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되다
배우가 되다
  • 다니엘
  • 승인 2019.01.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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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살아가기-1

Background Actor. 할리우드에서 엑스트라를 일컫는 명칭이다. 약자로 BGA라고 한다. 엑스트라라고 하면 뭔가 잉여 인간의 냄새가 나는데 어쨌든 배우로 불러 주니 좋다. 미국 시장 사정도 안 좋은데 부업으로는 이것 만큼 좋은 게 없다고 1년 전 쯤 누군가 추천했다.

이 직업을 가지려면 캐스팅 회사에 먼저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한다. 여러 개의 캐스팅 회사 중 가장 많은 배우 자원을 가지고 있는 곳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버뱅크 지역에 있는 Central Casting.  2018년 7월에 편집된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회사에 18,000명 이상이 등록되어 있다.

버뱅크에 위치한 센트럴 캐스팅 건물

일 주일에 두 세 번  등록을 받는데 오전 9시에 사무실 문을 열지만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귀띔에 7시 반 쯤 도착했다. 아뿔싸!  줄이 벌써 100미터가 넘는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이만한 인원이 모인다는 말이니 배우 지망생이 많다는 말인지 경기가 어렵다는 것인지 짐작이 어렵다. 젊은 층에서는 배우를 꿈꾸며 아침부터 잔뜩 꾸미고 온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오전 9시가 되어 차례대로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내 앞 10여명 정도에서 끊겼다. 다음 날을 기약해야 한다. 그런데 연말이라고 사무실이 보름 정도 문을 닫는단다. 새벽부터 나와 모닥불을 쬐며 기다리다가 일거리가 없어 인력 시장에서 쓸쓸히 발길을 돌리는 한국의 일용직 노동자와 다름없다.

보름 후, 새벽 6시 이전에 도착했다. 3시간 넘게 추운 데서 기다려야 한다. 캠핑용 의자와 두툼한 담요를 준비한 사람들도 있다. 날이 밝기 시작하면  '잡상인'들이 나타나 각종 연기학원, 다른 캐스팅 회사의 전단을 돌린다. 기다림에 지친 몇 명이 그들과 함께 사라진다. BGA로 등록되는 것은 이 방법 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은 듯하다.

10분전 쯤 건장한 체구의 '기도'가 나와 의자와 담요 등을 자신들의 차에 두고 오라고 지시한다. 문을 열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서류를 작성하고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벽면에는 이 회사에서 BGA로 시작해 유명배우가 된 이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나는 클라크 케이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인공),  브래드 피트와 같은 회사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브래트 피트는 꽤 유명해 진 뒤인 '세븐'(1995년 작)에 출연할 때도 여전히 이 회사에 적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등록 프로필에는 악기 사용 능력이나 각종 스포츠 능력을 묻는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특기도 다 기록하게 되어 있다. 누드 배역을 맡겨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부터  개인 소유의 차를 영화에 사용할 수 있는 여부까지 별의 별것을 다 묻는다. 차를 영화에 사용하면 일당에 $15를 더 얹어 준다. 모든 사람이 차량 등록을 다 할 것 같지만 실제로 시간제 비정규 노동자들의 차량 상태가 좋을 리 없다. 어떤 이들의 차에는 Uber 표식이 붙어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해야 먹고 사는 현실이다.   

1929년 사무실 내부에서 등록중인 백그라운드 배우들

2시간 여의 작업이 끝나면 이제 그 회사에 적을 둔 할리우드 배우가 된 것이다. 당연히 배우증같은 것은 없다.

2018년 1월 기준으로 시간 당 급여는 $12(현재는 $13.25), 8시간이면 $96(현재는 $106).  8시간을 못 채우고 일이 끝나도 8시간 급여는 보장된다. 8시간을 넘게 되면 두 시간 까지는 1.5배 3시간째부터는 2배를 받는다. 급여에 대한 설명을 듣는 동안 각자의 머리 속에서 돌아가는 계산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차피 돈 벌러 나왔으니 오버타임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며칠 뒤에 집으로 일당 수표가 우송되는데 각종 세금을 제외하면 현재 기준으로 8시간에 $91정도다. 하지만 이것 저것 또 수당이 붙으면 대개는 $100가 넘는다.

이제 내일부터 바빠지겠다는 걱정과 기대를 안고 집에 돌아간다. 그런데 이게 웬 일? 2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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