋기만 하고 어떤 연주는 감동까지 주는가." 그의 질문에 나를 보았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가. 감히 감동까지 주는 글을 쓸 수나 있을까. 가슴 속에 있는 게 많을수록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그가 말한다. 나는 무엇을 가슴에 품고 있을까. 빨리 연주하는 게 좋은 테크닉은 아니라며 그 테크닉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생각하라고 한다. 나는 어떤 테크닉을 가졌으며 그 테크닉을 어떻게 써야 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는 많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원 플러스 원' 행사처럼, 영화에서 뜻밖의 반가운 연주자들도 만났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과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그리고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까지. 키신과 마이스키 그리고 펄만이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 장면도 신기했다. 이 자리에서 펄만이 '포춘 쿠키'를 깨며 소원을 말하는데 차이코프스키 곡은 빼자고 한다. 빵 터졌다. 아마도 셋이 차이코프스키 곡을 연주하나 보다. 세기의 거장도 어려운 곡이 있구나. 예전, 내가 아는 바이올리니스트도 연주회를 앞두고 내게 말했다. "나중에 저 세상 가서 쇼스타코비치를 만나면 꼭 한 소리 해야겠어요. 세상에, 이런 곡을 만들면 어떡하냐고. 손에 마비가 올 지경이라고."
 
현재 줄리어드 음대 바이올린 교수직을 맡고 있는 이차크 펄먼의 수상경력은 A4한 장을 다 쳐도 모자랄 판이다. 1964년 레번트릿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다음해에 카네기홀에 데뷔. 이 후 영화 음악까지 영역을 넓혀 영화 <쉰들러 리스트> 주제곡을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음악을 연주했으며, 그래미 15회 수상, 에미상 4회, 2016년 제네시스상을 수상하는 등 셀 수 없다.
 
50년이 넘도록 음악으로 교감하는 부부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스틸컷ⓒ 영화사 진진

백악관에 초청되어 연주하던 날 "어떤 소리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오바마 대통령의 질문에 "프라이팬 위에서 양파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가장 좋아 한다"고 답한다. 참으로 유머도 있다.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아내 '토비'도 인상적이다. 줄리어드 재학시절에 그의 연주를 듣고 사랑에 빠졌다는 그녀는 멋지게도 먼저 청혼을 했다. 너무 사랑해서 감출 수도, 감추고 싶지도 않았다. 50년이 넘도록 음악으로 교감하는 부부.

 
미용실에 간 그녀는 헤어 디자이너에게 '마릴린 먼로'처럼 예쁘게 해 달라고 한다. 남편이 연주 투어를 갔다가 3주 만에 집에 오는 날이라며. 나이 70을 훌쩍 넘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뜨겁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보는 일은 즐겁고 또 부럽다. 펄만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집에서 요리도 하고 토비의 심부름도 다니고 개 산책도 시키며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많은 것이 드러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주름진 얼굴에 자연스레 퍼지는 미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 연주할 때 보여지는 몰입감과 순수함. 그에게 빠져드는 이유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그의 음악을 듣고 있다. 정신이 번쩍 나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쉰들러 리스트, 말 그대로 클래식한 바흐의 곡까지. 내 생에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내게는 큰 행복이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그의 남은 현 3줄처럼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스틸컷ⓒ 영화사 진진

기사제휴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